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Blue in green, Oil on canvas, 33x41cm, 2023<br>
Blue in green, Oil on canvas, 33x41cm, 2023

회화 작업하는 작가 지온입니다. 저는 서울과 독일 함부르크, 뮌헨에서 공부했고, 현재는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주로 페인팅을 매체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할 당시 자폐 및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발생적인 작품을 접하고 매료됐는데요. 이후 프로젝트를 통해 환자들을 만나고 협업하며 많은 예술적 영감을 받았고, 이 영감을 기반으로 작업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극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움직임을 통해 도형과 선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무의식을 시각적 형태로 치환하는 데 집중합니다. 시각적 이미지와 비시각적 이미지 모두는 제게 중요한 소재이며, 이들로부터 다양한 감각을 수집해 시각적 언어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시각적 감각이 우연인지 의도인지, 그 차이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에 늘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보이는 붓질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언젠가 봤던 것들, 어디선가 배운 것들, 또는 무언가로부터 영향받은 것들이 담겨 무의식중에 드러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 드로잉하듯이 붓이 흐르는 대로 추상 페인팅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의도된 붓질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 페인팅은 그 간극에서 우연과 선택, 무의식과 의식에 의해 만들어진 감각을 수집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ARCHIVE 

반짝반짝, 46x38cm, 캔버스위에 유화, 2023
반짝반짝, 46x38cm, 캔버스위에 유화, 2023

반짝반짝

제 그림의 많은 수는 꽤 오랜 시간 그려집니다. 계속 조금씩 그리는 것은 아니고, 유화로 그리기 때문에 그리고 난 후 한동안 그림을 말리고, 짧게는 며칠 후 혹은 몇 달 후, 몇 년 후에 이어 작업하고 또다시 시간을 두고 다시 작업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때로는 몇 년 후에 완전히 잊고 있다 꺼내 보고 한참을 쳐다보다 더 그리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림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변하기도 하곤 해요. 앞서 그린 그림이 새로운 모티브가 돼 마치 낱말 잊기를 하듯 이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곤 합니다. 저에게 그림 그리기는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2023년에 마무리된 이 그림의 초기의 모습은 더 이상 기 억에 남지 않네요. 2년여 정도 그린 것 같은데 마지막 기억은 한창 육아에 찌들어 있을 때였어요. 아이를 밤에 재우고 몸이 힘든 상태에서 새벽까지 하루에 2시간 정도씩 작업을 할 때였는데 매일 피곤해서 맑은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림들도 어둡고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어느 날 낮에 날이 좋아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러 갔는데 문득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낄 만큼 날씨가 너무 좋더라고요. 바람도 좋고 꽃들도 예쁘고, 프랑스의 봄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날 밤에 작업을 하며 그 생기로움과 리드미컬함을 모티브로 그림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습니다. 제 손에 이끌린 무의식의 붓질이 봄의 색감, 하지만 아직은 조금 쌀쌀한 선선한 바람을 표현해 보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과 봄의 그 사이, 빛은 따스하지만 동시에 쌀쌀한 반짝이는 찰나를 잡아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다시 못 올 행복하기도 또 너무 힘들기도 한 순간들의 개인적인 감정들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감각과 감정들이 반짝이는 작품이 됐습니다.

소곤소곤 초록, 80x60cm, 캔버스위에 유화, 2023
소곤소곤 초록, 80x60cm, 캔버스위에 유화, 2023

소곤소곤

이 그림은 고민이 많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실제로 그리는 시간보다 보고 있고 고민하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2020년도에 시작했고, 2023년에 마무리했는데요. 2020년에 독일에서 프랑스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사 후 일주일 만에 세상을 흔들었던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에 달갑지 않은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혼란스러움과 답답함, 그런 저의 심리 상태가 무의식 속에서 그림에 표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작할 때는 칸막이로 보이는 무언가에 막혀 있는 공간들의 추상적인 이미지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우연히 선택한 초록색이 그림에 많이 놓여지면서 작품의 이미지가 점차 변해갔습니다. 그렇게 변한 그림은 더 이상 막혀 있는 폐쇄적인 느낌이 아닌, 초록 식물들이 소곤소곤거리는 느낌을 주었고, 이 작품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꼭꼭 숨어라, 70x50cm, 캔버스위에 유화, 2021
꼭꼭 숨어라, 70x50cm, 캔버스위에 유화, 2021

꼭꼭 숨어라

독일 뮌헨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일요일에 1유로로 할인을 합니다. 덕분에 뮌헨에 거주할 당시 상시 전시된 명작들을 여러 번 보러 가곤 했습니다. 그림을 보는 시점의 저의 기분, 날씨 등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같은 그림이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이런 점이 재미가 있어서 저의 오래된 그림도 감상자로서 종종 꺼내 보기도 합니다. 저는 작품을 제작한 시간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보고 느끼고, 이를 새로운 캔버스에 다시 그려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되기도 하고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프로젝트처럼 종종 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인지가 표현됩니다. 이 작품도 그렇게 그려졌습니다. 5년 전에 그렸던 작품을 모티브 삼아 다시 그려진 작품입니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거의 그림을 봤을 때 어두워 보였던 그림이, 5년이 지난 후에 밝아지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작품은 5년 전의 작품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완성됐습니다.

# ARTIST STORY 

지온 작가 [사진=본인 제공]
지온 작가 [사진=본인 제공]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성실하게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저는 큰 포부나 목표는 가지기보다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작은 움직임들의 힘을 믿습니다. 꾸준하고 성실한 하루들이 모이면 놀라운 일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매일 매일 조금이라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건강한 신체 상태가 유지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림 그리는 행위가 10년, 20년 후 또 그 이 후에도 지금처럼 설레고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ART CRITICISM

지온 작가는 무의식적인 언어를 추상적인 형태로 풀어가는 감각적인 아티스트다. 지온은 삶의 사유에서 파생되어진 가장 순수한 결정체, 감각의 형태를 시적인 은유의 제목으로 풀어쓰고 색의 형태로 실현한다. 지온의 작업과정은 섬세하다. 겹겹이 쌓아올린 두터운 물감의 질감 효과는 울림의 크기로 생명력을 가지고 감각적인 색의 표현은 청량한 리듬감들로 화면 가득 채워진다. 리듬 속의 아름다움은 곧 감정의 맞닿음이라는 신호를 표출하며 정신적인 추상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김선 비평가)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