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삼성전자는 2006년 말에 임원용 홍보지침서인 ‘사례로 알아보는 언론홍보 제대로 알기’ 책자를 발간했다. 이 회사는 신입사원 교육용 또는 임원용으로 ‘홍보 강의’를 실시해 왔지만 이처럼 임원용 홍보지침서를 별도로 제작한 것은 처음이다. (...) 머리말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회사 임원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언론과 접촉하는 임원은 그 순간만큼은 삼성의 ‘앰배서더’”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임원의 홍보 10원칙’을 제시했다. △언론에 발표할 일이 있으면 사전에 반드시 홍보팀에 연락한다 △자신이 가진 영향력의 크기를 적절하게 파악해야 한다 △반드시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언론에 대해 편파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노코멘트’를 할 경우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인다 △취재기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등 불합리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이다. (동아일보 2007.3.2.)

삼성전자 임원들에게 배포한 언론대응 방법. 현장에 꼭 필요한 대응 방법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
삼성전자 임원들에게 배포한 언론대응 방법. 현장에 꼭 필요한 대응 방법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2007년이면 필자도 홍보를 배워가면서 하던 시절이다. 삼성전자 사례집은 홍보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맞는 매뉴얼(홍보원칙)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언론에 발표할 일이 있으면 사전에 반드시 홍보팀에 연락한다’는 원칙에 놀랐다. 내부 임직원의 무분별한 언론 대응에 대한 어려움은 홍보 오디세이 ‘기자와 친해지기(7)’에서 소개한 바 있을 정도로 어렵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홍보담당자가 호소하면 설득력이 없고 일에 자신이 없는 것으로 비쳐서 말도 못 하고 속앓이만 하던 때 단비 같은 기사였다. 그러나 기사를 회사 내부에 배포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대부분 임직원은 관심이 없었고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언론 플레이(제보)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매뉴얼 너머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홍보팀장은 내부 현황에 정통해야 하고 다양한 외부 경영 여건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외부 언론 브리핑 때는 회사를 대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단어의 뉘앙스 차이 하나가 엄청난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도 하므로 평소 내외부 정보 파악이 잘 돼 있어야 순발력 있는 대처가 가능하다.

회사나 조직이 홍보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언론 보도로 인해 회사가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형사처벌까지 갈 수 있다. 둘째는 형사처벌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에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호출될 수도 있고, 정부 기관의 해명이나 다양한 보고 요구가 따를 수 있다. 셋째는 시민단체나 이해관계자와의 갈등이 유발되는 경우다. 넷째는 회사 이미지 실추로 손익에 영향을 주는 경우다. 다섯째는 우수 인재 유치 차질이나 직원들의 사기 저하와 관련이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의 조사나 호출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사태의 원인은 해당 부서에 있으나 언론에 보도됐다는 이유만으로 홍보담당자가 곤혹스러워진다.

따라서 예방 홍보를 하거나 돌발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 정보에 정통해야 하고 상사의 홍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내부 정보 획득이 더 어렵다. 따라서 상사의 힘을 나의 힘으로 만들어야 했다. 상사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문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사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던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책이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나름대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많아서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계안 회장과 우석훈 박사의 대담집 &lt;진보를 꿈꾸는 CEO&gt; 표지 사진. 한국 재벌기업의 내부 문화와 오너들의 특성 등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다.<br>
이계안 회장과 우석훈 박사의 대담집 <진보를 꿈꾸는 CEO> 표지 사진. 한국 재벌기업의 내부 문화와 오너들의 특성 등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다.

이계안·우석훈 공저 <진보를 꿈꾸는 CEO>(2010). 우선 저자들에게 관심이 갔다. 이계안 회장은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카드·캐피탈 회장과 국회의원을 하신 분인데 IMF 외환 위기 당시 현대그룹 COO(최고운영책임자)로 그룹 구조조정(계열분리)를 주도했다. 2000년 필자가 근무하던 강원산업이 인천제철에 합병된 것도 이분이 주도했다. 당시 신문로 강원산업 사무실의 미로 같은 복도에서 뵌 적이 있었다. 현대그룹에서 이명박 대통령 다음으로 출세가 빨랐던 분이라 후배들에게 늘 흠모(欽慕)의 대상이었다. 현대에 입사한 계기가 은사이신 서울대 상대 이현재 교수가 현대에서 제2제철소 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입사하게 됐다고 한다. 우석훈 박사는 생태경제연구회 회원으로 2003년부터 알고 지냈는데 2007년에 출간한 <88만원 세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현상 이면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는 젊은 학자였다.

우석훈 박사가 묻고 이계안 회장이 답변하는 대담집이었는데 직장인, 특히 현대그룹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매우 설득력 있는 말씀집이었다. 이 회장은 현대그룹에서 출세 3대 요소인 담배, 술, 골프를 하나도 안 하는 분이었다. 골프는 상무로 승진하고 홍보업무가 추가됐는데도 안 치다가 사장이 된 후 잠시 쳤다. 그럼에도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 배경이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한다.

“계획은 먼저 세우고, 일은 제때 하고, 평가는 자주 받아라”

지시를 받고 일을 하면 내가 일하는 동안 지시를 내린 상사의 생각은 더 정교해지게 된다. 따라서 보고해도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기가 힘들게 된다.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면 상사의 신뢰를 잃게 되고 핵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내가 먼저 계획(기획)을 하면 그 일은 내가 늘 앞서가게 된다. 그리고 미루지 말고 제때 보고를 하면 상사가 평가를 해주고 교정을 해준다. 따라서 내가 일을 주도하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첫째는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서재가 돼야 한다. 똑같은 정보라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은 독서에서 나온다. 정주영 회장도 본인의 첫째 스승은 부모, 둘째 스승은 독서라고 했다. 의사결정권자는 항상 “너는 늘 새로운 얘기를 해준다”고 했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상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이 공조(共助)화 되고, 따라서 일의 성공률도 높아지게 된다.

두 번째는 사람(상사)의 마음을 사야 한다. “이 사람이 나를 믿는구나”라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 번외경기가 아니라 근무시간에 잘하는 게 중요하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퇴근 이후에 유력자들하고 술 마시고 잘 놀러 다니면 승진할 줄 아는데, 한 번은 그럴 수 있지만 두 번은 절대로 안 된다.

세 번째는 ‘듣는 노력’이다. 지위가 높아지면 멀리 보는데, 안 들리는 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승진해서 그 자리를 지키려면 더 많이 보는 것만큼 더 듣는 노력을 해야 한다. 회의할 때 자기 혼자 떠드는 이유가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많이 보니까 말을 많이 하는데, 소통하려면 보고 있는 먼 곳보다 딛고 있는 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계획은 먼저 세우고, 일은 제때 하고, 평가는 자주 받아라”라는 간단하면서도 핵심이 담긴 명언을 나 자신에게 투영해 보았다. 독서는 나름대로 하는 편이었다. ‘듣는 노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노력하면 된다. “이 사람이 나를 믿는구나”는 쉽지 않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 있었다. 회사를 위해 사심(私心)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니 일은 더 많아졌지만, 늘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승진은 자동으로 따라왔다. 승진이 좋은 이유는 보수적인 기업문화에서 진보적인 내 가치관을 실행(시험)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진보적 가치 실행은 간단하다. 직원들 줄 세우지 않고 공정하게 평가하고, 협력사에 갑질 않고 공정한 기회 보장과 평가를 해주는 것이다. 

기업의 CEO는 나름대로 역사관, 국가관, 사회관이 있다. 자신의 기업 경영이 회사와 오너는 물론이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기업이 성장하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이러한 관점을 가진 분들이 CEO가 된다. 필자의 상사도 대부분 이러한 관점을 가진 분들이어서 퇴직할 때까지 홍보업무가 내 업무분장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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