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15일 <세월호, 연장전(延長戰) 그 두 번째 이야기>열려

   
▲ ⓒ 투데이신문

문화예술인들, 추모 문화예술제를 통해 세월호 아픔 나눠
광화문 광장에 빈 책걸상 304개 놓여… “희생자 304명 기억해주세요”
추운 날이었음에도 많은 시민 몰려… 광화문 일대 ‘북새통’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습니다”… 시민들 한 목소리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꿈만 같았던, 아니 꿈이길 바랐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어느덧 200일이 지났다. 세월호특별법이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지만 진상규명과 재발방지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의 관심은 계속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우리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지난 15일, 전국문화예술인행동을 중심으로 <세월호, 연장전(延長戰)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오후 2시부터 7시 30분까지 열렸다.

왜 이름이 ‘연장전’일까. 이는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연장을 들고 나서겠다는 의미다. 더불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문화예술인들은 ‘연장전(延長戰)’에 돌입하겠다는 포부도 담겨 있다. 이날 문화예술인들은 만화전, 음악회, 미술전, 낭독회 등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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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좋다~”

오후 2시가 되자 광화문 광장에서는 개막 풍물굿이 시작됐다. 풍물패 진행자는 “세월호 참사는 공동체의 의지를 모아 극복해야 할 문제”라며 “우리 풍물꾼들은 힘이 닿는 데까지 신을 내서 풍물을 치겠다”고 말했다.

이어 꽹과리 소리가 울려퍼지고 본격적인 풍물굿이 시작됐다. 많은 이들이 몰려 환호성을 질렀고 어떤 이는 춤을 추며 쓰라린 아픔의 상처를 신명나는 풍물로 흘려보냈다.

이번 추모 문화예술제를 기획한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이원재 소장은 “(이번 세월호 참사는) 구조적인 문화, 정치에서 모순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예술가들이 모른 체 할 수 없어 우리가 쓰는 예술도구를 모아놓고 ‘연장전’이라는 추모 문화예술제를 실시하게 됐다”며 “책임자 처벌의 문제를 넘어서 예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남은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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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굿이 펼쳐지는 광화문 광장 가운데에는 빈 책상과 의자 304개가 놓여져있었다. 304개인 이유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처음에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책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우중‧고등학교에서 옮겨온 빈 책상과 의자를 예술가들이 옮겨놓은 것이란다. 잠시 후 책상 위에 투명색 비닐이 덮혀졌고 그 안으로 예술가들이 몸을 넣었다. 마치 차디찬 바다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퍼포먼스가 이어졌고 이를 보며 훌쩍이는 시민도 보였다. 책상 위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세월호에서 사그라져간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놓인 책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있었다. 시민 황소정(41)씨는 “정부가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강하게 가졌으면 한다. 진실이 밝혀지도록 적극적인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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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한 쪽에는 온통 노란빛으로 가득했다. 예술가와 시민, 학생 등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품이 수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양말, 테니스, 잡지, 이불, 옷, 모자, 조각품 등이 있었는데 마치 작은 길거리 박물관을 연상케했다. 시민들은 슬픈 눈으로 펼쳐진 추모 예술작품들을 찬찬히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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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에서는 <낭독·음악회 기억하라, 기록하라>가 4시간 16분 동안 이어졌다. 4시간 16분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권현형, 김은경, 송경동, 양은숙, 백기완 등 많은 시인이 자리했다. 사회자 김근 시인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참혹한 진실의 맨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이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많은 이들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자리를 지켰다.

   
▲ 시를 낭송하고 있는 백기완 시인 ⓒ 투데이신문

백기완 시인은 ‘왔구나 때가 왔다니까’라는 시로 낭독회의 첫 포문을 열었다.

“아, 통한의 어린 넋이여. 아, 통한의 어린 넋이여. 얼마나 차가우냐 하지만 그 잠 못 드는 눈빛으로 어영차 돌아와 저 거짓의 불야성을 와장창 질러버릴 때가 왔구나. 요만큼도 참아선 안 되는 때, 그때가 왔다니까”

이어 송경동 시인의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라는 시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그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들어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주입했다. (중략) ‘안전’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어야 할 곳들을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 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 넣었다”

‘세월호 기억의 벽’을 제작하기 위해 타일 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자리도 마련됐다. 세월호 참사 추모를 위한 노란리본을 만들고 있던 시민 이승준(20)씨는 “이렇게 많은 예술문화단체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이런 공연을 기획해주시니 기분이 좋다”며 “세월호 참사는 정치색을 떠나 이번 참사는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모두가 이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한 쪽에서는 천 만명 서명을 목표로 하는 서명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많은 이들이 펜을 잡고 서명을 이어갔다. 서명봉사에 나선 시민 김수창(42)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천만 명을 목표로 서명받고 있다”며 “우리 사회 부패가 반복되는 한 이런 참사는 또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아이들의 죽음을 기억해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민은 ‘세월호’ 선박 규정을 바꿨던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기도 했다. 1인 피켓시위를 한 이제르마나(83)씨는 “세월호는 이명박 대통령 때 선박 규정을 바꿔 일본에서 버린 배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며 “당시 규정을 바꾼 사람도 처벌을 받고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서 우리나라가 정의사회, 공정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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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근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자식잃은 부모는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시민도 있었다.

광화문 광장을 찾은 이유를 묻자 대학생 장민규(전남대학교 임산공학과‧4)씨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끝까지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하며 대학생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바람도 전했다.

대안학교 학생모임인 산청·금산·제천 간디학교, 간디 마을학교, 성미산학교 학생들의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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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른 산청 간디학교 변건희(17)학생은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등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이 없어서 화가났다. 그래서 친구들을 모아 이런 공연을 기획한 것”이라며 “‘또 세월호냐?’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모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함께하는 책읽기 ▲노란배접기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만화인 동행전 ‘일어나라! 0416’ ▲추모사진 슬라이드전 등 각계각층 예술인들의 추모문화 난장이 펼쳐졌다.

추모예술제는 책상 탑을 쌓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저녁 7시가 되자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책상 304개를 하나씩 쌓았다. 탑 꼭대기에는 깃발이 꽂혔고 유가족들이 국화꽃을 올려놓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칼과 총같은 ‘연장’이 아니다.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목소리가 곧 세상을 바꾸는 ‘연장’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재발방지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이들의 연장전은 계속될 테다. 또한 이것이 4월 16일, 그날의 비극을 잊지 말아야 명분이기도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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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이여, 심장이 아픈 자여, 나라가 거둔 적 없는 백성들이여
자식 잃은 통곡과 부모 잃은 절규를, 눈 뜰 수도 감을 수도 없는 육지의 아우슈비츠를 보아주세요.
죽음이 쏟아져 들어오는 해저에서 칼을 숨 쉬던 동족의 얼굴을 기억해주세요.
책임지는 나라를.
생각하는 나라를.
사라지지 않는 나라를.
슬픔을 슬퍼하는 나라를, 기억해주세요”

- 이영광 시인 <심장이 아픈 자여, 기억해주세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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