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자기 아티스트 이효재

 

- 다양한 모습으로 봐주는 것, 재미있는 과정으로 생각
- 다음 세상의 아이들, 방독마스크 쓰면서 살까 ‘걱정’
- 이번 생에는 TV와 컴퓨터 안 할 것
- 나를 찾는 이들, 짧은 추억여행을 오는 듯
- 내가 판 우물물로 누군가의 목을 적셔주고파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고백하건대 그녀와의 인터뷰는 짧았다. 많은 질문을 준비해갔지만 그녀는 ‘대화’를 원했다. 질문에 갇힌 딱딱한 인터뷰보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움을 원한 것이다. 기자는 예상치 못한 인터뷰 상황에 때론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효재와 함께 였기에 이마저도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밤새 일하느라 눈이 빨갛게 충혈됐음에도 싱그러운 미소로 반겨줬다.

자연주의 살림꾼, 살림의 여왕, 보자기 아티스트, 한복디자이너, 작가…. 하나의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이가 바로 이효재다. 그야말로 많은 수식어가 있는 수식어 부자임에도 ‘손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겸손하게 말하는 그녀. 그녀가 어머니를 이어 한복을 만든 지도 어언 30년이 흘렀다.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집 안과 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는 이효재는 드라마 <왕의 여자>(2004)를 비롯해 <영웅시대>(2005) 등에 나오는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일 개막한 핸드메이드 전문 전시회 핸드메이드코리아페어에서 ‘Real Open Art Fair’라는 주제로 대중에게 손으로 만드는 소품 문화를 소개한 바 있다. 아울러 보자기 아트를 창안한 그녀는 ‘보자기로 세상을 감동시키다’를 주제로 한국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 폭스바겐을 보자기로 싸는 문화 퍼포먼스를 열기도 했다.

<투데이신문>은 소나기가 주륵주륵 내리던 지난 24일, 서울 성북동에 있는 이효재의 집을 찾았다. 아랫층은 한복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소품 등을 파는 가게였고 윗층은 그녀의 보금자리였다.

흩어진 천 조각들을 바늘로 섬세하게 이어가듯 인터뷰 아니, 대화는 그렇게 이어졌다. 그녀에게서 때론 질문과 동떨어진 대답이 나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자유로움이 좋았다.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톡톡 튀는 그녀만의 개성이 엿보였다. 기자는 꾸밈이 없고 순수함이 좋아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질문을 많이 하면 왠지 그녀를 틀 속에 가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날 어떻게 부르든 신경쓰지 않아”

어릴 적부터 운동보다는 집에서 가만히 앉아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이효재. 운동회날, 달리는 게 싫어서 자신의 코를 때려 코피를 흘리게 했다고 그의 에세이 <효재처럼 살아요>에서 고백한 바 있다. 그 아이가 자라 대한민국에서 살림의 여왕으로 대표되는 인물이 됐고 이제는 인형이 아닌 사람의 옷을 만드는 최고의 한복 디자이너가 됐다. 보자기 아티스트, 한복 디자이너, 자연주의 살림꾼….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많은 수식어가 이효재의 명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문득 가장 마음에 드는 수식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 흘러나왔다.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바깥(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붙여주는 것이지요. 다양하게 봐주는 것 자체도 재미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면 배우 김수현이 나와서 마지막에 “후달려?”하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그 영화를 빗대며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모든 사람들을 빵 터지게 만든 즐거운 장면인데요.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하나 하나 신경쓰게 되면 후달려서 못 살아요”

그녀의 에세이 <효재처럼 살아요>를 보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인형에게 옷을 갈아입힌다고 나온다. 아울러 각자 사연이 있는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는 취미도 있다. 그만큼 인형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형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어릴 때 인형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래요. 저는 뭘 하나 좋아하면 바뀌지 않는 성격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변화를 못 쫓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를 보고 향수를 느끼기도 하죠. 근데 한편으로는 나처럼 살라고 하면 불편해서 한나절도 못 살겠대. 모기도 있고, 풀도 뽑아야 하고…. 가장 평화로웠던 과거 한 시대로 잠깐 돌아가듯,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저에게 짧은 추억여행을 오는 것 같아요”

 

“다음 세상의 아이들, 방독마스크 쓰고 살 것 같아”

보자기 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효재. 그녀가 보자기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여러 번 이야기해서 별로 감동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입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걱정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냐고.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녀가 답을 공개한다. “우리가 숙제처럼 죽을 때까지 안고 가는 것. 바로 ‘지구 환경’이에요. 모두가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바쁘게 살지만 누구나 걱정하는 부분이죠. 예를 들어 우리는 컵라면을 일회용 젓가락으로 먹잖아요. 컵라면과 빈대떡을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하는 이유는 멋도 나고 맛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나도 써요. 쇠젓가락을 쓰면 뜨거워서 안 돼요. 어쨌든 나의 바람은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맛있는 컵라면 먹을 때 환경에 대해 한 번 고민하는 것. 그리고 쇼핑백, 포장지를 덜 쓰고 보자기를 싸는 것이지요. 그러면 지구가 좀 더디 망가지지 않을까 싶어요”

보자기 아트와 환경. 그녀의 말을 곱씹어보니 그가 보자기 아트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멋과 아름다움만은 아닌 듯했다. 지구를 생각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자기에 오롯이 담은 것 같았다.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올 때 컵라면 좀 사다줘”라고.

전화를 끊고 이왕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더 깊이 빠져보기로 했다. 그녀는 지구와 아이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다음 세상 어린이들은 방독마스크 쓰고 세상을 살아갈 것 같아요. 방독마스크랑 운동화를 깔맞춤(색깔을 맞춰)해서 신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마치 영화에서 환경 재앙으로 인해 백신을 구하러 떠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푸른 지구지만 앞으로가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자신이 보자기로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는지 이야기했다. “저는 보자기 한 장을 갖고 아이들과 대화해요. 보자기를 아이의 목에 묶어주면서 ‘배트맨이 뭘 입고 있지?’하면 아이들은 ‘망토요!’라고 외치죠. 그럼 제가 ‘망토가 우리말로 뭐야?’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가만히 있어요. (웃음) 그러면 제가 ‘망토는 우리말로 보자기야’라고 말해줘요. 어떤 아이들은 신나서 보자기를 입은 채로 학교에 가기도 해요”

 

안면인식 장애 있어… 혹여 상대에게 상처될까 우려

항상 해맑은 미소와 당당함으로 무장돼 있는 그녀. 하지만 낯가림이 심하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고백한다. 안면인식 장애가 있어 인연을 맺었던 사람의 얼굴을 본의 아니게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안면인식 장애를 고쳐보고자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단다. “안면인식 장애가 있어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저는 원래 오타쿠처럼 집 밖에 나오지 않고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상대를 못 알아볼 때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 못 알아보는데 쳐다보고 웃어야 하는 고통도 있었고요”

반면, 자신은 특이한 사람은 잘 기억하고 영상을 통해 기억하는 것에는 천재라고 했다. 그래서 별명이 ‘무엇이든 기억하는 여자’라며 방긋 웃었다.

그럼 반대로 사람들로 인해 본인이 상처받을 때는 없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나는 상처를 잘 안 받아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으니 “나이를 먹으면 돼요. 상대를 이해하면 상처를 안 받게 되지요. 예를 들면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상처를 잘 안 받잖아요. 아이를 이해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아이가 짜증을 내면서 집에 들어와요. 그럼 엄마들은 ‘너, 배고프구나’, ‘여자친구한테 차였구나’하고 생각하며 이해하죠”

 

이어서 보따리 풀 듯 또 하나의 고백을 풀어놓았다. 평생 손으로 일을 해 가끔 왼손에 통증이 있고 때때로 작은 마비가 오기도 한단다. 밤새 일하느라 붉어진 눈과 불편한 손을 보니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바쁜 일상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됐다.

“일을 많이 해 손이 아파 오면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내 손을 관찰해요. 사람마다 치명적인 약점 하나씩은 갖고 있잖아요. 저는 유전적으로 좋은 피가 아니에요. 어쨌든 손이 아프면 ‘(손을) 57년이나 썼는데 고장도 날만 하지’하며 넘겨버려요. 손을 덜 쓰고 힘을 안 주면 회복이 되다가도 급할 때 힘을 쓰면 도로 아파요. 그런 것이 반복되지만 재미있게 즐기며 살고 있어요”

오히려 손가락이 5개가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자신의 손을 살펴본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은 인간의 권리예요. 이 순간에도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밤을 새워서 피곤하다’, ‘사진기자가 안 오고 취재기자가 사진을 찍어?’…. 참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긍정으로 바꾸면 ‘어머 똘망똘망한 기자가 혼자 다 하네! 나중에 CNN기자처럼 특종을 하겠구나, 베테랑이 되겠구나’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나는 60세가 기다려진다”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라는 그녀의 말에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니 감상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이효재의 집은 포근한 휴식처 그리고 소박한 박물관 같았다. 마치 원시림에 온 듯한 초록으로 우거진 정원을 비롯해 형형색색 보자기 작품, 여자라면 한번쯤 입고 싶은 고운 한복, 아주 작게 만든 깜찍한 인형 옷, 정성스럽게 자수를 뜬 행주까지…. 잠시 황홀한 감상에 취해봤다.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집안 어디에도 TV가 없는 것이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저는 기계를 싫어해요. TV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TV에 꽂히는 시간이 아까운 것이죠. 또 컴퓨터도 안 해요. 물론 손으로 일하는 사람이라 컴퓨터를 마음먹고 배우면 하기야 하겠지만 이번 생에서는 컴퓨터와 TV를 안 하기로 했어요”

그럼 책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원래 좋아했는데 요즘은 난시 때문에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책도 못 읽는다고 그녀는 말했다. 해서,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저는 시집을 늘 갖고 다녀요. 그리고 모임에서 꼭 중간이나 끝날 무렵에 시를 한 수 읽죠”

끝으로 어떤 삶을 꿈꾸는지 물었다. “지금 동화책 작업을 계속 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런 일을 할 거예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꾸준히 우물을 파고 그 우물물로 누군가의 목을 적셔주고 싶어요. 이제 그럴 나이가 됐잖아요. 오랜 경험과 느긋함은 나이듦에서 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60세가 기다려지고 지나온 세월이 그림자 같고 좋아요”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개혁가 웬델 필립스는 나이듦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세월을 향해 느긋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이효재를 보며 새삼 이 명언이 떠올랐다. 세월은 헤치고 빗겨나가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우리도 그렇게 세월을 반갑게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 늘 소녀 같은 효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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