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지난 1월 20일 소위 개독교의 현황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조용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약 157억원 상당의 손실에 끼친 것과 관련하여 조용기 목사에게 징역 5년, 벌금 72억원 구형이 내려졌다. 더불어 그의 아들 조희준(전 국민일보 회장) 또한 징역 5년이 구형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용기 목사는, 고(故) 최자실 목사와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세운 사람이다(동시에 최자실 목사는 조목사의 장모이기도 하다). 조용기 목사가 받은 판결은 사실 한국 개신교의 현좌표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교회 재정의 사유화(私有化)
 
검찰의 설명에 따르면, 조희준 전 회장이 국민일보 평생 독자기금을 주식투자로 날려버리게 되자 이를 보전하기 위해 회사가 아이서비스 주식을 한 주당 75,000원으로 매수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또한 이에 대한 국민일보 노조의 항의에 따라 경천인터내셔널과 자기가 이사장으로 있던 영산기독문화원을 거쳐 다시 교회 재정으로 고가로 매수하도록 한 뒤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영산기독문화원을 청산하려 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목사는 아들 조희준의 도움을 받았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조용기 목사에게 횡령과 배임 혐의가 걸려있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 측에 따르면, 교회 업무 처리는 총무국장과 실무 장로들이 도맡아서 처리했다. 따라서 조용기 목사에게는 배임(背任)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실제 교회 재산상으로도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의 일부였을 뿐이며, 이쪽 돌을 저쪽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무죄 주장의 변이다. 그러니까 조 목사 자신이 자기를 위해 사익을 취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검찰의 공소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결재서류 한 장에 불과하다고 항변하였다고 한다. 증거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아마 이러한 항변 전체로 보면,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애초에 이쪽 돌을 저쪽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본다. 회사(국민일보)와 교회(여의도순복음교회)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양자가 모두 자신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발언이 가능한 것일 게다. 따라서 교회의 재정으로 회사의 적자를 메우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 측은 한국 개신교,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다시 말해서 실은 이것이 한국의 많은 교회 목회자들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고생하며 세운 교회일 때에 교회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다. 
 
사실 조용기 목사에 대한 논란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2013년 11월 14일에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바로세우기장로기도모임과 더함공동체 이진오 목사에 의한 “조용기 목사 일가 퇴진 촉구 기자회견”에서의 주장에 따르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2004-8년 사이에 매년 120억 원의 특별 선교비를 조 목사에게 지원했으나, 총 600억 원에 달하는 선교비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하상옥 원로장로의 주장에 따르면, 조 목사의 퇴직금 200억 원 지급 건도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에서 결의한 적이 없고, 현재 교회와 <국민일보>, 국민문화재단 등에서 매달 7500만 원가량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 재정 570억 원으로 설립한 ‘사랑과행복나눔재단’을 ‘영산조용기자선재단’으로 탈취하였고, 경기도 파주시에 차명으로 1만 1646평 규모 농지를 불분명한 과정으로 형성하고, 조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순복음선교회가 1634억을 교회로부터 빌렸다가 643억 원만 반환하고 아직 990억 원은 반환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 목사의 아내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의 경우에도 ‘조용기 목사 기념관’ 건립 비용 100억 원을 유용한 혐의와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미국 베데스다대학 지원금으로 지급한 105억 원을 불분명하게 사용한 혐의가 있다. 장남 조희준 씨에 대한 혐의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교계의 자기 인식
 
헌데 변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조용기 목사 측의 자기 인식이다. 변론에 따르면, 조 목사가 싸이와 배용준처럼 한국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기독교 사회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것이 항변의 근거이다. 이미 말했듯이 조용기 목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를 세운, 문자 그대로 세계적인 인물이다. 이걸 하나의 업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조용기 혹은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결코 가볍게 취급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할 수 있는 논거는 될 수 없다. 
 
이것 역시 나름의 진정성이 엿보인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변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그들이 서있는 위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1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지방회 소속 목회자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현 상황에 대해 발표한 입장문을 봐도 나름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의도지방회 후진 목회자들은 세계 기독교와 선교 그리고 사회 구제 사업에 한 평생 이바지해 오신 조용기 원로목사님의 여생을 국가 복지의 혜택이 미치지 않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혜량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물론 우리는 조용기 목사 측이 가톨릭이 주도하는 수직적 질서에 서있는 중세적 세계와 민주적 인식에 기반한 수평적 질서에 서있는 근대 이후 세계를 혼동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사실 보편 인권이 확립된 근대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이러한 발언을 듣게 되면 난감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 진영은 명백하게 세계적인 대형교회의 개척자로서 인식하며, 이를 중시하고 있다. 이것 역시 한국의 목사들, 특히 대형 교회를 일구어낸 목사들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의 가톨릭화
 
이런 면에서 한국의 개신교는 가톨릭과 다를 바가 없다. 가톨릭은 철저하게 위계적인 공동체이다. 가톨릭의 성직자 체계는 교황 아래에 추기경, 주교, 신부 등으로 이어지는 수식적 직제를 기초로 한다. 그리고 성직자들은 신과 일반 신도 사이에 선 제사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의 예배를 미사(mass)라 하는데, 이것은 곧 가톨릭 사제에 의한 희생 제의라는 인식이 저변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매번 미사 때마다 밀전병과 포도주를 나눠주며 예수의 희생을 재현한다. 이러한 중재를 주도하는 사제로서의 성직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연옥에서의 고통을 사해주는 면벌부의 판매로 대표되는 중세 가톨릭의 타락은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원래 개신교(protestant)는 이에 대한 저항(protest)의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다시 가톨릭의 위계를 재현하고 있다. 한국의 목사들, 특히 자기가 교회를 일구어낸 1대 목사들은 그 교회의 주인이나 다름없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이른바 담임 목사들, 즉 개별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은 그 특정 교회의 교황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교회는 목사의 가르침에 대한 신도의 순종과 불순종 여부가 그가 받게 되는 복과 저주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주로 목사에 의해 일어나는 한국의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이러한 맥락에 기인하는 것이다. 
 
앞서 나열한 바와 같이 그의 비리에 대한 의혹이 적잖이 제기되고 있다. 허나 그럼에도 상당수 교회 인사들이 조용기 목사의 주장에 대해 수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용기 목사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 할 뿐 많은 목사들이 그와 동일한 역학 구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는 그들의 성공적인 롤모델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개독교의 현주소이다. 또한 교계 외부의 인식도 그러하다. 한국교회의 불통(不通)은 그들의 자기중심적이고, 수직 위계적인 인식에 기초한다. 모든 신자가 곧 제사장이라는 것이 종교개혁의 입장이지 않는가. 지금의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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