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불교를 앞세운 침탈과 대응, 그리고 그 결과
일제의 불교를 앞세운 침탈과 대응, 그리고 그 결과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3.1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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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연구원

지난 3월 1일은 95주년 3.1절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이 있는 대표적인 기념일로는 광복절과 3.1절을 꼽을 수 있다.(지면을 빌어서 우리 선조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아울러 일제강점기를 정당화 하고, 선조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을 폄하하려는 사람과 세력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일제의 우리나라에 대한 침탈은 매우 전방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근대 이전 임진왜란이 무력에 의한 정벌이었다면, 근대 이후의 일제의 침탈은 무력과 함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압박이 더해진 침탈이었다. 즉 임진왜란의 경우 엄청난 수의 왜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와서 북진하는 전면전의 성격이 강했지만, 근대 이후의 일제의 침탈에서 무력의 사용은 운요호 사건, 을미사변, 각종 조약 체결을 위한 궁궐 포위,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무력 진압 등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때는 국권을 지켜냈고, 근대 이후에는 국권을 강탈당했다.(여기에는 이른바 ‘근대화’라는 거대한 물결로 인해 일어났던 당시 우리나라의 혼란도 한 몫을 차지했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아픔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당시 일본이 감행했던 전방위적 침탈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고, 그 가운데에는 종교적 침탈도 존재한다.

역사학자 표창진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계몽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1883년 『지지신보』[時事新報]의 6월 1일자 글에서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조선 침탈 전략의 네 가지 방식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두 번째 방법으로 제안된 것은 종교로서 조선인을 교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개항 초기부터 일본 종교의 조선 침투는 불교계가 중심이 되었고, 일본 정부가 협조하는 방식으로 전개하였다. 표창진은 개항 후 승려의 도성 출입이 허용된 1895년까지 8년간의 시기를 일본 불교가 조선 승려와 조선 백성들이 갖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과 반감을 줄이거나 융화시키면서 어떻게 하면 자국의 불교를 조선에 포교하고, 궁극적으로 불교를 수단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문화적 정신적으로 일본에 예속시킬 수 있는지를 고심하던 ‘문화-침략 탐색기’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연구에 맞는 사례를 살펴보면, 일본불교 각 종파는 개항 초기부터 개항장과 서울에 별원(別院)이나 포교소를 설치하여 우리나라의 언어와 정서를 습득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개화운동과 연결된 조선 승려와 연계하여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결정적인 사건은 일본의 승려가 당시 우리나라 정부에 도성출입 금지 해제를 건의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승려의 도성출입 금지의 해금은 조선 승려와 조선의 불교 신자들이 일본 불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시작한 시발점이자, 조선인의 배일 감정을 희석시킴으로서 궁극적으로 자국의 조선 진출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 개항 초기 일본 불교의 목적이 이뤄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생긴 일본 불교계의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일본 불교에 대한 호의를 바탕으로 일본 불교 종파들은 조선 승려들을 일본에 초청하고, 시찰을 주선하는 등 각종 호의를 베풀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친일 단체와 지속적인 연계를 맺으며 행보를 함께 하였다. 그리고 결국 우리나라의 원종(圓宗)이라는 종파를 일본의 조동종(曹洞宗)과 합치려는 시도를 하였고, 일제강점기 때는 사찰령을 공포해서 우리나라의 불교를 완전히 일본 불교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한용운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승려들의 저항에 부딪히긴 했지만, 큰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우리나라 불교가 조선시대 500여년 동안 소위 ‘숭유억불’이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에서 비롯된 우리나라 불교계와 불교신자들의 불만을 일본 불교가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와 후유증 역시 오래 지속되었다. 우리나라 불교계는 이후 한용운 등 일부 불교계 독립운동가들의 사례를 제외하고, 다른 종교에 비해 일제에게 우호적이거나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해방 직후 불교계는 ‘왜색종교’라는 낙인을 두고 종파간의 대립과 갈등이 일어났고, 국가 권력에 의해 종교 내부 종파가 정리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결국 일제의 문화적 침탈에 대한 냉철함이 없는 호응으로 (본의 아니게) 일제의 우리나라 병탄에 한 몫을 하게 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종교 자체도 피해를 입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종교 외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모든 분야들 역시 이러한 사례를 잘 기억해서 스스로와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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