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홍보(PR Public Relation)란 무엇인가? 모든 조직은 홍보를 하고 싶어 한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잘하는 것은 알리고 싶어 하고 못 하는 건 피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점을 홍보의 목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생각이다. 멀리, 넓게 이해관계자와의 ‘상호 관계 지향’으로 봐야 한다. PR은 IR(Investor Relation)과도 다르다. 다 같이 회사 밖과의 ‘관계’이지만 IR은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한 투자자와의 관계다. 최근에는 IR도 비재무지표의 계량화를 위해 ESG를 수단으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시도하지만 한계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홍보란 자기가 속한 조직을 ‘사회의 가치 지향’에 맞게 조율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회의 가치 지향을 자기 조직에 내재화시키고 조직의 활동은 사회의 가치 지향에 맞추는 과정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가 압축 성장을 하면서 많은 성과를 냈지만 그에 비례하는 그늘이 너무 넓고 길다. 양적 성장의 탑은 높으나 질적 성장의 골도 깊다. 자본주의 긴 역사를 보면 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앞서간 나라들의 사례를 보고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이해관계자 간의 조정이 어렵고 또 중요함을 나타낸다.

그나마 자본주의 역사가 남긴 교훈이라면 인간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시스템이 살아남았고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시스템이 유지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은 욕망 있는 인간이 탐욕 있는 자본을 운영하는 곳이다. 어떤 브레이크가 없으면 질주하게 되고 이는 또다시 역사의 퇴보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역사의 퇴보를 막고 희생을 줄이면서 진화하는 방향성을 유지시키는 역할자가 필요하다. 이 역할자는 정치와 자본에 독립적인 시민단체와 언론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 시민단체의 활동이다. 시민단체의 활동 방향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양한 단체의 다양한 가치 지향은 그 시대적 요구에 따라 우선순위가 조정된다. 따라서 기업이든 정부든 조직에 속한 사람은 시민단체와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필자의 생각이다. 언론매체를 통해서 아는 것과 교류를 통해서 직접 아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필자가 2000년 초반부터 교류한 단체는 한국생태경제연구회, 환경운동연합, 생태지평, <창작과비평> 정기독자 모임 같은 곳이었다. 비교적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단체인데 보수적인 대기업 문화에서는 ‘진보’ 보다는 ‘좌파’라고 호칭하면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인 소신에 따라 교류했는데, 무엇보다 두 분의 직장 상사가 큰 우산이 돼줬다.

우리 사회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기업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업을 부정하기보다는 비판을 통해 기업을 변화시켜야 한다. 기업도 시민단체의 비판을 경청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수용해야 한다. 30년 직장 생활 경험에 의하면 사회의 가치 지향에 맞춰 먼저 변하는 기업이 더 잘 된다. 왜 그런가? 먼저 변하면 앞서가게 되고 마지못해 변하면 끌려가기 때문이다. 앞서가게 되면 새로운 것이 돼 신선함이 있고 밀려서 하면 그저 그런 것으로 묻힌다. 새로움은 그 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시키지만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자기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준다. 그저 그런 회사는 직원들에게 피곤함만 준다.

먼저 변할 수 있는 것은 기업 문화가 사회의 가치 지향을 경청하는 자세가 돼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기업은 다른 것도 잘한다. 조직문화가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판단도 기업 현실에서는 잘 안 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회장님(오너)이 시민단체와 교류가 없다 보니 일부 참모들이 알아도 회장님께 보고를 못 한다. 더 심한 경우는 일부 참모가 진보적 지향을 보이면 회장님의 측근들이 집요하게 반대 논리를 편다. 반대 논리의 근저에는 시민단체가 지향하는 ‘가치’보다 ‘돈’을 요구하는 이익단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핵심 참모 몇 명만 합심하면 회장님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가치관을 가진 참모는 단 한 명도 핵심 참모로 성장하지 못한다. 회장님이 시민단체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엄청난 사회적·경제적·정치적·법적 비용을 치르고도 다시 그 문화로 돌아가서 서서히 사라지는 기업으로 나타났다.

한국생태경제연구회에서 번역한 &nbsp;Lester R. Brown의 &lt;ECO-ECONOMY&gt;. 저자는 이 책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이미 개발된 자원의 재활용을 강조하면서 대표적으로 고철 재활용을 예로 들었다.<br>
한국생태경제연구회에서 번역한  Lester R. Brown의 <ECO-ECONOMY>. 저자는 이 책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이미 개발된 자원의 재활용을 강조하면서 대표적으로 고철 재활용을 예로 들었다.

평소 교류했던 시민단체는 홍보팀장이 된 필자에게 큰 힘이 됐다. 2003년 한국생태경제연구회는 레스터 브라운의 <에코 이코노미>를 번역 출간했다. 이 책에서 브라운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원을 개발·훼손하기 보다 이미 개발된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고철을 예로 들었다. 당시 회장(조영탁 교수.전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필자에게 이러한 사례를 얘기하면서 격려를 해줬다. 당진제철소를 하기 전 현대제철은 세계 2위의 고철 재활용(전기로(爐)) 철강회사였다.

<창작과 비평> 2003년 가을호에 게재한 필자의 논문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은 시민단체들과 교류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부는 전력산업을 민영화하기로 하는 구조개편을 단행했다. 먼저 발전 부문을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석탄 발전사로 분할하고 민영화를 추진했다. 당시 현대제철은 고철을 녹이는데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철은 오직 ‘전기(電氣)’로만 녹일 수가 있어서 전기가 연료와 같았는데, 민영화가 될 경우 전기요금 인상으로 원가 부담이 우려됐다. 전력산업 구조 개편으로 전력거래소가 개설되고 도매가격 결정방법으로 SMP(계통한계가격)을 채택했다. 이는 매시간별 전기생산에 들어간 발전기 연료 중 연료비(변동비)가 가장 비싼 발전기의 연료비를 모든 발전기에 주는 방식이다. 즉 킬로와트시(kwh)당 변동비가 원자력 4원, 석탄 50원, LNG 100원이면, 특정 시간에 LNG발전기를 가동할 경우 원자력과 석탄 발전기에도 100원을 주는 방식이다. 원자력발전기는 96원, 석탄발전기는 50원의 횡재(windfall)가 생기는 구조다.

&lt;창작과비평&gt; 2003년 가을호에 게재된 논문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 이 논문에서 필자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을 강조했다.<br>
<창작과비평> 2003년 가을호에 게재된 논문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 이 논문에서 필자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당시 필자는 이러한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의 환경문제를 생각할 때 과연 원자력과 화석연료의 비중(양)을 늘리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익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각종 투자관련법도 친환경적 재생가능 에너지발전을 획기적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할 것이다”고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논문을 읽고 연락을 주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심각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이 주제는 앞으로도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경제발전 초기 기업의 원시축적 단계에서는 비용 절감형(생산요소 착취형)으로 자본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글로벌 대기업이 나오고 재벌이 되면서 업종이 다변화되고 가치사슬 단계가 복잡해졌다. ‘기업=시장=이해관계자’ 관계가 형성됐다. 이제 이해관계자의 가치 지향을 벗어나서는 지속가능할 수가 없게 됐다. 더구나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와 같은 철강산업은 모든 산업 중에서 전후방 연관효과가 가장 높다. 한편으로는 철강산업은 에너지 소비가 많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다. 환경 이슈가 늘 따라다니는 업종이다.

홍보팀장이 되기 전에 교류한 시민단체가 공교롭게도 홍보팀 업무의 핵심 이슈와 관련된 단체들이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내가 관장하는 범위에서나마 내 나름의 가치를 실현해 보겠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교류한 시민단체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됐다. 더구나 현대차그룹의 당진제철소 건설은 수직계열화 심화라는 경제력 집중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후 10여 년간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가치 지향을 회사 업무에 반영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회사 문화를 이러한 가치에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뜻 있는 선후배의 도움이 있었지만 외로운 노력이었다. 그러던 중 세계적인 홍보 전문가의 인터뷰를 보고 큰 자신감을 갖게 됐다. 2013년 6월 22일, 조선일보 류정 기자가 세계적인 홍보회사 ‘버슨마스텔러’ 해롤드 버슨 창업자와 뉴욕에서 한 인터뷰였다.

‘기업 홍보 책임자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버슨의 답변은 이랬다. “첫째,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는 기업의 센서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기업의 ‘양심’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커뮤니케이션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의 내부 청중, 외부 청중 모두에게 그렇다.” 한 기업을 책임지는 기업의 회장이라면 이 말을 경청하고 홍보의 목적을 알아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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