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철강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철이 가진 ‘자원순환’에 주목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던 시점에 레스터 브라운의 <에코 이코노미>를 알게 됐고 생태경제연구회 회원들과의 교류는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덕분에 사회의 가치 지향을 담은 사보 <푸른연금술사>도 발행할 수 있었다. <푸른연금술사>가 20년째 정체성과 품격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분은 한겨레신문 조홍섭 전(前) 환경전문기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조홍섭 기자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구루(GURU)였다. 본인의 인생 여정과 글(기사)과 삶이 일관되는 존경받는 기자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에게 입각 제의가 있었지만 매번 거절했다는 후배들의 전언이 있다.) 다행히 홍보업무를 하기 전부터 알게 된 박순빈 기자를 통해 섭외가 가능했다. 그 이후 명망있는 필자를 섭외할 때는 <푸른연금술사>를 보여주면서 조홍섭 기자가 창간호부터 필자라고 하면 어김없이 오히려 본인들이 조홍섭 기자와 함께 해서 영광이라며 혼쾌히 응해줬다.

프랑스 사진작가 베르트랑의 대표 작품집인 &lt;하늘에서 본 지구&gt; 표지. 이 책 서문에 &lt;ECO-ECONOMY&gt;의 저자 레스터 브라운이 쓴 ‘에코이코노미를 건설하자’는 글이 있다.&nbsp;[자료제공=ESG네트워크]
프랑스 사진작가 베르트랑의 대표 작품집인 <하늘에서 본 지구> 표지.  사진은 뉴칼레도니아에 있는 습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맹그로브 숲이다. 이 책 서문에 <ECO-ECONOMY>의 저자 레스터 브라운이 쓴 ‘에코이코노미를 건설하자’는 글이 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사보에 이어 회사가 철과 자원순환에 대한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홍보영화다. 요즘은 온라인동영상(OTT)이 회사 이미지 전파에 중요한 수단이 되었지만 2005년 당시에는 회사 방문객에게 회사를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 홍보영화였다. VIP부터 일반 내방객까지 홍보영화부터 보여주는 것이 의전 코스였다. 회사 방문객은 홍보영화를 통해 회사에 대한 첫 이미지가 각인된다. 그만큼 홍보영화는 중요했다.

사보 <푸른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홍보영화도 친환경 콘셉트로 만들기로 했다. 회사를 알리는 객관적인 정보도 소개를 해야하므로 이미지편과 정보편으로 나누어 제작하기로 했다. 광고회사 입장에서 현대제철 홍보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좋은 영업 수단이 되는 관계로 국내 유수의 광고회사가 제안서를 제출했다. 사내 고위 임원은 물론이고 외부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 청탁이 들어왔다. 이러한 경우 최종적으로 한 회사를 결정하면 탈락한 업체를 통해 많은 소문이 나돌 것이 명확했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선정 절차와 평가 요소를 모든 제안자에 동시에 공개했다. 옛 현대그룹 광고 전담 회사였던 금강을 비롯한 대기업 계열 회사도 많았지만 투명한 절차를 통해 선정한 광고회사는 중견기업 그레이프(grape) 커뮤니케이션즈였다.

소위 유명한 광고회사는 늘 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고객사 이름과 간단한 배경만 수정해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다양한 연줄을 통해 많은 부탁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레이프는 그러한 부탁 없이 고객의 니즈를 철저히 파악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너머를 고민하고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투명한 절차 덕분에 때아닌 그룹의 감사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레이프와 계약을 체결하고 작업이 진행 중인데 그룹 감사가 나왔다. 어떤 이유로 A사를 배제하고 이 업체와 했냐고 추궁했다. 규모가 작은 A사는 무슨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태도는 물론 모든 면에서 부적합했다. 당시 홍보영화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김무일 부회장과 한정건 전무에게 감사를 드린다. 실무자를 믿고 맡기면서 외풍을 막는 병풍이 돼줬다.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한 주택에서 홍보영화 촬영 중인 모습.&nbsp;[자료제공=ESG네트워크]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한 주택에서 홍보영화 촬영 중인 모습. [자료제공=ESG네트워크]

김무일 부회장은 영화에 대한 안목이 전문가 수준이었다. 당시 기업 홍보영화 최초로 영화 음향을 돌비 사운드(Dolbysound)와 5.1Ch을 주문했다. 해외 로케이션도 스위스 융프라우 요흐, 레만 호수와 인터라켄, 체코, 호주, 뉴질랜드, 뉴 칼레도니아 등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담기 위해 30여 일 동안 소요됐다. 스위스 융프라우 요흐를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고 뉴 칼레도니아의 ‘보의 하트’ 촬영도 우리나라 기업 홍보영화 최초였다. ‘보의 하트’는 후일 가수 성시경의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해졌다.

홍보영화는 단순한 기업 안내가 아니라 현대제철 업의 본질인 철의 자원 순환성을 알리고, 이를 통해 자긍심과 감동을 주는 영화여야 했다. 그레이프 팀과 루돌프필름 박병춘 영화감독, 홍보팀은 숱한 회의를 했다. 많은 논의 끝에 세계적인 환경 사진 작가인 프랑스의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의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를 기본 테마로 설정했다. 그리고 베르트랑을 영화에 직접 출연시키고 영상의 권위에 걸맞게 배경음악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단이 직접 작곡·녹음·출연하도록 했다. 기본적인 기획과 출연자 섭외는 박 감독이 담당했다.

홍보영화 핵심 테마의 상징인 베르트랑을 출연시키기 위해 2004년 12월 프랑스 교외에 있는 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사전 섭외 시 출연을 약속했던 베르트랑이 철강 산업은 반(反)환경 산업이라 출연을 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일본 지사에 연락을 해서 레스터 브라운의 <에코 이코노미>를 긴급 우편으로 받아 가지고 프랑스로 갔다. 베르트랑의 대표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 에는 <에코 이코노미>의 저자이자 그의 친구인 레스트 브라운이 쓴 ‘에코이코노미를 건설하자’는 서문이 있었다. <에코 이코노미>에 있는 고철 재활용이 친환경이라고 쓴 구절을 보여주면서 현대제철이 바로 세계 2위의 고철 재활용 철강 회사임을 알려줬다. 오해가 풀린 베르트랑은 이후 촬영에 적극 협조해 주었고 필자는 그의 헬기를 타고 파리 시내를 관광하는 행운도 누렸다.

체코 프라하의 한 스튜디오에서 홍보 음악 &lt;현대제철 환타지&gt;를 촬영하는 모습. 실제 음악 녹음은 체코 오스트라바시에 있는 야나첵 오케스트라 홀에서 진행했다.&nbsp;&nbsp;[자료제공=ESG네트워크]
체코 프라하의 한 스튜디오에서 홍보 음악 <현대제철 환타지>를 촬영하는 모습. 실제 음악 녹음은 체코 오스트라바시에 있는 야나첵 오케스트라 홀에서 진행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한편 홍보영화 배경음악(현대제철 환타지)은 체코 오스트라바(Ostrava)시에 있는 야나첵 오케스트라에서 작곡·녹음을 했고 직접 홍보영화에 출연도 했다. 5.1Ch로 녹음을 해야하는 관계로 65인조 오케스트라가 각 파트별로 열네 차례로 나눠 녹음하느라 연주가 14시간이나 진행됐다. 현대제철 환타지는 영화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연상 될 정도로 음악 그 자체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제작된 홍보영화는 2005년 <THE NEW YORK FESTIVALS>에서 WORLD MEDAL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한편 회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편은 세 파트로 구성했는데 도입부와 각 파트를 연결하는 브릿지 화면에는 현대 무용수의 춤추는 모습을 담았다. 이 또한 철강회사 홍보영화에선 파격이었고 좋은 반응도 얻었다.

홍보영화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건설시 해외 고객들에도 좋은 홍보자료가 됐다. 첫 사업이라 철강 원료부터 설비까지 모든 것을 처음 만나서 새로 시작해야 하므로 첫 인사는 항상 홍보영화로 시작했다.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녹음된 고화질에 최신 음향은 현대제철에 대한 첫 인상을 좋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보 <푸른연금술사>와 홍보영화는 단번에 철강업계와 광고업계에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철강업계 종사자들이 좋아했다. 철이 문명의 이기라는 장점이 있지만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점은 늘 유쾌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가장 앞선 ‘자원순환 소재’라는 점은 철강인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했다.

이러한 사실이 홍보되면서 무엇보다 경쟁사가 긴장했다. 그 회사는 자사 제품으로 만든 캔(can)에 꽃을 심어 화분으로 재활용하는 사진을 신문 홍보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본격적으로 철이 친환경 소재임을 TV 등에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친환경 도시인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의 대중 교통수단 모습 등을 화면에 담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러한 홍보는 철강인 모두에게 기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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