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가족의 왈츠> 김민정 작가, 박경찬 연출가

   
 ▲<가족의 왈츠> 김민정 작가, 박경찬 연출가

<가족의 왈츠>, 가족 간 사소한 오해가 부르는 비극을 그린 작품
박경찬 “꾸밈없이 보여지는 모습에 관객들 감동받아”
김민정 “연극을 통해 가족의 저녁 식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를”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라는 말처럼 연극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빛과 같은 존재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 육체의 배는 부르지만 마음이 허기진 사람을 위한 연극이 있다. 바로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한 <가족의 왈츠>다.

현재 대학로 ‘극장동국’에서 상영되고 있는 <가족의 왈츠>는 본래 <가족왈츠>라는 제목으로 2004년 국립극장 신작 희곡페스티벌 당선돼 같은 해 6월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다. 독특한 구성과 묵직한 주제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딱 10년 뒤인 2014년, <가족의 왈츠>가 다시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도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해무>의 원작 시나리오를 쓴 김민정 작가(40)와 연극계의 신성 박경찬(35) 연출가의 만남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김민정 작가는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진 <해무>를 비롯해 <십년 후>, <나, 여기 있어>, <만파식적 도난사건의 비밀> 등의 작품으로 연극계에서 많은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박경찬 연출가는 수많은 뮤지컬과 연극 작품의 조연출로 활동했으며 2013년, 뮤지컬 <미드나잇 블루>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최근에는 연극 <유도소년>의 작가로 참여해 작가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가족의 왈츠>는 사소한 오해로 인해 한 가정이 해체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가족 간 작은 오해로 인해 대화 단절, 소통 부재를 경험하게 되고 결국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더불어 기억의 왜곡과 가족 간의 오해와 상처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극중 인수네 가족을 통해 현대사회에 놓인 가족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물음표를 던지고 연극이 끝난 후 느낌표를 선물한다. 특히 주인공 인수의 파편화된 기억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이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주기도 한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일, 대학로 근처에서 <가족의 왈츠>의 아버지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김민정 작가(이하 김), 박경찬 연출가(이하 박)을 만나 작품 속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가족의 의미와 작품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족의 왈츠> 김민정 작가

Q. <가족의 왈츠>가 10년 만에 다시 무대 위로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김) 손진환 배우님과 극장동국 대표님이 <가족의 왈츠>를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연락을 하셨다. 훌륭한 배우와 열정이 넘치시는 극장동국 대표님께 대본을 보내드렸고 그렇게 다시 공연을 하게 됐다.

박) 극장동국 대표님을 통해 연출 제의를 받고 <가족의 왈츠>를 읽었는데 딱 한마디로 하자면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좋은 텍스트를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가족의 왈츠> 연출을 맡는다면 큰 영광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없이 작품을 맡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Q. 그럼 작가와 연출가로서의 두 분의 호흡은 잘 맞았나. 솔직한 답변 부탁드린다 (웃음)
박) 호흡은 김 작가님이 잘 맞춰주셨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떤 의도로 썼는지 등을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물어볼 때마다 항상 지혜롭게 대답해주셨다. 워낙 인품도 훌륭한 분이라….

김) 에이, 과찬의 말씀이다. 박 연출이 작품에 대해 워낙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줘서 참 고마웠다.

Q.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가족의 왈츠>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하다
박) 연극을 재밌게 봤다고 하는 분들은 보통 자기 내면과 연극을 투영해서 보기 때문에 그리 느끼시는 게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가족과 힘들었던 경험이 있거나 하는 등…. 사실 <가족의 왈츠>도 사소한 오해가 갈등의 요소가 되지 않나. 또 오프닝에서 아버지가 청소기를 밀면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면 티셔츠에 파자마 차림으로 나오는 일상적인 아버지. 그 모습을 보면서 우는 관객도 본 적이 있다. 일상 속 아버지의 모습이 꾸밈없이 보여지는 것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공감을 느낀 분들도 있더라.

Q. 연극이 인수의 기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듯하다
김) 우리는 어떤 것들을 순서대로 기억하지 않고 이것저것 꺼내본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서 보면 이 연극이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느껴질 것이다.

Q. <가족의 왈츠>를 감상하면서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박) 조명을 사용할 때 색감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다. 색감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인물의 감성이 오히려 색깔로 덮여 지나치게 특별해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영화스럽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가족의 왈츠>를 본 관객들로부터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Q. <가족의 왈츠>는 사소한 오해가 커져 끝내 비극으로 이어진다. 혹시 오해로 인해 아픔을 겪은 적이 있나
김) 어린 시절, 옆집에서 부부싸움으로 인해 한 가정이 완전히 와해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부부 사이의 불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끝내 아주머니가 자살했다. 아주머니가 도넛을 만들어주셔서 먹기도 하고 내 머리를 잘라주시기도 했는데 믿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어릴 때 같이 자라던 그 집 막내 아이가 <가족의 왈츠>에 나오는 극중 인수처럼 도와달라고 울면서 배추밭을 뛰어가는 것도 봤었다. 아주머니의 성격이 활발하셔서 가정불화를 상상할 수 없었는데 단 6개월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사건을 목격하면서 작은 오해와 균열로 인해 가족이 와해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박) 사실 오해는 매일 생긴다. 무엇보다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들이 중요한 것 같다.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오해가 잘 생기지 않는데 가까우면 의도치 않게 서운함도 느끼고 오해도 발생하게 되는 듯하다.

   
▲ <가족의 왈츠> 공연 장면 (사진제공= 한강아트컴퍼니)

Q. <가족의 왈츠>는 8월과 9월팀으로 나눠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가 

박) 8월에는 가족팀, 9월에는 왈츠팀으로 나뉘어져 있다. 8월팀이 무거운 느낌이라면 9월팀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배경 음악도 모두 바꿨고 배우들의 연기적인 부분도 변화를 줬다. 9월 공연을 보면 ‘이 부분은 8월 공연과 달리 이렇게 표현했네’하면서 장단점을 찾을 수 있으시리라. 

Q. 최근 개봉한 <해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해무>가 영화화되는 것에 대해 망설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김) 그런 건 없었다. 애초부터 이 작품이 연극으로 올려질 때 당시 대표님이 영화까지 생각하셨다고 하더라. 초연하고 난 후 마치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다며 영화 제의를 하는 분도 있었다.

Q. 영화를 보고 난 후 기분이 어땠나.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김) 처음 <해무>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썼을 때가 생각났다. 옥탑방에서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며 희곡을 써야겠다고 구상하던 때부터 여수 쪽으로 취재도 가고 조선족 분들 인터뷰하던 시간까지…. 그런 시간들을 떠올리니 영화가 되는 것에 대해 감격스러움을 느꼈다.

Q. <가족의 왈츠>는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소극장, 어떤 매력이 있나
김) 소극장에서 관객분들이 보시는 게 조금은 불편하지만 배우든 연출이든 현실적인 어려움을 창작의 열정으로 극복하고 있다. 진흙 속에 진주를 캐는 심정으로 소극장을 찾는다면 잊지 못할 명작을 만나게 될 거라고 본다. 소극장의 불편함 자체가 특별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박) 소극장의 매력은 현장성이다. 아무래도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Q. 김민정 작가를 두고 ‘내면의 갈등을 잘 표현하는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이 ‘갈등’을 빼놓고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내 삶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굉장히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이고 싸우는 걸 못한다. (웃음) 그래서 그럴까. 작품 안에서는 주인공을 통해 갈등을 터트려본다.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기 보다는 재밌다.

Q. 글의 소재는 보통 어디에서 찾는지
김) 글의 소재는 일상을 통해 많이 얻는다. 책을 읽던 중 한 두 줄의 글을 보고 영감을 얻을 때도 있고 다큐멘터리, 기사 등을 통해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 예전에 쓴 <십년 후>라는 작품의 경우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 그 사람들과 한 방향을 보며 살았는데 어떤 시점이 지나고 나니 각자의 삶이 다르게 변해있는 게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모임 중 그런 생각을 하다가 화장실을 가게 됐는데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현재일 뿐이다’라고. 그때는 현재만이 중요하다는 말이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그 느낌을 지닌 채 노트에 메모를 하게 됐고 <십년 후> 작품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가족의 왈츠> 박경찬 연출가

Q. 박 연출 역시 연극 <유도소년>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이지 않나. 작가로서 글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궁금하다
박) 나는 관찰을 하면서 소재를 얻는 편이다. 경험을 통해 얻기도 하고. 주로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어떤 그림이나 이미지가 주는 환상을 보면서 상상한다. 또 선배들한테도 많이 여쭙는다. 그 중에서도 조언을 많이 해주는 선배가 김민정 작가님이다. <유도소년>을 쓰긴 했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앞으로 배워야할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말하고픈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정으로 조금씩 끄적이고 풀어나가고 있다.

Q. 박 연출가는 <가족의 왈츠> 연출을 맡으면서 혹은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고충이 있다면
박) 일단 개인적으로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다. 왜냐하면 연출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나기보다 뭔가를 항상 제시하고 이야기하는 자리이지 않나. 연출은 배우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배우는 연출의 신념을 따라오기 때문이다. 열심히 만든 작품이 관객들에게 외면을 당하진 않을까 고민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래서 관객들을 찾아가는 일이 설레지만 때론 두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Q. 그렇다면 김 작가도 자신의 글이 관객들에게 외면 당할까봐 두려울 때가 있는지 궁금하다
김) 두려움은 항상 가슴 한 켠에 갖고 가는 감정인 듯하다. 그렇지만 관객과의 만남이 기다려질 때가 많다. 일단 배우나 연출이 내 시나리오를 본 뒤 하고 싶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주는 것 자체가 기쁘다. 그들이 먼저 유혹해야 비로소 작품이 올라갈 수 있는 거니까.

Q. 김 작가님은 작가이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김) 새로운 작품은 막막함에서 시작된다. 직면의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안 쓰면 안 되는 시간까지 괜히 버텨보거나 하는 게 있다. (웃음) 머릿속으로 작품 하나 뚝딱 쓰는 건 하루 저녁에도 되지만 막상 펜을 잡고 쓰려고 하면 고통스러움이 따른다. ‘왜 이렇게 글을 못 쓸까’, ‘왜 이력이 안 생기지?’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라도 초고는 엉망이고 창피한 것처럼 누구나 그런 과정이 있는 것 같다.

Q. 관객들이 <가족의 왈츠>를 통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김) 극중에서 아버지가 “내가 정말 바란 것은 우리 가족의 저녁 식탁이다”라고 한다. 가족의 저녁 식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술자리에서 우리 아버지께서 본인의 애창곡이라며 <칠갑산>을 부르시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걸 보면서 ‘우리 아버지의 애창곡이 이거 였구나’하고 알게 됐다. 관객들도 이 연극을 보면서 가족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고 소박함과 따스함을 느꼈으면 한다.

박) 가족의 갈등은 소통의 부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족끼리 사소한 것 다 이야기해야 돼?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보면, 서울시 교육감 후보였던 고승덕 전 의원이 딸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미안하다”라고 소리치며 사과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딸이 갖고 놀던 장난감을 버리지 않고 간직했다며 자녀를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딸은 그것을 모른다. 머릿속에서 생각만 했을 뿐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편한 집은 별로 없을 듯하다. 거실에 부자가 앉아 있으면 엄마가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고 둘만의 자리를 불편해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 요즘 잘 사냐?”라고 말을 걸면 아들은 “네”라고 말할 뿐이다. 얘기가 더 진전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족 간 소통 훈련이 잘 돼 있지 않다. <가족의 왈츠>에서도 아버지가 다정다감하고 부부가 소통이 잘 됐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가족과의 대화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실천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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