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날 사찰 벌여…실시간 감시·보고
구역 나눠 ‘옷차림‧이동경로‧도착 예정시간’ 보고
노조, “사찰 책임자 찾아 구속 처벌해야”
정치권, “철저한 진상규명 필요”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불법 사찰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 계열사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13일 삼성 계열사들이 소음피해 문제로 삼성물산에 민원을 제기해온 강모씨와 삼성테크윈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사찰을 벌인 정황이 포착됐다.

이에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며 이번 사찰 사건에 대해 강력 비판하고 나섰고 정치권도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은 앞서도 이와 비슷한 사찰 논란이 불거졌던 만큼 이번 사찰 사건과 관련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파문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시간 사찰, 동선 파악‧이동경로‧도착 예정시간 보고

지난 14일 <경향신문>은 삼성물산이 일반인을 사찰한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문자를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물산 고객만족(CS)팀 최모 대리 등은 소음문제로 5년 동안 민원을 제기해 온 서울 길음동 삼성래미안 아파트 거주민 강씨를 사찰했다.

강씨는 지난 13일 열린 삼성 계열사 주주총회에 소액주주 자격으로 참석할 것으로 예정돼있었다. 이에 삼성물산 고객만족팀(CS) 직원들은 강씨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동태를 살폈다.

이날 삼성물산 직원들은 강씨의 집 근처, 양재시민의숲역 등 강씨 집근처 주요 동선에 배치되며 강씨의 동선에 대해 보고할 것을 임무 받았다.

이에 삼성물산 직원 27명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는 강씨의 집에 불이 켜진 시각, 강씨가 입은 옷, 강씨의 이동경로, 주주총회장 도착 예정시간 등 강씨의 동선에 대해 실시간으로 파악한 글이 올라오며 강씨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 뿐만 아니라 삼성물산 직원들 중 한 명은 강씨의 돌발 행동을 저지할 것을 지시받기도 했다. 강씨가 양재시민의숲역에 나타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삼성물산 직원 유모 과장은 강씨를 주주총회가 열린 양재동 aT센터까지 안내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직원 홍모 과장은 주주총회장에서 강씨가 앞자리로 이동하는 등 돌발행동을 벌일 경우 대응할 것을 지시받아 강씨 바로 옆 통로 측에 자리했다.

이와 같은 조직적인 감시는 강씨가 주총에서 소음 문제를 제기한 후 현장을 떠난 오전 9시 30분까지 지속됐다. 강씨의 감시를 모두 마친 후 삼성물산 박 모 전무는 단체 카톡방에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와 함께 삼성테크윈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사찰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이날 오전 7시 48분 같은 단체 카톡방에는 “윤종균 삼성테크윈지회장 등 노조 간부 8명이 테크윈 주주총회 장소인 성남 상공회의소에 도착해 피켓 준비 중”이라는 보고도 올라왔다.

이후 삼성테크윈에서 한화그룹으로의 매각을 반대하는 노조 간부들의 실명이 올라왔으며 노조 최모 감사 외 1명의 주주총회장 입실에 대한 동향도 보고됐다.

삼성, 또 다시 제기된 사찰 논란에 ‘곤혹’

이번 삼성 계열사 사찰 논란은 과거에 있었던 사찰 문제까지 다시 제기되며 더욱 커지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04년 삼성일반노조 김성환위원장과 삼성노동자들을 위치추적, 도감청을 한 사실이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이와 함께 2012년에는 그룹 직원들을 시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미행한 사실이 적발돼 형사 처분 받았다.

이 외에도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노조를 결성하려는 직원들을 사찰한다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돼왔으며 지난달에는 2007년 삼성SDI가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삼성노동자들을 미행, 감시, 납치, 감금, 사찰한 내용이 담긴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노조, 삼성 사찰 규탄 나서

   
▲ 사진 제공 삼성일반노동조합

이러한 상황에 삼성일반노동조합은 지난 16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삼성의 사찰을 규탄하고 나섰다.

노조 측은 삼성이 삼성에 반하는 노동자, 국민 누구든지 삼성 노무관리 차원에서 미행감시 사찰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분노했다.

또한 노초 측은 삼성 그룹이 민원인과 노조 간부들을 미행하고 사찰한 사실이 들통 났다며 삼성은 이에 대해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삼성 측은 군사작전을 하듯 직원들로 조를 짜 구간별로 배치해 미행을 시켰다”며 “‘집에 불이 켜졌다’, ‘하얀 점퍼에 검은 바지 차림’ 등 카톡방 글을 보면 첩보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같은 카톡방에 삼성테크윈 노조 간부들이 삼성물산과 다른 곳에서 열린 주주총회장 앞에서 시위 준비 중이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보면 삼성에스원에서도 별도의 미행 및 사찰팀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누가됐든 삼성은 미운털이 박힌 인사에 대해서는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수시로 동향을 염탐한다는 얘기”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초일류 기업을 자임하는 삼성이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고 사생활까지 넘본다고 생각하니 개탄할 노릇”이라며 “미행 사실을 알게 된 민원인은 떨려서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판이라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노조 측은 “삼성재벌의 사찰이 이제는 삼성에 반하는 국민에게까지 자행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이번 사찰 사건과 관련한 책임자를 찾아 구속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촉구

이와 함께 정치권에서도 이번 삼성 계열사 사찰 사건과 관련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지난 16일 오전 현안브리핑을 통해 “권력기관의 사찰도 불법으로 용납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재벌기업이 민간인을 사찰한 것은 묵과할 수 없다”며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지난 2012년 삼성 측이 CJ그룹 이재현 회장을 미행하고 그 동안 노조 사찰 의혹이 다수 제기된 점을 언급하며 삼성의 미행과 사찰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꼬집었다.

이어 “삼성의 민간인 사찰은 피해자 입막음과 보여주기식 사과와 같은 ‘급한 불끄기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사법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이 같은 행태를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도 삼성의 사찰 논란에 대해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삼성의 이 같은 행태는 이미 수차례 적발된 바 있으나 삼성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며 “사법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동안 사실로 확인된 삼성의 노동자 감시와 불법 사찰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그 때마다 삼성은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내놨지만 번번이 공염불에 그쳤다. 삼성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엄중 조처와 책임자 문책을 밝혔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삼성이 진정한 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격에 맞는 기업의 책임과 윤리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선행돼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 “사찰 사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한편, 삼성물산은 삼성 계열사들이 주주총회 날 사찰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자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물산은 지난 15일 오후 건설부문 블로그를 통해 “저희 임직원들이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원인의 동향을 감시하는 매우 잘못된 행동을 했다”며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무엇보다 민원인 당사자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저희 회사 일로 물의를 빚고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과드린다”며 “당사에서는 바로 사실관계 파악에 나서 이 사건의 책임자인 주택본부장을 보직 해임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철저한 진상을 확인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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