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br>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정보는 ‘정(情)에 대한 보답’이다. 지난 회에 소개한 언론사별 특성이 있다면 각 기자별 특성도 있다. 이게 더 중요하다. 경쟁사보다 인적·물적 자원이 열악한 상황에서 기자들과 친하기 위해서는 각 기자들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情)를 제공해야 했다. 그것도 경쟁사보다 더 잘해야만 했다. 홍보맨 초기 시절 나를 잘 지도해 준 언론인이 많았다. 그분들의 말씀을 종합하면 기자의 기사화 영향력은 기자 50%, 데스크 30%, 회사 20%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십수 년의 경험에 의하면 이 구분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기자들은 독특한 DNA가 있다. 개성 있는 엘리트들이 모인 직업에서 나온 집단적 DNA다. 우선 자존심이 강하다. 자기가 제일이다. 또 그렇게 훈련도 시킨다. 홍보를 처음 하던 때 한국일보 사회부의 수습기자 훈련 방식에 관한 얘기를 자주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에 굴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까지 한국일보는 조선·중앙·동아일보를 가장 괴롭히는 신문이었다. 조선일보 방우영 고문의 자서전 제목이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였다. 아침마다 한국일보 1면 톱 제목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훈련 방식은 많은 언론의 수습기자 훈련에 활용됐다. 자존심 강한 사람이 기자가 되고 이런 훈련을 통해 더 강한 자존심을 갖게 된다. 자존심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이 사례들은 나로서는 많은 희생과 비용이 지불된 사례다.

김경식 대표의 개인 연구소인 고철연구소 모습 [사진제공=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의 개인 연구소인 고철연구소 모습 [사진제공=ESG네트워크]

독특한 DNA를 가진 기자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예우를 해줘야 한다. 기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가장 쉬운 예는 ‘당신의 상사와 내가 친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학연, 지연 등으로 얽힌 사회에서 통상적으로는 상대의 상사와 친한 것은 좋은 편의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기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흔히 있는 실수의 한 예다. 홍보 이슈 대응을 하다 보면 특히 마감 시간이 있는 방송과 신문의 경우 해당 기자를 거치지 않고 데스크나 경영진과 바로 통화를 해서 수정을 요청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담당 기자를 거치지 않은 민원은 반영도 잘 안되고, 그 후과는 각오해야 한다.

다음은 기자를 물먹이는 경우다. 특정 정보를 일부 친한 기자에게만 알려서 기사화하면 이를 몰랐던 나머지 기자들이 열을 받게 된다. 문제는 회사가 고의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쁘거나 게으른(?) 기자들이 스스로 해당 정보(취재력)에서 소외되는 경우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 기자는 회사가 고의로 자기에게 물을 먹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경우는 아닌 줄 알면서도 다음을 위해서 그렇게 우격 다짐을 해놓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그럴만한 기자에게는 미리 귀띔을 해주면 그 기자는 내 팬이 된다.

기자는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회사에서 큰 행사를 하게 되면 출입 기자단 전체를 초청할 때가 있다. 이런 행사를 할 때면 회사는 다양한 취재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현장으로 가는 교통편과 식사는 물론이고 취재를 지원하는 보도자료와 부속 자료들을 제공해 줘야 한다. 그리고 행사가 마무리되면 선물을 드리고 귀가 때까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참고로 김영란법이 있기 전이다) 기자들은 소속된 매체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요구를 하게 된다. TV기자의 경우 방송용 화면과 관계자 인터뷰를 주선해 줘야 한다. 먼저 귀경해야 할 기자들에게는 교통편을 별도로 제공해 줘야 한다. 이런 요구사항은 좀 불편하지만 제공해 주면 된다. 문제는 차별화된 팩트 제공을 요구받는 경우다. 기자가 현장 취재를 가면 각 언론사 데스크는 반드시 지시를 한다. ‘제목 거리 좀 따로 취재하라!’ 이러한 요구에 잘 못 대응할 경우 한 언론을 만족시킬수 있지만 다른 언론을 적으로 만드는 상황이 초래된다. 다른 매체(기자)와 차별을 해서도 안 되고 차별받는 느낌을 줘서도 안 된다. 다른 기자를 물 먹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자들은 차별화된 대우를 원한다. 특종 기사를 좋아하고 특별히 자기만을 위한 예우를 좋아한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절대 못 참는 게 기자다. 그래서 차별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러한 까칠하고 양면적인 성향은 홍보맨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역으로 잘 이용하는 것이 진전한 홍보맨이다. 많은 고민 끝에 내가 택한 첫 번째 방법은 조사분석 자료 제공이었다. 기획팀에서 10년 이상 훈련을 받았던 관계로 ‘산업조사→회사 영향 분석→대책 강구’를 하거나, ‘목표 설정→현상 진단→달성전략 수립’과 같은 업무는 익숙한 일이었다. 또한 경쟁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특징을 정리하는 일도 익숙한 일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분석 자료를 기자들 성향(특성)을 고려해 적절하게 알려줬다. 이는 관심 있는 기자들에겐 좋은 취잿거리가 되고 그렇지 않은 기자들에게도 재미난 만남의 시간이 되었다.

그는 이 연구소에서 독서를 하고 방문객을 맞이 한다.&nbsp;[사진제공=ESG네트워크]
그는 이 연구소에서 독서를 하고 방문객을 맞이 한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차별화를 원하는 기자들에게 차별화된 이야기를 해주면서 다른 기자들을 물 먹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 또 하나의 방법은 ‘독서’였다. 문학작품, 인문학, 경제사, 지정학, 환경생태경제 같은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그러한 독서를 회사, 산업, 사회 현상과 연계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바쁜 기자들이 평소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이므로 만남의 시간이 즐겁고 그러는 사이 기자가 관심있어 하는 회사 이야기는 잊혀지게 된다. 단, 여기서 조심할 것은 ‘기자를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늘 겸손한 자세로 상대의 지적(정보)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

내가 주로 상대했던 기자들은 철강산업을 담당하는 산업부 소속이거나 환경·중대재해를 담당하는 사회정책부 기자들이었다. 나중에 대외업무로 확대되면서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경제부와 국회를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도 만나게 됐다. 기업을 상대하는 산업부는 권력의 압력이 거의 없지만 경제부나 정치부는 각종 권력의 압력을 받게 된다. 고위 관료든 권력의 실세든 이들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당당하게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DNA 영향이 크다.

취재를 당해본 사람 입장에서는 야속하고 분노가 충만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 공익을 위해서 기사화하는 것들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다고 본다. 회사가 감추고 싶은 사항을 꼼꼼히 취재한 데이터를 엮은 논리로 보도할 때는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아픔 덕분에 회사도 더 빨리 바른 궤도를 가게 되고 기회비용도 줄이게 된다. 그만큼 기업의 사회 기여도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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