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2004년 3월 당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현대제철에 홍보팀 신설을 지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대제철에는 홍보팀이 없었다. 총무팀에 소속된 홍보담당 직원 두 명이 필요한 최소한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장의 지시는 경영진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회장의 지시 배경이 알려졌다. 당시 법정관리로 있던 충남 당진의 한보철강을 인수하기 위함이었다. 한보철강을 인수해서 그 자리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당시 한보철강은 정경유착의 여파로 1997년 1월 부도처리 된 후 철근 공장만 가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 몇 차례 매각이 시도됐으나 불발되고 2004년에 다시 매각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대차그룹의 한보철강 인수는 단순한 기업 인수가 아니었다. 한 산업의 지도를 바꾸고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1970년대 초부터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그룹 내에 자동차, 조선, 철도차량, 전차, 건설 등 철강재 수요가 많았던 현대는 늘 고급 철강 제품 부족으로 애로를 겪었다. 현대그룹이 필요로 하는 고급 철강재 생산은 철광석과 코크스를 용광로에서 녹여서 만든 순도 높은 제품으로 당시 포항제철(현 포스코)만 생산 가능했다. 인천제철,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 다른 철강회사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인 것으로 순도가 떨어져 주로 건축 자재로 사용한다.

한보철강 인수 경쟁을 보도한 당시 기사(조선일보 4월 14일)&nbsp;&nbsp;[자료제공=ESG네트워크]
한보철강 인수 경쟁을 보도한 당시 기사(조선일보 4월 14일)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포항제철 또한 늘 공급 능력보다 많은 철강재 수요에 시달렸다. 당시 경제가 연 10%씩 지속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수입품에 비해 값싸고 품질 좋은 포항제철 철강재는 수요가 많았다. 정부도 이러한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제2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이를 계기로 현대그룹과 포항제철 간에 제2제철소 인수를 위한 혈투가 벌어졌다. 결과는 포항제철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물이 현재 포스코 광양제철소다. 훗날 박태준 회장은 이때의 승리는 여론전에서 이겼기 때문이라고 회고록에 남겼다.(이대환 지음 <박태준> 409~426쪽 참조)

그동안 현대그룹은 총 네 번에 걸쳐 일관제철 사업 진출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한보철강 인수 추진은 다섯 번째 도전이었다. 일관제철 사업의 성패는 물류(항만)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입지조건이 중요하다. 주원료인 철광석과 석탄, 부원료인 석회석 등의 수입은 물론이고 제품 수출 등으로 수심 깊은 항만이 필요하다. 한보철강이 있던 곳은 제2제철소 추진 시에도 광양과 함께 후보지로 거론됐던 곳이었다. 그만큼 입지 조건이 좋았는데, 한보가 이미 부지 조성을 하고 전기로 철강과 냉연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으니 현대가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수해야 했다.

1.2008년 10월 20일.&nbsp;충남 당진군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을 찾은 김형오 국회의장(왼쪽)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함께 공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가 필자. [사진제공=ESG네트워크]
1.2008년 10월 20일. 충남 당진군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을 찾은 김형오 국회의장(왼쪽)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함께 공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가 필자. [사진제공=ESG네트워크]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현실적 필요성으로 인해 현대제철의 홍보팀 신설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고 특히 홍보팀장의 미션은 막중했다. 당시 필자는 기획팀 소속으로 있으면서 한국철강협회에 파견 근무 중이었다. 파견기간 중에 회사 복귀와 함께 홍보팀장 명령을 받아 무척 당황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홍보맨은 오장육부를 떼어서 창고에 맡겨놓고 살아야 할 정도로 힘든 업무였다. 기획팀에서 데이터와 논리로 일하던 습관은 ‘기자들의 예리한 취재에 두루뭉술하게 대처해야 하는’ 기존 홍보맨의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룹의 명운을 건 신산업 진출을 위해 팀을 신설하고 기획팀 소속의 나를 발탁한 이유가 있는바, 기존의 홍보 스타일을 답습할 수는 없었다. 적절한 조화를 통한 새로운 홍보맨의 역할이 필요했다.

다행히 유능한 후배들과 정부 기관은 물론 사회 각계의 시민단체와 맺은 인연들, 기존 홍보맨 스타일과 다른 시도를 애정 어린 격려로 지지해 준 기자분들 덕분에 퇴임 때(2020년)까지 홍보 업무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 사이 회사는 당진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운영하면서 매출액 2조6000억원에서 27조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공은 오늘날 현대자동차·기아가 세계 3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인하우스(In House) 제철소를 가지게 됨에 따라 신차 개발에 필요한 자동차 강재 개발시간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게 됐다. 또한 자동차 강판을 비롯한 고급 철강재 공급 경쟁체제는 자동차, 조선, 기계공업, K방산 등 한국경제가 G10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회사의 성장 = 국가의 성장 = 나의 성장>이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다. 다만 이러한 성장이 우리 ‘사회의 성장(발전)’과는 괴리가 있었다. 이러한 괴리는 필자가 퇴직 후 ‘ESG 경영’을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이 시리즈 연재를 통해 성장의 과정을 공유하고 괴리의 원인과 해법을 같이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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