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br>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홍보 업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을 맞게 된다. 어느 직종이나 나름의 애로 사항이 있겠지만 홍보맨이 특히 어려운 이유는 다양한 상황을 초래하는 저변의 인과관계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불특정 다수다. 고객(언론)이 좋아하는 상품(기사)도 불특정 다수고 고객 자체도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 등 불특정 다수다. 언제 뭐가 발생할지 모른다. 여기에다 성과 판단의 기준이 객관화되기 어렵고 특정인의 주관에 크게 좌우된다. 특정인은 조직 내 유력자다. 홍보맨과 회사와 특정인의 판단기준이 다를 때도 많다. 특히 회사와 특정인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는 홍보맨이 참 곤혹스럽다.

이러한 복잡한 업무는 언론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발생된다. 이 플랫폼은 언론인(기자)과 언론사로 구성되었는데, 이 둘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도 있다. 정치 성향의 기사는 둘의 가치 지향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언론사 내에서는 정체성과 정파성 차이라고 한다. 팩트에 기반한 기사인지 주장을 담은 칼럼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파성이 강한 기사도 있다. 둘 다 각자 중점을 두는 독자를 대변해서 갈등하는 관계로 조정이 쉽지 않다. 특히 언론사주가 다수(사원 주주)일 때는 거의 분열 상황까지도 간다.

기업이 상대하는 언론사와의 갈등 저변에는 광고비가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전 언론사의 수입은 광고비와 구독료가 각 50% 정도 됐고 상당히 풍족한 경영이 가능했다. 기자 초임이 대기업 2배 가까이 됐다. 권력과 금력에 굴하지 않는 특종과 가치 지향의 기사들이 넘쳤다. 이러한 언론 환경은 정치적 민주화 추진과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에 크게 기여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대기업 재벌의 회계 투명성도 많이 개선됐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형사처벌 이슈도 많이 감소했다.

또한 2000년대 시작된 IT 붐은 정보 소통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신문과 방송이 아니라도 이해관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수단들이 등장했다. 인터넷 언론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났고 특종이 아니라 속보 경쟁이 벌어졌다. 이 모든 정보들은 증권시장으로 모여들었고 실시간 정보 유통은 기업의 주가를 출렁이게 했다. 주가가 출렁이면 금융기관이 긴장하게 되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회사에 대한 대출 금리가 올라가고 주가는 다시 출렁이는 악순환이 된다. 이럴 때 불을 끄는 것도 IR성 홍보의 역할이다.

기자와 언론사, 회사와 경영자(오너). 4개의 추는 각자가 중요시하는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불특정하게 움직인다.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사전 조율을 잘해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홍보팀장이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일관되게 하고 결과에 책임질 수밖에 없다. 우왕좌왕하면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고 명예도 실추된다. 대응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필자가 정한 우선순위는 지난 회에 소개한 바와 같다. 1) 언론 보도로 인해 회사가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는 기사 2) 국회에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호출되거나, 정부 기관의 해명이나 다양한 보고 요구가 따를 수 있는 기사 3) 시민단체나 이해관계자와의 갈등이 유발되는 기사 4) 회사 이미지 실추로 손익에 영향을 주는 기사 5) 우수 인재 유치 차질이나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하는 기사다. 물론 기사 대부분은 다섯 가지 요인이 다 포함돼 있지만 우선순위가 있다.

한 언론사가 회사에 팩트 체크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도한 기사에 대해 로펌의 자문을 받았다. 자문 결과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음’이라는 답변을 받았다.&nbsp;&nbsp;[사진제공=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한 언론사가 회사에 팩트 체크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도한 기사에 대해 로펌의 자문을 받았다. 자문 결과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음’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언론인·언론사와의 갈등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한번은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석간신문이 회사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새로운 것들(NEWS)이 아니라 이미 보도된 내용을 제목과 관점을 바꿔서 크게 다뤘다. 이 기사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수사 강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기자는 회사 관계자에게 팩트 확인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한 것처럼 표현했다. 이러한 미확인 추측성 보도에 많이 지친 상황이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담당 기자에게 정식으로 항의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그 기자는 한동안 언론사(기자) 특유의 우월적 스탠스로 대응을 해왔지만 우리도 물러서지 않았다. 기자와 홍보팀의 갈등이 언론사와 회사(그룹)의 레벨로 올라가게 됐다. 이에 그룹 홍보실에 사태의 전말을 미리 주지 시켜놓고 끝까지 정정보도를 요구해서 받아 냈다.

여의도에 있는 한 언론사는 회사 출입 기자들이 다 아는 지나간 내용을 모아서 신문 초판 산업 면의 톱기사로 게재했다.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리마인드 시키는 기사였다. 이런 기사는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기사였고, 이러한 일이 몇 번 되풀이 됐다. 그 이면에 암묵적인 광고 요청이 있다. 그 기자와 같이 골프를 친 게 십수 년이고 마신 술이 몇 드럼이나 됐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 기자도 자기 회사를 위해 악역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악화된 언론 환경을 탓해야지 사람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경우 그 기자와 개인적인 감정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A 기자는 특종이 아닌데도 특종을 놓쳤다고 화를 내면서 십수 년 이어진 관계를 단절시켰다. A 기자의 분노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관계 단절로 확대시킨 건 좀 의아했다. 취재 사항에 대해 A 기자는 자신이 특종이라 확신했지만 이미 세 명의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었다. 다만 A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를 감안해서 내부 관계자와 숙의 후 공식 발표했다. 발표 직후 먼저 취재한 세 명의 기자는 이미 취재해 놓은 장문의 기사를 올렸다. 그들은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보도 시점을 기다려줬던 것이다. 그러나 A 기자와의 관계는 단절됐다. 십수 년 같이 어울려 마신 고급 와인과 비싼 사케도 소용이 없었다. A 기자의 또 다른 사내 입장이 희생양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회사를 위해 짊어져야 할 홍보맨의 역할이다.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사고 현장에 가까운 언론사 주재 기자들이 먼저 보도하게 된다. 곧이어 몇 개 언론사가 똑같은 내용을 올린다. 인터넷 언론은 한 사주(社主)가 수 개의 언론사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좀 지나면 더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을 추가한 기사가 나온다. 이후 기사 제목엔 회장님의 성함이 들어간다. 그 뒤엔 회장님의 사진이 같이 올라온다. 좀 더 지나면 앞의 기사에 과거 사고 이력이 추가된 기사가 올라온다. 이쯤 되면 이제 회사 내부에서 홍보팀에 대한 질책이 빗발친다. 그리고 이때쯤 TV 방송 기자들의 취재가 시작된다.

중대재해 기사 같은 경우는 기자와 홍보팀의 관계를 넘어선다. 회사 대 회사의 범위도 넘어서는 사회적인 이슈가 된다. 그럼에도 홍보팀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사고 팩트에 국한한 보도가 되도록 움직여야 한다. 조업 중단 기간을 최소화시켜야 하고 사고 조사와 사법절차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대재해 보도는 쓰나미 같아서 보도 자체를 막을 수 없고 사고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보도되도록 해야 한다.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회사가 이익에 눈이 멀어 안전 투자를 안 하는 등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기업마다 다르다. 대기업은 안전을 위한 돈은 아끼지 않는다. 중견기업은 돈을 효과적으로 쓰고자 한다. 중소기업은 쓸 돈이 없다고 한다. 각자의 사정이 그렇다. 중대재해로 인한 조업 중단의 피해가 너무 크다. 중소기업은 경영자 처벌이 아니라 조업 중단으로 망할 수 있다. 대기업은 조업 중단 기간에 따라 매출액 손해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이 된다. 안전 투자에 돈을 아낄 이유가 없다.

회사의 항의를 받은 언론사는 ‘바로잡습니다’로 정정보도를 해줬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회사의 항의를 받은 언론사는 ‘바로잡습니다’로 정정보도를 해줬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언론사와 기업의 관계가 반대인 경우도 있다. 홍보 오디세이 4회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기자들은 독특한 DNA가 있다. 한때 최고의 인재들이었다는 엘리트 의식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권력과 금력에 굴하지 않는 기백이 있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이러한 DNA가 있어서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언론사의 수입 중 50%에 달하던 구독료가 거의 없어지면서 기업 광고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일부 기업은 광고비로 언론사를 길들이려 한다. 가장 아픈 곳을 잡아서 생명 같은 자존심을 꺾는 것이다. 갑질보다 더한 게 돈질이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반대의 경우를 호소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20여 년 현장 경험을 돌이켜 보면 기자 다운 기자 덕분에 기업이 많이 좋아졌다. 많이 아팠지만 덕분에 문제를 빨리 개선하고 투명해지도록 했다. 기회비용을 줄여 줬고 기업을 성장하도록 도와줬다. 수업료가 아깝지 않았다. 언론인·언론사와의 갈등 해소에 정답은 없다. 일관된 원칙에 기반한 지속적인 소통이 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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