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영화 <나의 독재자> 배우 설경구

   
▲ ⓒ 투데이신문

김일성 대역에 집착하는 인물… 실감나게 연기
김일성 대역 소화하고자 특수분장 5시간… “라텍스 찢어지더라도 연기에 몰입”
“배우 박해일, 늘 이해해줘서 고마웠다”
“김일성이 아닌 평범하면서 무능한 무명배우 역할이라 출연 결심”
영화 <박화사탕>, 한때 짐으로 생각된 적도 있어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내래 김일성이야~”

얼핏 보면 ‘김일성’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김일성 대역에 충실한 이가 있다. 바로 배우 설경구다.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설경구는 남북정상회담 김일성 대역 배우로 뽑혔다가 20년이 지난 후에도 스스로를 김일성이라 믿는 아버지 성근 역을, 박해일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 태식 역을 맡았다. 연기의 신(神)이라 불리는 설경구와 박해일의 첫 연기 호흡은 영화 개봉 전부터 주목을 끌고 있다.

<나의 독재자>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굳게 믿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꼬인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첫 남북정상회담의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 대역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적 허구와 상상력을 더했다. 이달 30일에 개봉 예정인 영화 <나의 독재자>는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한 소재로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 22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나의 독재자> 주연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극중에서 김일성 대역에 집착하는 인물을 실감나게 연기한 설경구. 그는 인터뷰를 통해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뒤에 담긴 따뜻함.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풍기는 배우 설경구와의 인터뷰, 지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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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해준 감독에게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 <나의 독재자>에 출연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굉장히 무겁게 읽었다. 막말을 하는 등 센 대사도 있었고…. 이해준 감독을 만난 뒤에 또 한번 읽었는데 그 때는 가볍게 읽혔다. 시나리오를 보니 문득 ‘인생이 코미디인 것 같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심도 있게 찍어야 한다고 했다면 힘들었을 테지만 감독 역시 내 생각과 비슷해서 출연하게 됐다. 물론 진을 빼면서 찍기는 했지만. (웃음)

Q. 언론시사회 때 긴장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사실 우리 영화의 개봉 날짜가 갑자기 잡혔다. 그래서 후반 작업을 여유롭게 하지 못한 채로 언론 시사회를 했다. 앞으로 개봉하기 전까지 후반작업이 조금 더 들어갈 것이다. 어쨌든 기술시사회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 역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긴장되고 답답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주변 평이 괜찮아서 좋았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Q. 김일성 대역을 소화하기 위해 특수분장을 5시간 정도 했다고 들었다. 특수분장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 영화 <은교>에 출연했던 박해일은 분장을 10시간 했다던데….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웃음) 당시 <은교>를 찍을 때 해일이는 꼴딱 밤을 새고 촬영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당시 해일이의 노인 분장을 담당했던 친구들이 이번 영화에서는 내 분장에 도움을 줬다. <은교> 촬영 때는 분장사 한 명이 진행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이번 촬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시간이 거의 반으로 줄었다. 초반에는 분장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익숙해지니까 좀 나아지더라. 내가 분장하고 있으면 해일이가 씩 웃고 지나가곤 했다. 

분장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특수분장 재질이 라텍스라 잘 찢어진다는 것이었다. 분장사들이 늘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조심하면서 왜 연기를 해?’하면서 얼굴을 마구 구겼다. (웃음) 일부러 더 과장되게 표현해야 표정이 더 잘 살아나기 때문이다. 라텍스가 찢어지더라도 연기에 몰입했다. 물론 분장 담당자들이 고생하면서 잠 못자고 붙여놨는데 표정을 일그리면서 연기하는 게 미안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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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수분장 때문에 피부도 많이 상했을 것 같은데 괜찮은가

: 라텍스가 찢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분장사들은 늘 내 얼굴을 예의주시했다. 심지어 내가 하품하면 입을 닫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웃음) 예를 들어 새벽 한 시부터 오후 5시까지 촬영한다고 하면 피부에 본드를 5번 정도 칠한다. 물론 인체에 무해한 본드이긴 한데 촬영하면서 본드를 계속 덧붙이면서 땀구멍을 다 막아버리니까 피부가 굉장히 답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됐고 어느 순간에는 내 것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기도 했다. 더워서 땀이 날 때면 특수분장된 라텍스 안에 땀이 차서 혹 난 것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있어서 그런지) 시사회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분장에 눈이 가더라. (웃음) 

Q. 영화에서 아들로 나오는 배우 박해일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내가 특수분장을 하기 때문에 촬영이 내 위주로 진행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해일이가 이해해줘서 고마웠다. 또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해일이가 받아주고 이해해줘서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박해일이 아니었으면 영화를 못했을 것 같다. 해일이는 아이같고 순수한 모습이 있다. 얼굴을 보면 되게 바른 사람이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게 있다.

Q. 북한의 통치자였던 김일성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 김일성 대역이 아니라 김일성 역할로 출연제의가 들어왔으면 아마 안 했을 것 같다. 김일성이 아닌 평범하면서도 무능한 무명배우 역이라서 하게 됐다. 그게 더 매력있지 않나.

Q. 극중 무명배우 역을 하면서 자신의 무명시절 때 생각도 많이 났을 것 같다. 설경구 씨의 무명시절은 어땠나

: 무명배우 때는 엄청 긴장을 많이 하고 떨었던 것 같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고 때론 술 한 병을 먹고 무대에 오를 때도 있었다. (웃음) 그런데도 긴장이 돼서 그런지 안 취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찔하기도 한데 무대에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트루웨이스트>라는 연극을 했는데 함께 더블캐스팅된 한 선배가 자신의 공연날짜가 아닌 줄 알고 오지 않아 내가 대신 무대에 서게 됐다. 극중에서 전화기로 상대 목을 조르는 장면이었는데 문제는 나와 상대 배우가 호흡을 한 번도 안 맞춰봤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상대 역은 배우 권해효 씨였다. (웃음) 호흡을 맞춰보지 못한 채로 무대에 올랐는데 목을 조르는 지점과 내가 막아야 하는 지점이 달라 목이 제대로 졸려졌다. 그러다가 순간 푹 쓰러졌고 쓰러진 이후 아무 기억이 없다. 연기를 하다가 해효 형이 이상하게 생각해 나를 막 깨웠다고 한다. 그리고 2분 뒤에 정신이 들었는데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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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중 성근은 배역에게 자신의 모습을 잡아먹힌 인물로 나온다. 혹시 설경구 씨도 연기를 하면서 배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헤어나올 수 없거나 후유증을 겪은 적이 있는지

: 자신의 역에서 못 헤어나오는 배우들도 일부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악역을 맡았던 배우 히스 레저가 자살하기도 하지 않았나. 나는 그런 게 참 무섭다. 물론 배우가 그 배역에 몰입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여전히 무섭다. 배우가 그 역에 너무 빠져버리면 주변 사람의 인생까지도 다 바뀌어버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심하게 빠진 적은 없었지만 배역에 젖어서 살았던 것 같다. 특히 영화 <박하사탕>이 끝나고 나서 그랬는데 그 후유증이 몇 년은 가더라.

Q. 영화 <박하사탕>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 그래도 영화 <오아시스>를 하면서 나아졌다. 그 이후에 별로 비교를 안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나를 보고 ‘박하사탕’이라고 부르더라. <박하사탕>이 영화배우로서 자리잡게 해준 계기가 된 작품이긴 했지만 한때는 짐으로 생각된 적도 있었다.

Q. 설경구 씨를 두고 ‘믿고 보는 배우’라는 평가와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쑥스러워하며)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웃음)

Q. 이번 연기를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 늘 마지막 장면을 향해 간다고 생각했다. 무엇에 대해 중점을 뒀다기 보다는 촬영 내내 우리 아버지 세대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봤다. 항상 쪼들리고 주어진 짐은 많고…. 무능해도 아버지로서 권위는 지켜야 하는 것, 아버지는 자기가 없는 삶을 산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자식들이 봤을 때는 무뚝뚝하고 권위있는 사람이지만 자식들에게 먹혀사는 게 아버지 같더라. 그리고 보통 엄마를 원망하기 보다 아버지를 더 원망하지 않나. 대학까지 보내주고 용돈도 주는데 ‘해준 게 뭐 있냐’라고 하는 자식들이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Q. 설경구 씨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가 내게 빵 하나를 사주고 싶어서 몰래 왔었다는 소리를 나중에 제대할 때 듣게 됐다. 멀리서 왔으니까 인간적인 정에 매달리면 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애정이야 있었겠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아버지처럼 우리 때 아버지들은 자식의 눈을 보고 잘 얘기하지 않았다. 어머니와는 자주 얘기를 하지만 말이다. 또 우리 때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에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 아버지인데…. 옛날 아버지들은 참 외로웠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죄송한데 나 역시 학교에 갔다 와서 집에 들어오면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곤 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고 아버지 세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Q. 끝으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 많은 분들이 영화를 통해 재미를 느끼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나의 독재자>를 보시는 관객들은 (다른 영화와 다른) 특별함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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