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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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민트

백지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이곳은 모래 왕국이다.
  이질적일 정도로 높고 빽빽한 회색의 건물들 사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도시를 가르는 아득한 지평선으로부터 금빛 실자락들이 일렁인다. 햇빛을 받은 가녀린 모래알들. 나의 도시는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심지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높아지는 건물 높이에는 깊은 사막에 대한 경외심과 일말의 반항심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빌딩 숲 너머 저 멀리 손에 잡힐 듯 사라질 듯한 거리에 바로 미지의 사막이 있지만 당장 눈앞엔 회색 건물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이 도시이다. 나처럼 사막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줄곧 들어온 말이 있다.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에 똘똘한 아이들은 눈에 총기를 띤 채, 왜?라고 묻는다. 그럼 어른은 이렇게 말한다. 건너는 사람들은 모두 사막의 요정이 삼켜버리니까! 항상 아이들의 사막에 대한 호기심은 겁을 잔뜩 먹어버린 비명으로 끝이 나곤 했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큰 후로는 사막에 대한 사실적인 소문들이 무성했다. 누가 사막을 간다고 했다가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었다더라, 모래 폭풍에 실종된 남편의 넥타이가 날려왔다더라, 하는 어딘가 조잡한 그 소문들에 나는 누군가 일부러 사람들이 사막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소문을 흘리고 다니나 했다. 아주 가끔 ‘쟤가 부잣집 딸내미라더라’와 같은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애들은 돌연 집안의 온 식구가 함께 홀연히 도시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도 했을 뿐더러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은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인 것처럼 쉬쉬하며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지우기만 급급했을 뿐이었다. 그 애와 가족들이 어떻게, 왜 도시를 떠났는지. 아니, 애초에 떠난 건 맞는지 아는 사람들은 적어도 내 주위엔 없었다. 도시를 떠난 이가 생기면 한동안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지만 그런 어수선함과 일말의 공포심은 금세 작열하는 모래 속의 일상으로 잦아들곤 했다. 그 시절까지만 해도 사막에 대한 나의 관심은 보이면 보고 들리면 듣는, 딱 모래 한 알만큼이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잡화점은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일반적인 생활용품들을 구비해 놓은 곳이다. 더위와 모래를 씻어내기 위한 부드러운 수건과 다양한 향기의 비누서부터 아침마다 농장에서 받아오는 신선한 낙타 우유, 오아시스의 차가운 샘물 그리고 꽃이 피기 전의 식용 선인장과 같은 먹거리들. 또 모래에서 채 취하는 유리 제품도 몇 개씩 취급하고 있다. 나는 이런 작은 가게에서 일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내 또래들은 도시를 뒤덮고 있는 회색 건물의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 도시에 필요한 모든 전력은 그 회색 건물들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들었을 만큼 지분이 대단한 곳이라 학교를 졸업할 시기의 나에게도 발전소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어쩐지 그 당시 나는 그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떨떠름하게 다가와 거절했던 기억이 있다. 발전소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도시에서의’ 내 미래를 보장하지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는 삶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가졌던 떨떠름함은 아마 그런 예정된 치열함에 대한 반감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지금의 내 삶을 발전소 직원들과 비교해본 다면 벌이와 안정성에서 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잡화점 나름의 평화로운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찾으며 내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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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유난히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이다.
  이런 날 건물들 사이로 아득히 일렁이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스레 나까지 아찔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찌르듯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볕을 받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햇살이 강한 날 밤은, 꼭 모래 폭풍이 찾아온다.
  늦은 밤, 도시에 짙은 어둠이 내리면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사막의 폭풍. 모래 폭풍 은 모래 참새들의 위협적인 지저귐과 함께 폭풍을 미처 피하지 못한 거리의 온갖 술주정뱅이들, 수상한 자, 골목의 작은 고양이까지 모두 사막으로 데려가 버리는 냉정한 바람이다. 휘몰아치는 거친 바람 소리와 창문을 날카롭게 두드리는 모래알 소리. 그리고 바람이 부는 시간에만 꼭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모래 참새들의 울음소리에 도시 사람들은 집 안에 들어가 문과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이 소란스러운 밤이 어서 지나길 기다려야 했다. 모래 폭풍은 마치 약을 올리듯 아주 불규칙적으로 도시를 찾아오기에 마땅한 대비도 어려워 도시 사람들의 영원한 골칫거리가 되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어딘가 기묘한 이 풍경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폭풍이 다녀간 도시는 모래투성이의 아수라장이 된다. 고운 모랫발에 여기저기 찢어진 차양막과 가게 문을 막아버릴 만큼 높게 쌓인 모래탑을 치워내는 점원들, 길바닥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인 모래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한 구둣발로 모래 더미들을 밟고 지나가는 발전소 직원들, 평소에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던 모래 청소부들의 빗자루 소리. 조금은 심란한 풍경임에도 그 누구의 불평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모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기에.
  나는 잔뜩 쌓인 모래를 밀어내며 잡화점 문을 열었다.
  폭풍이 몰고 온 매캐한 모래 먼지 냄새가 아닌 달큼하기도 상쾌하기도 한 잡화점 냄새가 콧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나는 이 냄새가 좋다. 진열장의 비누 향기일까. 선인장 과육의 향기일까. 좋아하는 냄새에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창고에서 커다란 빗자루를 꺼내 들었다. 손님 맞을 준비를 위해 나도 여느 도시의 사람들처럼 가게 앞의 거대한 모래 더미들을 치워내야만 한다.

  “어서 오세요.”
  가게 안까지 흘러들어온 자잘한 모래알들과의 싸움을 마친 뜨겁고 건조한 오후. 딸랑이는 도어벨 소리와 동시에 열린 잡화점 문 앞엔 자기 덩치만 한 낡은 배낭을 맨 작은 여자가 서 있었다. 난쟁이가 매고 다닐 것 같은 둥그렇고 방정맞은 배낭에 기름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뭉쳐 산발이 된 머리를 한 그녀는 문 편에서 쭈뼛이 서 있다가 카운터에 가만 서서 자기를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수줍게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자는 한동안 조용히 물건을 구경하는 듯하더니 불현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여기 비누는 이게 전부인가요?”
  나는 슬며시 카운터에서 나와 여자가 서 있는 진열대 앞으로 다가갔다. 여자의 옆에 서니 훅 끼치는 진한 땀 냄새. 순간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독하고 아득한 냄새에 흡. 하며 그만 소리 나게 숨을 참아버렸다. 실수했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여자가 먼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오랜만에 도시에 돌아와서요.”
  죄송합니다, 하며 부끄러움이 섞인 사과의 말을 덧붙인 여자는 나를 슬쩍 쳐다보며 웃었다. 뺨을 붉히고 서글서글 웃는 여자를,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얼굴을 빤히 쳐다봐 버릴 뿐이었다.
  “지금은 오렌지 비누랑 오이 비누랑 여기, 이 민트 비누가 전부예요.”
  구석에 하나 남은 옅은 녹색의 민트 비누를 집어 여자에게 건네니, 여자는 반색하 며 비누를 건네받았다.
  “제가 찾던 거예요!”
  여자는 민트 비누를 보물처럼 소중히 들고 카운터로 걸음을 옮겼다.
  “도시에서도 민트가 나나 봐요.”
  “아마 외곽 오아시스 주변에 자생하는 민트가 조금 있을 거예요.”
   나는 서랍에서 포장용 종이를 꺼내 그녀가 소중히 들고 온 비누를 감쌌다. 여자는 혼잣말인지 아니면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헷갈릴 정도로 사막에는 더 많은 민트가 있는데, 라며 중얼거렸다.
  “사막이요?”
  예상치 못한 사막이란 단어에 놀란 나는 비누를 포장하던 손길을 멈추고 되물었다. 여자는 슬쩍 끄덕였다.
  “남쪽 오아시스에 민트 군락이 있어요.”
  아마 이 잡화점 열 배 정도는 될걸요, 하며 여자의 손가락은 잡화점 구석서부터 문간까지 가리키며 군락지의 거대함을 설명하려는 듯했다.
  “그렇게 많이 자란다고요?”
  “그럼요. 게다가 조만간 꽃 필 철이라 그 오아시스를 보고 있으면 정말 장관이 따로 없어요.”
나는 진작 포장을 마쳤지만 무의미하게 만지작거리고 있던 비누를 슬며시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이내 감상에 젖은 얼굴을 거두고는 환한 표정으로 비누를 건네받았다.
  “아, 내가 사막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지? 하는 듯이 여자는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나를 장난스레 쳐다보곤 잡화점을 훌쩍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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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이라.
  아까 낮에 만난 여자의 말 때문인지 오늘 밤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이미 잠들었을 시간에도 뒤척이던 나는 아무리 눈을 감고 불러도 오지 않는 잠에 백기를 들었다. 차라도 한 잔 마실까 하여 비척거리며 나온 부엌엔 차갑고 쓸쓸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리 어둡던 부엌에 불을 밝히고, 찻물을 준비하고, 찻잎을 계량해 넣는 중에도 머릿속은 한창 낮의 여자와 사막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여자가 내게 거짓말을 했을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는 허황된 거짓말처럼 쉬운 것은 없을 테니까. 냄비 속 불규칙적으로 보글거리는 물방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그것들이 어쩐지 지금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여러 생각들과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밤잠을 설친 탓에 얼마큼 몽롱한 기분을 하고는 잡화점 문을 열었다. 입이 찢어지게 쩍 하고 하품하며 냉장고에 배달된 낙타 우유를 채워 넣던 나는 내심 어제의 그 여자가 잡화점에 다시 방문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재고 정리와 간단한 청소를 마치 고 하릴없이 카운터에 앉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만 바라보며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에 집중하던 중, 카운터 위로 통- 하고 물병이 놓였다.
  “얼른 계산해주세요.”
  하며 싱겁게 웃으며 말하는 그 사람은 발전소에 다니고 있다던 내 동창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난 동창에 대한 반가움보다 손님이 온 줄도 모르게 멍하니 있었다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네. 일은 어때?”
  나는 허겁지겁 동창이 건네는 지폐를 받아 들며 으레 할 만한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얼굴은 어쩐지 여위었으며 차려입은 깔끔한 정장과는 대비되게 조금은 초라해지기도 한 느낌이 있었다. 차림새나 시간대를 보아 아마 출근길에 들른 모양이다. 지친 표정의 그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발전소야 늘 그렇지 뭐. 너는 어때?”
  묘하게 생기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되물어오는 그의 질문에 이유를 알 수 없이 당황한 나는 여긴 비슷하지 뭐, 하며 말끝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잔돈과 물을 건네 든 동창은 얼마간 따뜻해 보이는 눈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다음에 한번 보자, 하며 투박한 구두 소리를 내며 잡화점을 나섰다.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충분히 흐려져 버린 어린 시절의 그의 모습과 불과 몇 시간 전의 그의 모습이 뒤엉켜 자꾸만 머릿속에 일렁거렸다. 세세한 부분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부드럽고 활기차던 예전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막의 밤처럼 차갑고 건조해져 버린 그의 행색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아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그가 보는 나도 비슷하게 저물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 편에 스멀거린다. 건조하게 잠들어가는 우리에 대해 생각하며 그날은 그렇게 하루를 흘려보냈다.

  오늘 밤도 폭풍이 올 것 같다.
  차양막 아래 얇게 패인 그늘에서 지글거리는 태양을 모로 보며 생각했다.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사방을 뜨겁게 쪼아대는 볕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속에서 반항심이 끓어 나는 모로 보고 있던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해버렸다. 수 초가 지났을까, 강한 볕 속에 한낱 연약한 사람의 눈으로 해를 쳐다보고 있었던 탓인지 슬쩍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오늘은 문 닫기 전에 차양막을 걷어야겠다 하고는 눈물을 훔치며 도로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뜨문뜨문 손님들이 오갔던 하루. 뜨거운 열기가 가실 무렵, 하늘엔 분홍빛이 돌기 시작하고 잡화점 뒤쪽 짙은 하늘부터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슬슬 문 닫을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도어벨이 딸랑, 하고 울린다. 
  며칠 전 봤던 모습과는 다르게 깔끔히 정돈된 머리카락과 한껏 가벼워진 복장을 한 여자가 잡화점 문을 열곤 빠끔 쳐다보며 말한다.
  “아직 낙타 우유 남은 것 있나요?”
  반나절 동안 차가운 냉장고에 들어 있던 낙타 우유를 건네받은 여자는 그 자리에서 꿀꺽 소리가 나도록 몇 모금을 마셨다.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그토록 기다렸던 인물의 등장에 물끄러미 그녀의 옆얼굴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우유를 쉬지 않고 들이켜던 여자는 병의 바닥이 보이자 카운터에 병을 소리 나게 내려두며 손등으로 입가를 닦는다. 그러더니 참았던 숨을 후, 하고 내쉬더니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길래 나는 어차피 남은 물건이에요, 하며 값을 지불하려는 여자에게 가볍게 손사래 쳤다.
  “오늘 모래 폭풍이 지나가고, 내일 새벽에 출발할 예정이에요.”

  이미 한참 전에 다 마신 빈 병을 만지작거리며 카운터 앞에서 잡화를 구경하며 얼쩡거리던 여자가 결심한 듯 별안간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런 그녀에 나는 그 의중을 파악해보려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그런 내 표정이 그저 우스꽝스러웠는지 작게 깔깔거리다가 짓궂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도 사실 사막에 관심이 있죠?”
  잘 벼려진 화살촉처럼 내 깊은 마음속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여자의 발언에 나는 그만 말을 더듬으며 바보같이 굴어버렸다. 이리 와 봐요, 하며 여자는 내 손목을 잡아 잡화점 밖으로 이끌었다. 해가 완전히 진 도시는 제법 쌀랑했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잡아끌던 내 손목을 놓아주고는 손을 뻗어 하늘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쪽 하늘을 봐요, 한다.
  “저 별을 따라가면 내가 말했던 남쪽 오아시스에 다다를 수 있어요.”
  우거진 별들의 숲속 사이로 여자의 손끝이 가리키는 별은 다른 별들과는 다르게 약간 녹색 빛이 도는 것 같았다.
  “사막은 모래 폭풍이 지나간 뒤에 진입할 수 있어요.”
  그편이 생존 확률이 더 높거든요, 하며 여자는 얼핏 발랄해 보이지만 자조적인 웃음을 섞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거.”
  여자는 내게 동전 크기의 은색 나침반을 건넸다. 그러더니 아까 우유의 보답이에요, 하며 씩 웃는다.
  폭포수처럼 들어오는 신비롭고 낯선 정보들과 더 이상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한 상황에 얼이 빠져 있던 내게 작은 나침반을 건네준 여자는 이제 할 만큼 했다는 듯 자리를 뜨려 했다. 나는 떠나려는 여자를 급하게 붙잡고 물었다.
  “도시에서 남쪽 오아시스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물어볼 것은 많았지만 내일 당장 떠나야 한다는 여자를 잡고 모든 것을 물어보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여자가 떠나간 거리를 눈으로 좇으며 나침반을 꼭 감싸 쥐고는 결심했다. 도시를 떠나보기로.

  귓바퀴에 빙글거리는 모래 참새 소리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알 소리가 유난히 크다. 가려진 커튼 사이로 슬쩍 살펴본 바깥은 온통 뿌연 연기의 세상이었다. 나는 걷었던 커튼을 도로 치며 다시 짐가방을 꾸렸다. 잡화점에서 몇 병 챙겨온 샘물들, 상할 수 있으니 우유는 조금만. 말린 선인장과 육포 그리고 작은 칼, 챙이 넓은 모자와 옷장 속에 몇 년은 걸려있던 긴 소매의 겉옷까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준비를 끝마쳤다는 기분에 은근히 가지고 있던 긴장감이 다소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남쪽 오아시스만 보고 오는 거야. 나는 그렇게 되뇌며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이 떠진 시간은 자글거리던 폭풍의 소리가 잦아진 지 오래인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늦어진 시간에 화들짝 놀라며 깬 나는 얼른 문 앞에 챙겨 둔 가방을 둘러메고 운동화 끈을 묶고 박차듯이 집을 나섰다. 정확하진 않지만, 어젯밤 여자가 떠나간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근거는 없어도 왠지 그 방향으로 도시를 떠나면 될 것 같았다. 마침 은색 나침반도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잡화점에 출근하던 평소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에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태양이 중천에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아직 도시를 벗어나지 못해 조바심이 났다. 그래도 도시를 에워싸고 있던 회색 건물은 어느새 내 뒤편에 자리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그래, 이쯤이 외곽이야, 하며 마음속 일렁이기 시작하는 불안을 억지로 잠 재워 가며 걸어갔다. 막상 도시를 떠나기로 하니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는데도 이곳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보여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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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의 밤하늘은 도시에서 보던 밤하늘과는 사뭇 달랐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기울어질 때쯤, 나는 알지는 못해도 사막에 막 도달한 느낌을 받았다. 아슬아슬하게 길을 잇고 있던 아스팔트 도로가 모래와 뒤엉켜 있는 마지막 지점. 그곳은 사막의 입구와도 같았다. 지치기도 했을 뿐더러 해가 지고 도시를 벗어나니 확실히 쌀쌀해진 기온에 나는 챙겨온 겉옷을 꺼내 입으며 모래 언덕에 잠시 앉았다. 달빛을 받은 모래알들과 잔뜩 뿌려진 별들에 천지가 반짝이고 무엇 하나 하늘을 가리는 게 없는 사막의 밤. 반나절의 고생은 뒤로하고 그 고요한 황홀감을 잠시 만끽했다.

  내가 도시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사막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호기롭게 입성한 사막 탐험 길은 상상보다 더 녹록지 않았다.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상할 것을 염두에 둬서 조금만 가져온 우유조차도 이미 상해서 입에 대지도 못하고 버린 지 오래. 힘들 때마다 무작정 먹어 치워 버린 육포 덕에 같이 바닥을 보이는 물, 뜨거운 태양 빛과 식량이 동나고 있다는 불안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남쪽에 있다던 오아시스는 보일 것 같지 않았고, 언젠간 한 번은 신기루를 보고 마구잡이로 달려갔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모래 언덕 위에 올라 눈을 가늘게 뜨고 열기에 이글거리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헐떡이던 숨이 차분해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자글자글한 시야에 둥그런 덩어리가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뭘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보다도 이제는 먹을 수 있는 걸까? 하는 희망 섞인 기도가 되어버린 처지가 고달프다. 모자를 고쳐 쓰고는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무언의 덩어리로 슬그머니 다가가 본다. 가까워지자 더 선명해지는 윤곽에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저것이 실재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거칠어지는 숨결과 미끄러운 모래 탓에 넘어질 듯 말 듯 한 자세로 뛰어갔다. 가까워지는 덩어리는 어떤 낡은 배낭이었기 때문에 유의미한 물체의 정체에 나는 더 기대하게 되었다. 초조한 손길로 배낭의 낡은 버클을 풀고 있는데 왠지 묘한 기시감이 든다. 이거, 전에도 본 것 같은데. 조급하던 손길이 태엽이 다 된 장난감처럼 서서히 멈추었다. 여자의 배낭이다. 더위 때문인지 당혹감 때문인지 모를 땀이 등줄기를 타고 차갑게 흘러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여자의 배낭은 내 것보다도 훨씬 야무지게 꾸려져 있었다. 덕분에 배낭 앞주머니에 들어있던 부싯돌로 사막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불을 피워 볼 수 있었다. 낮에 배낭을 발견하고는 혹여나 근처에 여자가 있을까 싶어 지치는 줄도 모른 채 주변을 뱅뱅 돌며 찾아 헤맸지만, 그 고생이 무색하게도 여자의 흔적은 쥐뿔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도시에 휘몰아치던 모래 폭풍과 함께 사라진 것처럼. 타닥거리며 타고 있는 모닥불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긴다.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혹시 나쁜 일을 당한 건 아닌지, 질문의 꼬리를 물다 보니 내가 왜 사막을 모험하겠다는 선택을 했는지까지 의구심이 든다. 일렁이는 불빛과 같이 답은 나오지 않고 약을 올리듯 고개만 살랑거리는 여러 가지 생각들 따위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나는 사실 도시가 싫었던 걸까. 머리 위의 까만 밤과 함께 잠기는 눈꺼풀을 서서히 끔벅이며 생각했다. 잠결인지 일렁이는 불빛 너머로 저 멀리 반짝이는 무언가가 포착된다. 저게 남쪽 오아시스였으면 좋겠는데. 하는 덧없는 생각을 하며 잠에 굴복할 때쯤. 불현듯 돋아나는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진다. 저게 남쪽 오아시스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울어지던 고개를 번쩍 쳐들고 모닥불 너머의 지평선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은근히 반짝이는 게 꼭 수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마구잡이로 방망이질하는 심장에 아니라고, 저것도 신기루일 수 있다. 하고는 차분한 마음을 억지로 상기시키면서 짐을 쌌다. 하지만 밤의 사막엔 신기루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가파른 모래 언덕을 썰매를 타듯 구르며 내려갔다. 고동치는 심장과 더불어 조급해지는 마음을 걸음이 영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나의 시선은 오로지 저 앞의 오아시스에 가득 맺혀있다. 가까워지는 오아시스가 점차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물가로 시원하게 자라난 몇 그루의 야자수들과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오아시스를 가득 감싸 안은 푸르른 민트 군락지. 지난 십여 일의 고생이 모두 보답 받듯 눈앞엔 아찔하고도 아득한 절경이 펼 쳐졌다. 정강이를 간질이는 잘 자란 샛초록의 민트들을 두 손 가득 만져본다. 한가득 밀려오는 청량한 향기와 까슬거리는 감촉에 그만 기운이 빠지며 느긋한 생각이 들고 만다. 한숨 가득 시원한 풀내음을 들이키고는 그대로 자빠지듯 누워버렸다. 여독이 점령해버린 무거운 나의 몸은 털썩하는 가벼운 충격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두운 하늘엔 이만 기울어져 가는 달이 둥실 떠 있다.

  그 여자도 이 풍경을 봤겠지.
  적막함에 나도 모르게 뱉어낸 마음은 금방 허공으로 흩어 없어졌다. 눈을 감고 다시금 크게 숨을 들이켜본다. 복부 깊은 곳까지 스미는 상쾌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잡화점의 냄새도 이렇게 좋았던가. 왜인지 도시의 생활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다시 뵙네요.”
  까무룩 잠이 들뻔한 나를 깨운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깔끔한 모습의 여자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오아시스 건너에서 밝은 표정으로 내게 소리쳤다. 여자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켜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도 묘하게 기운 없는 태도로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을 뿐이고, 나도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질 않아 서로 애매한 공기만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여자가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사뿐히 물가를 돌아 내게 다가왔다.
  “제 가방 주우셨죠?”
  여자가 앉아 있던 내게 손을 내밀며, 이제는 초록이 무성한 내가 지나온 길 어딘가를 슬쩍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그에 나는 여자의 손을 붙들고 일어섰고, 조심스레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끄덕였다. 다시 어두운 사막 어딘가를 응시하던 여자는 한동안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이 없었다. 어색한 기류에 하찮게 꼬물거리던 내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덕분에 오아시스까지 올 수 있었어요.”
  비록 말에 자신감은 없었지만, 진심을 담았다. 이 말 때문인지 여자는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마주 보며 일전의 개구쟁이 표정을 하고는 신나게 웃었다. 처음엔 여자의 웃음에 당황했지만, 편안하고 유쾌한 웃음소리를 듣자 하니 점차 나까지 즐거운 마음이 들어 달빛을 가운데 둔 우리는 그렇게 한 동안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데 왜인지 웃으면 웃을수록 잠도 같이 쏟아져 내렸다.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고, 마음도 이리 즐거운데 눈꺼풀만큼은 내 멋대로 되지를 않았다. 마주하던 여자가 당황한 기색도 없이 픽 쓰러진 나를 보고는 자기 무릎에 머리를 뉘어주며 사뭇 진지하게 읊조린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 건가요?

  잠시 잠이 든 건지 화들짝 놀라며 깼다. 아직 주위는 어둡다. 손에 집히는 이파리들이 차갑다. 이질적으로 고요한 주위에 나는 고개를 둘러 여자를 찾아봤지만, 그녀는 내가 잠든 그 찰나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다시 도시에 돌아갈 거냐고? 그건 왜 물어본 건지. 답이 정해진 질문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멈칫하며 망설이는 나를 발견했다. 돌아가서 다시 도시의 삶에 만족할 수 있을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도시에서 찾을 수 있을지가. 무엇을 찾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정처 없이 풀밭을 더듬거리던 오른손에 여자의 은색 나침반이 쥐어진다. 마치 대답을 종용하는 것처럼.

■ 당선 소감 / 백지현 (여. 1996년생. 소프트웨어 개발자)

응원이 되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할 이야기를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하며 방 안에서 조금씩 써 내려가던 글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앞두고 한창 방황했던 무렵, 저는 책 속의 세상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상상 속에만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실재했던 신비한 이야기들. 그렇게 마음에 조금씩 스민 빗방울들이 이렇게 소중한 새싹을 틔우게 할 줄은 몰랐네요. 저는 지금 직장인으로서,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휴일의 고요한 방안이나 출근길 버스 안에서 재밌고 흥미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글로 옮겨보곤 했습니다. 이처럼 혼자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작은 불씨에 잘 마른 장작을 던져준 이 기회에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힘든 시기에 제가 책장 속을 유영하며 얻은 위로와 힘만큼, 저 또한 앞으로 누군가의 응원이 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을 써내고 싶습니다.

끝으로 항상 당근과 채찍으로 올바른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끔 도와준 우리 가족들과, 부족한 글임에도 좋게 평가해주신 투데이신문과 한국문화콘텐츠21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심사평 / 이순원(소설가) 

가상의 공간을 묘사의 힘으로 살려내

예심을 거쳐 올라온 9편의 작품을 찬찬히 읽었다. ‘직장인 신춘문예’답게 자신의 직장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았고, 뜻밖의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작품도 절반가량 되는 듯하다.

예심을 통과한 9편 가운데 「엄마 면허」, 「마임」, 「아감뼈로 흐르는 섬」, 「망치질을 멈추지 마」, 「사막의 민트」 5편을 골라냈다.

「엄마 면허」는 수십 년 후 인구 절벽 시대에 아이를 낳는 사람과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이야기로 발상은 재미있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지 못했다. 「마임」도 작가는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에 애를 쓰지만, 작가가 애쓰는 만큼 인물들의 고민이 썩 와 닿지 않는다. 「아감뼈로 흐르는 섬」은 문장이 퍽 안정되어 있고, 상황묘사가 돋보이는 부분이 많으나 궁극적으로 남녀 인물의 캐릭터도 불분명하고 이들의 고민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작가가 다 그리지 않은 이들의 현실적 고민을 독자들이 미루어 짐작해 주길 바라는 듯한 모습이다.

끝까지 남은 두 작품 가운데 「망치질을 멈추지 마」는 불안정한 직장과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이야기를 이끄는 문장의 힘에 대해서도 신뢰를 준다. 후반부에 해머링 맨의 등장도 이 작가의 솜씨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작품 전체적으로 인물의 등장 패턴이 갑자기 나오는 듯한 느낌이며,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 남는 것이 손에 닿으면 금방 녹고 말 함박눈 같은 희망이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사막의 민트」는 제목 그대로 사막에 둘러싸인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이제까지 사람을 건너간 사람은 없어도 어느 날 사막을 건너온 사람이 있다. 이런 가상의 도시에서 실패의 두려움을 안고 사막을 건너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실제 그런 사람의 활동사진을 보듯 매우 세밀하게 펼쳐진다. 온통 모래뿐인 가상의 공간을 묘사의 힘으로 배경을 채우고, 묘사의 힘으로 사막을 건너는 자의 설렘과 긴장감을 살려낸다. 심리에서도 배경에서도 끈질기고 탁월한 묘사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재의 특별함도 돋보인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문학의 길은 길다. 당선자도 낙선자도 부디 정진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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