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처음에 가로수길은 신사동의 비원이자 쉼표였다. 거리는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2004년 여름까지 커피숍은 단 하나 뿐, 열 지어 서 있는 은행나무의 소실점 심도만큼 여유로운 공기가 흘렀다. 그러던 곳이 주말 상습정체 구간이 되는 데에 채 2년이 안 걸렸다.

먼저 입소문의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뒤이어 매력적인 상점들이 화수분처럼 피어나면서 공간의 가치가 최대한 발휘된다. 하지만 상업화 된 거리의 열기는 부동산 과열로 번지기 마련. 쫓겨나는 상점들과 새로운 후발주자들은 다시금 한남동, 경리단길, 서촌, 상수동, 연남동으로 서로를 밀어내고 그만큼 밀려갔다. 사람들은 이제 다음에 뜨는 거리가 어디일지 기대한다.

물론 예측을 위해 공통점을 찾는 것은 가능하다. 첫째, 길이 700m 내외 왕복 3차선 정도의 도로와 500m²정도의 평지가 필요하다. 둘째, 도보로 10분 안팎의 위치에 대형상권과 유동인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임대시세가 세번째다. 그러나 서울에 이런 곳이 어디 한 두 군데일까. 중요한 것은 거리가 지닌 고유의 미감을 포착하고 이끌어내는 시각이다. 그래서 가장 근본적인 요인 한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그 거리를 조성하는 사람들이다.

2003년에 출범한 참여정부는 처음부터 종합부동산세, 분양권 전매금지, LTV/DTI 규제 등 여러 대책을 쏟아내며 투기세력과 전쟁을 벌였다. 투기바람은 억제했지만 미시의 세계에선 명암이 엇갈렸다. 대출금의 길로틴 위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은 현금이 필요해졌고, 손해는 도미노 파형을 그리며 임차인들에게 차례차례 전가됐다. 당시 부동산 대책의 칼날은 근본적으로 강남3구를 겨눌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일대 취약한 청년층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풍선효과의 직격탄을 맞았다. 1인가구와 자영업자들은 좀 더 싼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헤쳐모여 변화시킨 곳이 바로 가로수 길이다.

길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는 그보다 몇 년 앞선 2000년대 초반 삼청동 골목에서 일어났다. 그때 획득한 유전자는 제2, 제3의 삼청동이 되고픈 거리마다 이식됐다. 숙주는 대체로 타고난 미적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거나 전공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미술, 패션, 음악, 영상, 요리 등 다양한 감성분야에 종사했다. 즉 예술과 상업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 그리고 90년대의 유학세대와 2000년대의 인터넷 세대가 만들어낸 기민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각박한 시대의 화두였던 쉼과 느림에 대해 본능적인 이해가 있었다.

전형적인 예술가들이 그렇듯, 그들도 세상의 단단한 경계면에 균열을 내며 소비자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동시에 사회의 소비담론 테두리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생산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테두리 생산자’라 부르고 싶다. 테두리 생산자들은 정체된 흐름에 신선한 경향을 일으키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대중을 이끌며, 자본을 집중시켜 결과적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킨다. 지난 십년간 어떤 도심재개발 정책보다 효과적인 공정을 연속해서 이끌었다. 이제 우리사회는 그 집단을 제대로 의미 규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경제활동은 금전과 등가교환을 위해서만 마련된 장치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집스런 질문의 종합적인 현장이다. 스스로가 콘텐츠이기에, 상행위는 생존활동이 아닌 생명활동이다. 또한 다음세대가 미래를 향해 가리키는 삶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이 임대료 인상과 반복되는 추방 때문에 사그라지게 두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시대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

가령, 우리는 아름다운 시장길을 만들 수 있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됐던 부산 국제시장의 가게 주인이 쫓겨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이는 영화 콘텐츠의 소비와 실제 전통시장의 콘텐츠 소비가 다르기에 빚어진 현상이다. 그와 달리 테두리 생산자들은 시장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 해 줄 수 있다. 만약 전통시장에 대한 불만인 편의시설을 해결하겠다면, 상인들이 상대할 쪽은 대형마트가 아닌 바로 옆 건물주들이 된다. 이럴 때 테두리 생산자들이 먼저 매력적인 순환을 일으켜 경기를 살리면, 부동산 자본은 전통시장에 투자할 가치를 믿게 된다. 이 과정에 건설경기의 위축으로 고생하는 젊은 건축가들을 참여시킨다. 협소한 공간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서민경제라는 특성상, 서로의 콘텐츠가 필수조건이 된다면 지속가능한 공생관계를 꿈꾸는 게 가능해 진다.

가로수길에 사람들이 모이던 게 십년 전이다. 테두리 생산자들의 서쪽 행진은 부동산 시세 벨트를 따라 연남동에 이르렀다. 오늘밤에도 연남동 후미진 골목 어딘가에선 그들의 가게가 작고 노란별처럼 빛날 것이다. 이제 그들의 지난 십년간 노고에 대해 우리는 공식적인 답신을 보내야 한다.

언제까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 등골이나 빼먹으며 연명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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