예산·인력 없는 대책에 징계 엄포까지…교육부, 신뢰 되찾을 수 있을까

전날 ‘공교육 멈춤의 날’…교사들 우회파업 최근 교원 잇따라 사망…추모 분위기 짙어져 교육부 교권회복 방안에 교사들 “역부족” 평 ‘엄정 대응’ 방침 철회에도 분노 아직 이어져

2023-09-05     박효령 기자
지난 4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열린 서이초 사망 교사 49재 추모 및 교육부 행동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현장 교사들의 요구를 즉각 반영해 줄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의 49재를 맞아 전국에서 교사들의 집단 연가·병가 투쟁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잇달아 발생한 교사의 죽음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한 교육부의 강경 대응 방침이 일선 교사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현장 교사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내놓았다.

해당 종합방안에는 앞으로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 범죄와 구분하고 수사기관의 아동학대 관련 조사·수사 개시 전 교육청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청취하도록 하고, 민원 대응 체계를 교사 개인이 아닌 기관 중심으로 개편해 교장을 중심으로 한 민원대응팀이 담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도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하고 교사가 수업 방해 학생에 대한 물리적 제지와 교실 안팎 분리, 휴대폰을 비롯한 소지품 압수 등이 가능하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국회 또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야는 ‘교권 보호 4대 법안’ 개정안에 합의해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를 통과시키기로 마음을 모은 상태다.

교권 보호 4대 법안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등 개정안이다. 이들은 오는 21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부가 이 같은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교사들이 대규모 집단행동에 나섰다. 그 이유로는 교권회복을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예산과 인력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지목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육부가 대책을 발표한 당일 보도자료를 통해 “실질적 결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교권 법령의 조속한 입법과 제도의 개선, 예산과 인력의 추가 지원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도 같은 날 논평을 내고 “예산과 인력배치에 대한 계획과 당장 교육권 확보를 위한 당국의 실천과제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원대응팀은 인력 등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교육공무직의 업무가 과중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민원을 다루는 과정에서 학교 구성원 사이 갈등이 생길 소지가 높다는 것이 교육 현장의 목소리다. 

이에 대해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해당 대안 시안이 나온 지난달 16일 “현재 악성 학부모 민원으로 힘든 것은 교사뿐만 아니라 교무실, 행정실에서 민원전화를 받는 교육공무원, 교육공무직 모두”라며 “(정부가) 구제해 줄 아무런 법적 근거는 없는 채로 교육공무직원을 악성 민원인의 욕받이로 쓰겠다고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교육활동 침해에 대해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학부모가 소송 등을 남발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완 방안은 아직 논의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서이초 사망 교사 49재 추모제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여기에 공교육 멈춤의 날 참여를 둘러싸고 교육부가 집단행동을 목적으로 한 교사의 연가·병가·재량휴업은 모두 위법이라며 최대 파면·해임 등의 징계도 가능하다는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힘에 따라 교사들을 더욱 자극했다. 

교육부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국회 등 전국 각지에서 교사들의 우회파업은 그대로 진행됐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이날 낸 성명에서 “교육부는 이미 많은 교사의 참여가 예고된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해 징계가 아닌, 공감과 위로를 전했어야 한다”며 “이제 교육부 장관은 교사들의 연이은 죽음을, 현장 교사들의 분노를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나”고 호소했다.

이날에는 국회 외에도 전국 곳곳 교육청 등에서도 집회 및 추모 행사가 이뤄졌으며, 현직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학생과 교대생까지 많은 인파가 참석해 고인을 애도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49재 추모제에 참석한 교사들을 징계하지 않겠다고 뒤늦게 입장을 표명했지만, 교사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1주일간 교사 3명이 사망한 사고가 세상에 잇따라 드러나면서 교사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전날 정년을 1년 앞둔 60대 여교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고발조치 된 이후 성남시 분당구 청계산 등산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최근 학부모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31일에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소재 모 아파트에서 서울 양천지역 초등학교 14년 차 교사가, 이달 1일에는 전북 군산 동백대교 아래에서 군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