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2월 23일 일요일의 폐막식을 끝으로 2013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의 승자를 누가 뭐래도 러시아일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금메달 개수 총계(13개)로 보나, 전체 메달 개수 총계(33개)로 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하였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의 저력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금메달 3개에다, 전체 메달 합계가 8개인 우리나라 팀의 상황에 견주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빅토르 안의 부활에 대한 지지

러시아 팀의 주인공, 그리고 이에서 나아가 소치 동계올림픽의 가장 주목 받은 주인공은 바로 빅토르 안이다. 가령 미국 방송인 NBC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 열네 명을 선정했는데, 1위가 바로 빅토르 안이었다. 한국명이 안현수인 그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실로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겠다. 부상과 파벌로 인해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내쳐진 존재나 다름없던 그를 좋은 조건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연습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해준 결과가 실로 눈부시다.

빅토르 안은 주종목도 아니라고 하는 남자 1500m에서 동메달을 따고 나서 곧이어 남자 500m와 1000m, 그리고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무려 3관왕에 등극했다(더욱이 5000m 계주의 경우는 누가 봐도 그의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금메달이라는 점이 분명할 것이다). 그가 딴 금메달의 개수는 한국 팀 전체가 딴 금메달 수와 동일하다. 이로써 그는 쇼트 트랙의 전 부문 수상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더욱이 쇼트 트랙은 러시아로서는 거의 불모지에 해당하는 종목이었는데,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단 번에 쇼트 트랙 최대 강국으로 부상했다.

러시아 쇼트 트랙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빅토르 안은 거의 러시아의 국민 영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쪽이다. 현재 그를 매국노로 몰아세우는 한국인은 극히 드물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의 건투를 응원하고, 그의 승전보에 기뻐했다. 외려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빙신연맹이라고 비아냥대며 비판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파벌 싸움만 아니었다면, 그가 받은 세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동메달을 우리 것으로 할 수 있었을 거라면서 말이다. 실제로 그가 러시아로 귀화할 때에 그를 붙잡은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하니 놀랍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아가 많은 이들이 빅토르 안에 대한 푸틴의 응원에 대해 열광했다. 빅토르 안에 대한 지지 이상으로 흥미로운 것은 빅토르 안에 대한 러시아와 푸틴의 응원에 대한 관심이다. 조금은 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인정 욕망의 발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러시아인들의 안현수 메달 수상에 대한 반응을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일본의 2ch(투채널)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들을 모아서 번역 소개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사실상 이전에는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을 이렇게 관심 가진 적이 없었다.

더욱이 이번 동계올림픽에 대한 대중의 반응 자체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전처럼 금메달 숫자에 일희일비하지도 않았고, 전체 등수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대중이 성숙해가고 있는 것이다. 언론도 이런 분위기를 많이 반영하여 이전에 비해 메달 집계를 적게 다룬 듯하다. 나름 우리 사회의 공론장이 정화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그것 자체로는 매우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김연아의 은메달 수상을 둘러싼 반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연아 편파 판정에 대한 공분

이제는 모두가 알듯이 김연아는 2월 21일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결승에서 석연치 않게 낮은 평가 점수를 받고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이로써 소냐 헤니(노르웨이)와 카타리나 비트(동독)에 뒤이은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2연패는 무산되었고, 결국 금메달은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몫으로 돌아갔다. 러시아로서는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분 금메달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받은 가산점이 지나치게 후했다는 지적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명백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기술 점수가 김연아의 경우보다 5.8점이 높다.

미국 USA 투데이는 심판진의 국적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사실 당일 심판진에 러시아 빙상연맹회장 부인인 알라 셰코프체바가 참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뿐더러 심판들 중에는 1998년 동계올림픽 아이스 댄싱 부문에서 승부조작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도 들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비공개를 원칙으로하는 심판의 채점과정은 자연스럽게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모든 판정은 엄격하고 공정했다.”라고 국제빙상연맹(ISU)은 해명하고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따라서 현재 판정 시비에 대한 우리나라 대중의 분노는 엄청난 강도로 표출되고 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재심을 요구하는 인터넷 청원을 했다. 또한 언론도 이러한 분위기에 가담하고 있다. 가령 KBS는 김연아의 메달에 대해 “(실제로는 금메달인) 은”이라는 자막을 내놓았다. 우리만 편파 판정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가령 미국의 CNN은 이번 올림픽에서 잊지 못할 열다섯 사건 중의 여덟 번째로 이 판정 논란을 소개했다.

소트니코바는 이러한 상황에서 받은 금메달의 부적절함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아사다 마오를 추켜세우면서 김연아에 대해서는 깎아내리는 것도 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애초에 이러한 상황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닐 게다. 그러므로 소트니코바에 대한 대중의 현재의 비판은 지나친 면이 있다. 가령 그녀의 페이스북에 비방글을 올리는 행위는 어느 모로 봐도 정상적인 방식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분노의 정념이 우리 자신을 불사르고 있다.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이러한 상황이 무엇을 드러내는 것인 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빅토르 안을 지지하고, 김연아의 편파 판정에 공부하고 있다. 앞의 경우에는 그를 품어준 러시아를 지지하고, 그를 위해 네덜란드의 선수에 대해 항의한 푸틴에 대해 열광하고 있다. 뒤의 경우에는 그녀로부터 메달을 박탈했다고 봐도 무방한 러시아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ISU에 항의하고 있다. 이 양자의 경우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자국에 동일시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 대중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을 통해 우리나라 정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중매체 또한 이런 면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 개봉했던 전도연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한국 외교부가 과연 자국민을 얼마나 지켜주는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는 장미정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또한 최근의 서울시 간첩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 제기는 어떠한가? 이미 중국 정부에서는 서류의 내용과 형식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는데도,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은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

다시 빅토르 안에 대한 지지와 김연아에 대한 동정을 생각해보자. 혹자는 다른 많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이런 것에 분노하느냐고 비판한다. 어쩌면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위에서 지적하듯이 우리나라 대중의 현실에 대한 불안과 정부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 사이에 놓인 불통의 간격이 너무 크다. 이로 인해 국민이 겪는 고통의 무게가 위험한 수위에 다다랐고, 앞서 말했듯이 분노의 정념이 우리를 사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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