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검색되지 않을 자유> 저자 임태훈

   
▲ 임태훈 작가 ⓒ투데이신문

◎ 빅데이터, 규모 방대하고 생성주기 짧은 데이터 
◎ 국내기업 중 수준급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갖춘 곳 거의 없어 
◎ 빅데이터, 첨단 기술이지만 아날로그 작업 밑바탕돼야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서 많은 양의 정보가 생산되고 있는 요즘, 그 중심에 빅데이터(Big Data)가 있다.

빅데이터란 과거 아날로그 환경과 달리 규모가 방대하고 생성 주기가 짧은 데이터를 일컫는다.

최근 등장한 빅데이터 기술은 선거에도 활용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당시 효과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었던 비결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유권자 맞춤형 선거전략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빅데이터는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마케팅, 광고 등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밀고 있는 창조경제의 기반 역시 정보통신기술인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와 빅데이터다. 창조경제론의 핵심은 모든 산업에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정보자본주의 속 빅데이터에 열광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빅데이터를 ‘기술보다 이데올로기가 앞선 정치 슬로건’이며 ‘창조경제론이 부풀려놓은 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임태훈 작가다.

원래 임 작가는 미디어 이론과 역사, 소리의 문화사를 연구해온 인문학자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기술과 과학을 사유할 줄 아는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문학평론가,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 기획위원장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 <우애의 미디올로지>가 있고 공저로는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옥상의 정치> 등이 있다.

이런 그가 지난해 11월, 빅데이터에 포박된 우리의 현실을 담은 <검색되지 않을 자유>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건축, 의료 등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문제를 꼬집는다. 아울러 정보자본주의에서 지식과 인지가 새로운 부의 원천이 되는 경제구조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그는 빅데이터 문제를 ICT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선 안 되며 여기에 인문학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인문학과 정보자본주의, 그리고 빅데이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조합을 이뤄야 한다는 것.

임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빅데이터를 통해 서버에 의한 감시와 ‘호모 익스펙트롤(예측가능한 사람)’의 출현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또 정보통신사회에서 점차 배제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문학자로서 깊은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월 16일, 사직동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임태훈 작가를 만났다. 인문학자인 그가 빅데이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 기본적인 데이터관리 문화 없어 

▲ 인문학자인데도 불구하고 ‘빅데이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내가 출간한 첫 책이 <우애의 미디올로지>(갈무리, 2012)였다. 이 책을 쓰면서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이 시점은 빅데이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원래 내가 하던 공부는 인문학이나 미디어 쪽이었다. 당시 빅데이터가 내 전문분야는 아니었지만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들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열심히 그들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에게 말만 있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 보면 거의 동어 반복이었고 구체적인 얘기를 할 때는 언제나 미국 사례가 등장했다. 한국의 빅데이터는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의 미디어 환경 변화는 이 시대의 온갖 현실 문제와 얽혀 있다. 빅데이터는 전공을 불문하고 지식인이라면 비껴갈 수 없는 과제다.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다. 

▲ 이번에 출간한 <검색되지 않을 자유>에서 빅데이터를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점이 인상깊었다.

: 빅데이터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포괄적 인문학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빅데이터가 프로그래머나 ICT 전문가들만의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빅데이터가 중층적인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인문학자와 사회학자가 많다.

빅데이터 기술로 인해 생겨나는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우리는 기술자니까 그런 얘기를 안 하겠다. 기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인문학자들은 ‘우리가 뭘 알겠나’는 식으로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이대로라면 빅데이터가 굉장히 무책임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양쪽 모두 빅데이터에 섞여있는 거짓말의 농도와 성질을 감별하는 일에 책임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책보다 훨씬 더 본격적이고 치열한 작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 말씀하신 빅데이터에 섞여있는 거짓말의 농도라는 게 무엇인지. 

: 이를 테면 국내 기업들 중에서 수준급의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갖추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올해는 사정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을 쓴 지난해에는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에 대해 비관적인 얘기가 굉장히 많았다. 

빅데이터 솔루션 구축이 과거 실패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관계관리)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그건 아마 데이터 관리 부실 때문일 것이다. 수년 동안 빅데이터에 대한 얘기는 무성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온 것은 보지 못했다. ‘빅데이터’라고 이름만 붙였지 원래 있던 서비스를 재탕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빅데이터가 최첨단 기술이지만 아날로그한 작업이 밑바탕돼야 한다. 빅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기존에 문서로 돼 있는 자료 하나하나를 잘 보관하고 분류해야 한다. 아울러 자료의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심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본적인 데이터 관리 문화가 없다. 우리나라는 언제인가부터 당장의 수익이 나지 않는 분야엔 돈을 쓰지 않는 인색한 사회가 됐다. 아마 IMF 이후 한국사회가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 돈을 쓰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구분이 확 정해진 것 같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공데이터나 기업의 고객정보 등에 대한 관리가 너무 부실하게 이뤄졌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의 관료문화와 기업문화는 빅데이터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집단지성의 문화로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빅데이터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디자인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또 세대‧계급간의 소통 구조, 문화, 관용 이런 것들과 한꺼번에 연관돼 있는 문제이기에 인문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은 공공데이터 부문에서 훨씬 더 앞선다고 들었다. 쉽게 감이 안 잡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가.

: 현재 우리나라는 공공데이터 부문에서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미국은 코딩(coding) 교육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ICT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인 준비가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역시 코딩교육을 비롯해 빅데이터 사업에 대한 여러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실질적인 단계로 들어서기엔 부실한 면이 많다. 박근혜 정부가 ‘빅데이터’라는 말을 앞세워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토건족들을 배불리는 사업만 계속하고 있지 않나. 박근혜 정권이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들었는데 공공데이터 부분을 보면 갈 길이 멀고 암담하다.

   
▲ 임태훈 작가 ⓒ투데이신문

ICT 기술 창조성, 폭넓은 사고와 관용이 정착된 사회에서 가능  

▲ 창조경제론의 내용을 보면 모든 산업의 과학기술과 ICT를 적용한 새로운 시장 구축과 일자리 창출이다. 이 핵심 내용대로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 현재 창조경제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정부가 아니라 대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은 어쨌거나 틀린 말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거의 반세기 이상 한국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패러다임은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졌다. 

ICT 기술의 창조성은 폭넓은 사고와 관용이 정착된 사회에서 가능하다. 흙도 물도 없는데 씨앗이 싹을 틔울 순 없는 법이다. 그런데 재벌 중심 사회인 한국은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학생들은 꿈도 미래도 잃었다. ICT는커녕 뭘 해도 안 되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경제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긍정적 의미의 창조경제는 불가능하다.

‘재벌에 힘 실어줄게’라고 말하면 정작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창조적인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활동하기 힘들다. ICT산업의 많은 인재들이 이런 이유로 한국을 뜨고 있다.

실리콘밸리로 가든가 인도로 가라는 말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구조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거시적인 안목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현 정부에 그런 능력자가 있나. 전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 중요한 이 시기에 이정도 수준의 창조경제론을 갖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정부가 안타깝다.

▲ 그렇다면 국내 기업의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 국내 기업에서 수준급의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기업에서 데이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계속 생성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수 만 배, 수십 만 배에 달한다. 지금까지 관리가 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잘할 수 있다면 늦지 않았다고 본다. 그런데 데이터 관리 기술은 문화적인 부분이 크다.

어떤 기업이나 기관에서 ‘어떤 데이터를 중요시 여길 것인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지만 새로운 구성을 위해 어떤 데이터를 관리해야 하나’ 등에 대한 인지적 지도가 구성돼야 한다. 이는 똑똑한 프로그래머를 데려오고 물리적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인문학적 토양이 있어야 한다. 그냥 ‘돈 줄테니 어느 수준까지 만들라’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밀어붙여서 억지로 성과부터 내고 보는, 불도저 정치 · 경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공공데이터 관리가 잘 돼 있다. 하다 못해 지역사회에 있는 도서관의 장서 수만 보더라도 문화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최근 구글이 모든 공공도서관의 책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했다. 우리는 빅데이터 기술의 출발점이 ‘구글’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구글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인쇄 매체 데이터들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라. 100여년 넘게 구축돼 온 아날로그 데이터, 풍부한 해석의 관점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디지털화한 이유를 말이다. 한편, 구글의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업이 우리나라에 하나라도 있나.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이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 당장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식만 추구한다. 물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 그 방식이 꾸준히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 어찌 보면 빅데이터와 관련해 구글 같은 포털사이트의 영향력이 참 막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 구글의 에릭슈미츠 회장은 ‘검색되지 않는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구글은 세계 모든 데이터를 끌어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인의 정보자산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들의 플랫폼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재 구글이나 애플이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은 해당 플랫폼에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가두리 양식장에 물고기를 양식하듯이 많은 사람들을 그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빅데이터 마케팅,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  

▲ 요즘 개인정보를 광고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의 거래내역을 분석해 소비패턴도 파악하고 이에 맞게 광고메일을 보낸다든지, 광고 전화를 한다든지 등 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은 ‘빅데이터 마케팅’의 가장 기초적인 방법들이다. 기업들도 소비자들이 굉장히 불쾌해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타겟메일링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기업들이 요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빅데이터 마케팅을 해나가고 있다. 빅데이터 마케팅은 이제 의식적인 권유가 아니라, 무의식에 호소하는 강렬한 신경신호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 한 사람의 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어디를 많이 가고 어떤 소비패턴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개인정보 노출 위험도 있을 것 같다.

: 한국의 빅데이터 관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민등록번호다. 이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강력한 빅데이터 검색기술이다. 미국에 사회보장번호가 있긴 하지만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거의 모든 사회생활에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는 슈퍼키(super key)다. 내가 했던 모든 데이터의 궤적들이 이 숫자와 함께 끌려온다.

어쨌든 올해부터 주민등록번호 무단 수집이 금지됐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그 사이 무단 수집된 주민등록번호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미 세상에 공개되고 흘러 다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보는 대체 누가 책임지고 해결하나. 이에 대해 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 갑자기 영화 <킹스맨>이 생각난다. 이 영화를 보면 악당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무료로 휴대전화를 나눠준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내장된 유심칩에 신호를 보내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다. 이를 보면서 통제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 인간의 인간됨을 얘기할 수 있는 기준은 ‘블랙박스’에 있다. 우리 삶과 내면의 잘 들여다보지 않는 예측불가능성과 불투명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 윤리와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 모조리 바뀌게 된다. 행동 패턴이 투명하게 노출된 뻔한 인간들의 세계는 정말로 닥칠 수 있다. 그런 세계에서 어떤 권력이 인간 위에 군림하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 요즘 아파트를 비롯해 도심 곳곳에 CCTV가 많이 눈에 띈다. 흉악범죄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CCTV가 좋을 수도 있고 사생활 침해라는 점에서 나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작가님의 생각은 어떤가.

: 모든 기술은 양가성이 있다. 이를 선용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CCTV가 당장 칼에 찔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다. 단지 쳐다만 볼 뿐이다. 중요한 증거를 포착해 범인을 검거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순 있겠지만 당장 누군가를 도와주지는 않는다. 긴박한 상황에서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건 ‘사람’이다.

용기 있게 밖으로 나가서 범인을 잡거나 다친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다. 우리가 기계에 사회적 책임을 떠넘기는 순간, 서로 돕고 도와주는 오랜 사회적 기술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 될 것이다.

▲ 빅데이터 기술의 위험성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 않나.

: 빅데이터를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떤 종류의 기술이든 양가적이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우리들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 그러니까 ‘나 혼자 잘 살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첨단화하는 방향으로 선용돼야 한다.

데이터 생산량만 보면 인류는 이제 막 눈을 뜬 것이며 새로운 정보의 바다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정보환경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 어떻게 했는지 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기존 이론이나 매뉴얼에 충실하기 보다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창조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빅데이터 문화를 구축하자는 게 나의 입장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인간 신체정보를 기업이 다뤄도 되나

▲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디지털 헬스케어’다. 디지털 헬스케어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현재 삼성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 등 전세계 유수 ICT기업이 스마트폰 이후 사업모델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논쟁의 핵심은 ‘인간의 몸에 대한 정보를 기업이 다뤄도 되는가’다. 국가가 국민들의 생체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고 해서 논박이 오가는 상황 아닌가. 자기 회사에서 일하다가 화학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려 죽은 노동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기업이 과연 국민들의 생체정보를 자사 네트워크 안으로 끌어들여서 윤리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에 대해 삼성은 왜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삼성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만으로 2020년까지 50조원을 벌어들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2013년, 삼성의 수익이 200조인데 전체 수입의 1/4을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으로 벌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수익을 키울 생각은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

삼성은 미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된 제품과 플랫폼에 대한 설명회를 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언론이 삼성에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과 관련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얘기한다. ‘초음파 기기 그 정도 밖에 하는 게 없어요’라고.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디지털헬스케어 사업계획이 공론화됐을 때 떳떳할 수 없고 앞으로 사업 진행이 꼬일 수 있기에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 대기업에서 이윤창출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인가.

: ‘디지털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돈을 버는가’. 결국 이게 문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건강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사업이다. 디지털 신자유주의가 노리는 먹잇감은 몸과 시간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공통의 자율을 추구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 인간의 행동과 성향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인터넷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의 소비패턴이나 심리 등을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 컴퓨터나 인터넷 기술은 언제나 암호해독 기술의 발전과 함께 중대한 전환기를 맞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대 컴퓨터의 원형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 기술의 발달은 계속되고 있다.

이쯤에서 중요한 성과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화폐 기술에 기초한 ‘이더리움(etherum)’이라는 것이 있다. 이더리움은 서버를 경유하지 않는 인터넷이자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이다. 이제 막 시작됐기에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지만 정보자본주의의 흐름에 맞설 수 있는 역사적인 시도가 이뤄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 요즘에는 이삭통화부터 시작해 비트코인, 춘천녹색화폐와 같은 대안화폐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는 서버클라이언트 인터넷의 위상구조에 끼워 맞춰져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전략은 서버를 경유하지 않는 인터넷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더리움’을 각별히 주목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지금의 정보자본주의와 인터넷은 금융시스템과 하나가 돼있다. 비트화된 표준화폐, 중심화돼 있는 화폐, 국책은행들의 중심화폐가 흐르는 길이 지금의 인터넷이다.

이런 인터넷에서 벗어나려면 탈중심화된 새로운 인터넷에 탈중심화된 돈이 흐르는 길을 구축해야 한다. 기축통화 달러처럼 중앙 발행되는 방식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접속하고 정보자산을 재투자할수록 돈의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비트코인은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사례다.

질문하는 능력과 진정한 사유, 배움의 노력 있어야  

 우리가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인문학적으로 어떻게 사유해야 할까. 

: 우리가 호모익스펙트롤(예측가능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구든지 삶에는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블랙박스가 하나씩 주어져있다. 즐겁기 보다는 불안한 선물이다. 그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오래된 전통이 있는데 그것은 철학, 문학, 역사, 과학이다. 진중한 사유와 배움의 노력은 우리 시대의 야만적인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거짓말과 환상이 판치는 사회에서 쉽게 속지 않는 인간이 돼야 한다.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신경언어의 범람으로부터 내 몸과 정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을 연마하자. 그래야 호모익스펙트롤이 정보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 끝으로 빅데이터 시대에 다른 인문학자들이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 이질적인 영역과 대화하거나 발언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대화는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인문학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고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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