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보험·공제 가입한 의료인 공소제기 면제
진료기록·CCTV 위·변조 등은 면제에서 배제
전체 전공의 80% 사직서 제출 가운데 달래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nbsp;조규홍 제1차장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상황센터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를 진행 중이다. [사진 제공=뉴시스]<br>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조규홍 제1차장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상황센터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를 진행 중이다. [사진 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의대 정원 확대로 주요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이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의료계 달래기에 나섰다. 그동안 의료계가 꾸준히 요구해왔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법무부와 함께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의 사법 위험을 낮추기 위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했을 경우 의료사고에 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 사고가 날 경우 의료진의 소송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그동안 의사단체가 요구한 의사 증원의 전제 조건 중 하나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에 따르면, 책임보험공제(보상한도가 정해져 있는 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이 의료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의료과실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한다. 책임보험공제는 필수의료 분야를 포해 미용이나 성형 등 모든 의료 행위가 해당한다.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의료과실이 발생해도 공소 제기를 할 수 없으며, 응급환자에 관한 의료행위나 중증질환, 분만 등 필수의료행위에 관해 환자에게 중상해가 발생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다. 종합보험공제는 발생한 피해 전액을 보상하는 보험이다. 특히,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하면 필수의료행위를 하던 중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 경우 형의 감면을 적용받을 수 있다.

특례법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과 중재 절차에 참여해야 적용된다. 또한, 면책 제외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특례 적용을 배제한다. 면책 제외 사유는 △진료기록·폐쇄회로TV(CCTV) 위·변조 △의료분쟁조정 거부 △환자 동의 없는 의료행위, 다른 부위 수술 등이다.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과 중재 절차가 신속하게 개시돼 의료사고에 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감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환자와 그 가족이 안게 되는 의료사고 입증의 부담도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험을 가입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제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가해자의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1항과 유사한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9년 해당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 한상형 형사법제과장은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상해를 수반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교통사고와 다르게 의료행위는 일정 부분 법적으로 허용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와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의료행위에서 발생한 중과실을 포함할 경우 헌재 결정과 상충할 수 있기 때문에 필수의료 영역에 한해 특례를 적용하는 쪽으로 제정안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개한 법안은 초안으로 정부는 논의를 거쳐 추후 보완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이다. 오는 29일 국회도서관에서 공청회를 개최해 추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정부가 이번 특례법 초안 발표와 함께 법안 의견수렴 등 제정 절차의 빠른 진행을 예고한 데에는 최근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집단 이탈에 일종의 당근책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주요 99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전날 오후 7시까지 사직서 제출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80.6% 수준인 9909명으로 집계됐다. 근무지 이탈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72.7%인 8939명으로 확인됐다. 

앞서 정부는 집단 사직으로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오는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면허정지 등의 법적 조치를 예고하는 등 복귀 데드라인을 그은 바 있다. 아울러 공익을 위해 전공의들의 사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법률 검토를 마치는 등 복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특례법 추진은 전공의발 이탈 행렬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고 전공의들의 복귀를 유인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 차관은 “의료계에 다시 한 번 대화를 제안한다”면서 “집단행동을 접고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를 마련해 구체적인 대화 일정을 제안해 준다면 정부는 즉시 화답하겠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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