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종 전염병’ 2035년 세계인구 20%가 비만
비만인구 증가에 비만 치료제, 업계 미래 먹거리로 부상
시장 90%장악 노보 노디스크와 게임체인저 일라이릴리
후발주자 뛰어든 국내 제약사, 틈새 전략으로 시장 공략

사진=게이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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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단식, 그리고 위고비(Fasting and Wegovy). 지난해 10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엑스(X)에서 지난 1년간의 다이어트 비결을 묻는 말에 내놓은 답변이다.

13kg 감량의 ‘비결’에 비만약 이름이 등장하면서, 비만 치료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모델 킴 카다시안 등 인플루언서들도 같은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업계 관심도 단연 비만 치료제로 쏠리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동향을 보면, 국내외 기업 가리지 않고 비만 치료제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비만약 시장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비만인구 증가로 시장 전망↑

기업들이 너도나도 비만 치료제에 발 담그는 이유가 단순히 입소문 때문만은 아니다. 비만인구의 증가와 함께 비만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비만을 아예 ‘21세기 신종 전염병’이라고 명명한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비만인구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020년 약 9억8880만명에 달하던 비만인구가 오는 2035년에는 19억1400만명 수준으로 크게 뛸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세계인구 80억4531만명을 기준으로 약 20%가 비만인구에 속하는 셈이다.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도 증가할 터. 시장조사기관에서도 비만 치료제 시장에 대해 전도유망한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2030년까지 모건스탠리는 770억달러(우리 돈 약 100조원), 골드만삭스는 1000억달러(130조원)로 전망했다. 치료제 수요가 폭증하자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는 당초 2030년 500억달러 규모에서 2배 뛴 1000억달러 규모로 전망치를 수정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 90% 이상을 덴마크 소재 노보 노디스크가 차지하고 있다. [사진제공=노보 노디스크]
현재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 90% 이상을 덴마크 소재 노보 노디스크가 차지하고 있다. [사진제공=노보 노디스크]

독주 체제 ‘노보 노디스크’와 뒤쫓는 ‘일라이 릴리’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은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이 회사의 점유율은 무려 94%에 달한다. 지난해 8월 86%에서 8%포인트(p) 오르며 세력이 더 커졌다.

노보 노디스크가 보유 중인 비만 치료제는 위고비, 삭센다가 대표적이다. 앞서 머스크가 언급한 위고비는 원래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오젬픽이라는 이름으로 출시 됐다가 체중 감량에 큰 효과를 보이자, 성분(세마글루타이드)을 증량해 비만 치료제로 개량해 출시한 제품이다. 일주일에 한 번 펜 형태의 주사를 허벅지나 복부 등에 꼽아 투약하는 방식으로 기존 1일1투여 방식의 치료제보다 사용자 편의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덴마크, 영국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위고비의 국내 상륙은 내년 상반기 쯤으로 점쳐진다.

위고비는 시판되는 비만 치료제 가운데 가장 효과가 좋다. 14개월 동안의 임상에서 위고비를 투여받은 참가자들의 평균 체중은 15%(15.3kg)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위약(가짜 약)을 투여받은 비교 그룹에서는 참가자들의 체중이 평균 2.5%(2.7kg) 감소에 그쳤다. 기존 비만 치료제가 5~9%의 효과를 보이는 것과 견주면 감량 면에서는 현재까지 독보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위고비의 위상은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 보건 전문 비영리기관 카이저패밀리재단(KFF)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미국에서 위고비 한달치 약값은 1349달러(우리 돈 약 180만원), 1년 치로 환산하면 2160만원이다. 비싼 가격에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위고비의 저력은 매출로도 증명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위고비의 매출은 217억2900만크로네(우리 돈 약 4조1248억원)로 1년 사이 매출이 492%나 껑충 뛰었다. 앞서 출시한 ‘삭센다’는 86억7400만크로네(약 1조6462억원)로 18% 늘었다. 희귀질환약품 부분이 –18%로 뒷걸음질 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라이 릴리가 곧 미국 시장에 내놓을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 위고비와 마찬가지로 펜 형태의 주사를 허벅지나 복부 등에 꼽는 방식으로 투약한다. [사진제공=일라이 릴리]
일라이 릴리가 곧 미국 시장에 내놓을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 위고비와 마찬가지로 펜 형태의 주사를 허벅지나 복부 등에 꼽는 방식으로 투약한다. [사진제공=일라이 릴리]

이 독주 체제에 균열을 가할 만한 기업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다. 이 회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는 체중 감량 면에서 위고비보다 더 극적인 효과를 준다.

지난달 공개된 마운자로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티르제파타이드를 투여받은 임상 참가자들의 체중이 72주 동안 평균 26.6%(29.2kg)나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약 또한 위고비와 마찬가지로 일주일 1회 투여 방식이다. 

지난 8일 FDA가 마운자로를 비만 치료제로 승인하면서, ‘젭바운드(Zepbound)’라는 이름을 달고 올해 안에 미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마운자로의 국내 출시는 아직 미정이다. 한국릴리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내 출시를 할지 말지 아직 정해진 바는 없으며, 현재 논의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국내 출시를 내년 말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글로벌 제약사 암젠(AMG-133)과 화이자(다누글리프론)도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미약품은 최근 비만 치료에서부터 관리, 예방에 이르는 전주기적 치료 방법을 모색하는 ‘H.O.P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H.O.P의 첫 번째 상용화 모델이다. [사진제공=한미약품]
한미약품은 최근 비만 치료에서부터 관리, 예방에 이르는 전주기적 치료 방법을 모색하는 ‘H.O.P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H.O.P의 첫 번째 상용화 모델이다. [사진제공=한미약품]

국내 제약사 ‘틈새시장’ 노린다

국내 제약사들도 비만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시장도 유망한 시장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1757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967억원을 기록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성장을 이어 온 추세를 고려하면 지난해 기록도 갈아치울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비만환자 추이도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비만환자는 1만4966명에서 2021년 3만170명으로 2배 이상 뛰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이 비만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대신에 이들 업체는 후발 주자로 나선 만큼 차별화 전략을 세워 시장 공략에 나선다.

국내 업체 가운데 제품 출시에 가장 가깝게 도달한 곳은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 3상 계획에 대한 승인을 획득했다. 회사는 오는 2026년 출시를 목표하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애초 당뇨 치료제로 개발돼 지난 2015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이전했다가 2020년 사노피로부터 다시 권리를 반환받은 물질이다. 이후 한미약품은 비만 치료제로 노선을 변경해 제품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사노피가 진행한 다수의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참여자들의 체중이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치료제 또한 일주일 1회 투여 방식의 주사제다.

한미약품은 현재 시장 독점 중인 치료제들이 서양인 환자를 타깃으로 개발된 만큼 한국인 맞춤형으로 시장을 공략할 생각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기존 치료제들이 글로벌 임상에서 동양인이나 한국인 환자들의 참여가 많지 않은 것을 고려해, 안전성이나 한국인에 최적화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대웅제약 마이크로니들 플랫폼 [사진제공=대웅제약]
대웅제약 마이크로니들 플랫폼 [사진제공=대웅제약]

국내에선 몸에 붙이는 패치형 비만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대웅제약은 마이크로니들 패치 형태(DW-1022)의 치료제에 대해 내년 초 임상 1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고 유통을 최적화해 기존에 나온 치료제가 채우지 못한 미충족 수요를 노려보겠다는 계획이다.

1cm² 크기의 초소형 패치 제형인 이 치료제는 팔이나 복부 등 각질층이 얇은 부위에 1주일에 한 번 붙여 사용하는 방식이다. 몸에 부착된 마이크로니들이 체내에 투입된 후 녹으면서 약물을 방출하는 원리다. 오는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잡고 있다.

먹는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LG화학은 유전성 비만 치료제 신약후보물질 ‘LB54640’의 글로벌 임상 2상을 올해 연말에 실시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일동제약(ID110521156), 유한양행(YH34160) 등이 경구형 치료제 개발에 들어갔다.

위장질환·근손실 등 부작용 이슈

다만, 모든 약이 그렇듯 현재까지 나온 비만 치료제들 또한 부작용 이슈가 존재한다. 체중 감량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이는 게 향후 과제로 남아있다.

위고비, 삭센다, 마운자로 등 현재 시판되거나 시판을 앞둔 치료제 대부분은 ‘글루카곤유사펩티드-1(GLP-1) 유사체’가 주요 성분이다. GLP-1이라는 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하도록 모방한 것이다.

GLP-1은 음식 섭취 시 위와 소장에 인슐린 분비를 유도하는 호르몬이다. GLP-1으로 인슐린 분비가 증가하면, 자극된 뇌는 음식물 섭취를 줄이도록 명령한다. 즉, GLP-1 유사체 성분 치료제는 우리 뇌에 포만감을 안겨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조금 먹어도 배부르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GLP-1 호르몬 분비가 일어나면 뇌에선 Satiety(포만감) 신호를 보내어 식욕(Appetite)을 떨어트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GLP-1 호르몬 분비가 일어나면 뇌에선 Satiety(포만감) 신호를 보내어 식욕(Appetite)을 떨어트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식약처에 따르면 이 계열 약들의 흔한 부작용에는 구토나 설사, 변비, 오심 등 위장장애가 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GLP-1 계열 치료제들이 췌장염, 장폐색, 위무력증 등 위장질환을 크게 높인다는 결과도 나왔다.

국제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지난달 5일 실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GLP-1 계열 약물로 체중을 감량한 사람이 다른 성분의 비만 치료제(콘트라브)를 복용한 사람보다 췌장염, 장폐색, 위무력증 등의 위험이 크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연구 결과, GLP-1 작용 약물 사용자들은 콘트라브 사용자보다 췌장염 위험이 9.09배 높으며, 장폐색은 4.22배, 위무력증은 3.6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지방과 함께 근육도 함께 감소하는 근손실이나 약물 복용 중단 시 발생하는 요요현상 등도 보고되고 있다. 일라이릴리의 경우 최근 미국 뉴욕 소재의 비상장 제약사 버사니스를 인수해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근육량 보존에 효과가 있는 버사니스의 비마그룹맙(bimagrumab)으로 근손실 이슈를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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