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br>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홍보 업무를 맡기 전에도 기자와 가끔 접촉할 때가 있었다. 담당 업무의 전문적인 분야로 취재가 들어오면 홍보 담당자가 나를 연결해 주곤 했다. 그러면 알려줄 수 있는 부분까지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매번 홍보 담당 직원이 내게 당부하는 말이 있었다. “절대 기자님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 주세요”하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갑을이란 개념이 별로 없었던 나에게는 그 당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평소 숫자를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내 설명을 듣는 기자의 감정 상태보다는 데이터의 의미를 이해하는지 표정을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취재 후 홍보 담당 직원에게는 나와의 접촉이 유쾌하지 못한 면도 전달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홍보팀장이 됐으니 나를 중심으로 하기보다 회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다. 나는 스스로 변화를 추구했다. 그 첫 번째로 골프를 치기로 했다. 회사 직원임에도 환경 운동가들과 자주 어울리고 개인적인 후원도 자주 했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골프는 반환경적이고 귀족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골프장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자연을 훼손하고, 엄청난 농약을 뿌리고, 이용 시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기자들이 골프를 좋아하니 따라 치기로 했다. 그런데 골프를 치면서 골프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됐다. 지역에 따라 자연 훼손도 일부 있지만 유용하게 개발하고 활용하는 측면이 더 많았다. 과다한 농약 살포도 실제보다 부풀려진 이유가 있었다. 비용이 너무 비싼 것은 지금도 부담이다. 그런데 골프를 좋아하게 된 다른 이유가 생겼다. 골프는 철저하게 자신과의 게임이다. 상대를 탓할 이유가 없다. 골프장 이용 여건도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 안에서는 지위고하나 빈부귀천 없이 다 같은 조건에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식사한다.

두 번째로 내가 변한 것은 ‘철저한 을’이 되자는 것이었다. 이는 기자들의 성향을 파악해서 성향별 맞춤 서비스를 하는 것이었다. 고객(기자)이 원하는 바를 충실하게 제공해 주면서 나의 편으로 만들고자 했다. 뒤에 자세히 밝히겠지만 현대제철의 한보철강 인수부터 당진제철소 건설 후 현재까지도 경쟁사의 후발주자에 대한 태클은 대단했다. 홍보에 대한 인적·물적 자원(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거대한 벽과 싸우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럴 때 회사와 언론사 차원의 관계는 대등하기 힘들어도 홍보맨과 기자와의 관계에서만큼은 확실히 내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한보철강 인수 전에서 &nbsp;포스코와 현대차그룹의 치열한 경쟁 끝에 현대차그룹(INI컨소시엄)이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당시 신문 보도.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한보철강 인수 전에서  포스코와 현대차그룹의 치열한 경쟁 끝에 현대차그룹(INI컨소시엄)이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당시 신문 보도. [자료제공=ESG네트워크]
같은 사안에 대한 경제지(서울경제. 2004.5.28)와 종합지(한겨레신문 2004.5.29)의 관점 차이가 잘 나타나 있다.&nbsp;&nbsp;[자료제공=ESG네트워크]
같은 사안에 대한 경제지(서울경제. 2004.5.28)와 종합지(한겨레신문 2004.5.29)의 관점 차이가 잘 나타나 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구체적으로 나는 언론사와 기자들을 나름의 기준으로 그룹핑해서 그들에게 맞춤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중요하게 예우를 한 기자는 철강 전문지 기자였다. 철강 전문지는 언론사라기보다는 동종업계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 점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철강회사 경영진은 정보에 대한 보안 의식을 갖지 않고 전문지 경영자와 자주 교류하게 되므로 많은 고급 정보가 흘러 나가게 된다. 자연히 전문지 기자는 많은 정보를 갖게 되고 기자의 본능에 따라 기사화하게 된다. 이들의 기사는 ‘통신’과 같아서 바로 모든 매체의 기자들에게 전파된다. 회사 차원에서 이렇게 보도되는 기사는 당황하게 하는 게 대부분이다. 특히 중요한 인사이동, 입찰 조건, 가격에 관한 정보는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철강 전문지 기자를 통하면 경쟁사의 동향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하는 것도 홍보맨의 능력이다.

철강 전문지 기자들이 팩트 보도에 집중하는 특징이 있다면 경제지 기자들은 경쟁사들을 비교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자신이 취재한 현대제철 기사가 경쟁사를 아프게 하거나 경쟁사 기사로 현대제철이 아파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어쩌면 전문지 기자와 경제지 기자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다. 전문지 기자의 팩트 보도가 경제지 기자의 경쟁사 간의 비교 기사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평소 전문지 기자와 쌓은 친분으로 획득한 철강업계 정보를 경제지 기자들에게 선제적으로 잘 서비스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경제지 기사는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행정부에서 산업·기업 관련 지원이나 규제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이 있으므로 평소 관련 정보(기사)가 잘 축적되도록 해야 한다.

종합지 기자는 기업과 산업의 관계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서 전문지 기자가 현대제철이 어떤 신설비 투자를 한다고 보도하면, 경제지 기자는 그 설비로 인한 경쟁사와의 관계나 영향력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종합지 기자는 그러한 설비투자가 전후방 연관산업과 국제 교역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종합지 기자는 취재 범위가 넓어서 전문지나 경제지 기자만큼 개별 기업의 일상에는 관심을 두지 못한다. 따라서 종합지 기자에게는 이런 측면을 감안한 서비스가 필요하다. 나는 매주, 매월 단위로 철강 관련 국내외 동향과 경쟁사 동향을 업데이트해 관심 있는 종합지 기자에게 제공했다. 이런 정보를 통해 바쁜 기자는 그 산업이나 기업의 정보에 물먹지 않으면서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동향 보고를 넓은 시야에서 들어오는 산업이나 국제동향과 연계해서 활용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런 기사는 우리에게 유익한 기사가 된다. 이러한 종합지 기사는 입법 사항이나 국정감사 같은 국회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에 유용하게 활용되므로 잘 관리해야 한다.

다음으로 큰 그룹은 방송기자다. 방송 보도의 특징은 시대 이슈(관심사)와의 연관성과 TV화면용 그림이 따라주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요인이 맞으면 방송은 신문보도가 나간 후에 취재가 들어온다. 따라서 방송 보도는 신문보다 협조가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홍보맨은 늘 회사와 시대 이슈의 연관성에 관심을 두고 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문지, 경제지, 종합지, 방송을 중심으로 기자와 친하게 된 것을 소개했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게 구분이 되는 게 아니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 언론이 많아졌고 모든 언론이 속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속보 경쟁은 차별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추측성이 난무하게 되고 이는 더 큰 추측을 불러오기도 한다. 따라서 다양한 매체별 특성에 맞는 서비스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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