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인 조광작 목사가 지난 5월 20일 오전 11시 경에 한국기독교연합회관(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내 한기총 회의실에서 진행된 긴급임원회의에서 하신 말씀이다.

더불어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으로 국군 장병들이 숨졌을 때는 온 국민이 경건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애도하면서 지나갔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다.” 졸지에 온 국민을 도축업자로 만들어버렸다.

약자를 멸시하는 목사

조 목사는 문제가 되었던 발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친지가 자동차를 타고 지방으로 여행하다 사고 나면 ‘기차 타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듯, 바다 건너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다 사고가 나니 안타까운 마음에 목회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말”이라며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 아이들”을 운운하던 이가 뒤늦게 하는 변명이다. 여러분에게는 이 변명이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백정’ 발언과 관련해선 “소잡는 백정들이 눈물 흘릴 일이 없듯이, (박 대통령의 눈물을 두고 문제삼는 사람들은) 국가를 소란스럽게 하는 용공분자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뜻에서 했던 말”이라고 말했다. 그냥 죄송하다 말해야 할 대목에서 외려 국민의 화를 돋구고 있다.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된 직후 홍재철 한기총 회장이 그의 사표를 수리한 것도 당연하다.

이제는 목레기다

이에 질세라 강남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인 ‘사랑의 교회’를 이끌고 있는 오정현 목사도 한 말씀을 거들었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 아들이 내뱉은 “국민 미개 발언이 틀린 말이 아니다”고 말해 물의를 빚고 있다. 논문 표절 시비가 따라붙고 예배당 건축을 둘러싼 특혜 논란 시비가 그치지 않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시다(MBC <PD수첩>에서도 다루었다).

오 목사는 지난 달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가주 소재 ‘사랑의 교회’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여러분 아시지만 한국은요. 이번에 정몽준씨 아들이 ‘미개하다’고 했잖아요. 사실 잘못된 말이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굳이 SNS에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국민이 미개하다는 언급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일 게다.

그는 이어서 그가 “아이답지 않은 말을 해가지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총리에게 물을 뿌리고 인정 사정이 없는 거야, 몰아붙이기 시작하는데…”라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비난했다고 한다. “아이답지 않은” 정확한 “말을 해가지고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로 들린다. 여하간 본말의 전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파 기독교의 본질

놀랍게도 혹은 전혀 놀랍지 않게 이 모든 발언이 모두 기독교 목사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도 나름 인지도가 있고 교계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목사들의 발언이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공적인 석상에서 던진 말들이다. 덕분에 이제 기레기(기자+쓰레기)에 이어 목레기라는 단어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종교가 권력에 편향되는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인명과 관련되어 유독 불쾌하게 다가온다. 다른 종교계가 얼마나 이번 세월호 참사에 적절하게 대처했는 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독교권의 일부 인사들의 발언이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의 망언(妄言)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개독교는 본질적으로 우파 기독교이다. 모든 보수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개독교로 호명되는 기독교 세력은 현 시스템의 이면에 자리하는 권력 집단과 이해득실을 함께 하고 있다는 뜻이다. 조광작 목사가 한기총 부회장직에서 사퇴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망언을 했을 리는 없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담긴 대로 쏟아내었을 게다.

큰 목사님들의 동일시 대상

그러므로 이른바 메가처치를 주도하는 큰 목사님들의 망언은 결코 실언(失言)이 아니다. 위에서 지적하듯이 이들의 동일시 대상이 권력 집단이다. 이들이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는 대상은 가령 대기업이다. 그래서 안식일의 계명을 뒤집어 해석하여 주오일제에 반대했다. 혹은 사학재벌이다. 그래서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 삭발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이 큰 목사님들은 세월호에 수장된 학생들의 가족들과 더불어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이들에게 박대 받은 총리를 안타까워하고,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국민을 미개하다고 발언한 정 후보의 막내아들을 가련하게 여길 뿐이다. 박근혜와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서도 정작 세월호 참사로 인해 힘들어하는 국민과 함께 고통을 함께 하지는 않는다.

종교의 본령은 약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은 도저히 종교 지도자가 할 말이 아니다. 가톨릭의 현 교황이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한 이유를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성인이 아니던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비전이 비단 가톨릭 교황만의 것인가? 예수도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장 45절) 조광작 목사와 오정현 목사가 지금 읽어야 할 성경 본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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