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제는 최저시급이다
[칼럼] 문제는 최저시급이다
  • 이은지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7.13 02: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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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지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나는 책이 좋고 문학이 좋아 문학도가 되고 최근에는 운 좋게도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하지만 책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나 정말 갖고 싶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도서관에서 빌려보자는 것이 나의 오랜 원칙이었다. 책 수집광인 남편을 둔 덕에 이제는 그 원칙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분간은 고수할 수밖에 없다. 문화평론을 하고 책을 쓰는 남편과 문학평론을 하고 대학원에 다니는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책 쇼핑은커녕 마트 쇼핑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누구 말마따나 밥 없이는 못 살아도 책 없이는 살 수 있다.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양과 예술을 찾는 것은 앞뒤도 맞지 않을뿐더러 외려 비인간적이다. 생리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뒷받침되었을 때 문화에의 욕구 또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다. 1920~30년대 전후 궁핍한 일본 사회에서 청춘을 보낸 여류작가 하야시 후미꼬의 『방랑기』(창비 2015)에는 하루 벌어 하루 근근이 먹고 살면서도 푼돈을 긁어모아 악착같이 책을 사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간신히 사들인 책은 돈이 떨어져 며칠씩 배를 곯고 나면 우동 한 그릇이라도 먹기 위해 기껏 산 책을 다시 헌책방에 팔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돈이 없으면 사람은 너무나 비참해진다. 그 추락의 생생한 속도감을 느껴보고 싶다면 장 에슈노즈의 『일 년』을 권한다. 중산층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여주인공 빅트와르는 어느 날 아침 침대 옆자리에서 지인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다짜고짜 짐을 챙기고 도주한다. 그녀는 은행에서 사만오천 프랑을 인출하고 낯선 도시에 방을 빌려 월 삼천육백 프랑을 주고 석 달을 머무른다. 인출한 돈은 장롱 서랍 깊숙이 숨겨 두었으나 이곳에서 사귀게 된 남자가 다녀간 어느 날 지폐 한 장 남김없이 사라진다. 다급해진 그녀는 은행의 잔액을 모두 인출한 뒤 또 다른 도시에 좀 더 형편없는 호텔에 묵는다. 호주머니가 얇아져가자 이마저도 포기하고 자전거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노숙하기에 이른다. 주머니 상황에 맞춰 상황이 급변하는 경쾌한 리듬은 읽는 재미를 더하지만, 평범하고 멀쩡한 삶이라는 게 돈이 없으면 얼마나 속절없이 표정을 바꾸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섬뜩하기도 하다.

빅트와르는 최악의 상황에는 몸이라도 팔아야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노숙을 하며 몰골이 흉해졌기에 차마 실천에 옮기지는 못한다. ‘몸을 판다’는 표현이 즉각적으로 상기하는 직종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이 시원찮은 여건에서 몸을 상해가며 일을 하는 작금을 생각하면 저 표현은 너무나 보편적으로 들린다. 지옥 같은 출퇴근, 저녁의 여유를 상납해야 하는 야근, 그리고 낮은 봉급.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받는 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기보다는 말 그대로 내 몸의 체력과 기력을 바친 만큼 받는 쌈짓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저 표현은 직장인보다 알바생에게 더 절묘하게 들어맞는 것 같다. 밑천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문학을 하겠다고 공모전 준비에 몰두한 1년 반 동안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피할 수 없었는데, 내 나름 머리를 굴려 선택한 알바는 최저시급보다 훨씬 돈을 많이 주는 곳에서 점심시간 직장인을 상대로 서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괜히 돈을 더 주는 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일은 고역이었고, 그렇게 받은 돈은 말 그대로 내 몸과 건강을 팔아서 받은 돈과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최저시급을 주되 상대적으로 덜 고역인 알바를 택하면 생활을 하기에 턱도 없는 돈이 손에 들어올 따름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알바는 모면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마구 쑤실 지경이다.

사회구조가 개선될 기미가 요원해질수록 좋든 싫든 알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이 미어 터져만 가고 있다. 그 와중에도 온갖 핑계를 대어가며 최저시급을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인상하는 행태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알바생이든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몸을 상해가며 간신히 먹고 사는 돈을 버는 이들의 주머니에서 책 한 권 살 여윳돈이 나올 리 만무하다. 오로지 책을 사는 데만 쓸 수 있는 일정 금액의 돈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한다면 모를까. 프랑스의 경제학자 앙드레 고르는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한 바 있다. 아무 조건 없이 일정한 돈이 계속해서 들어오면 여유가 있는 이는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위해, 여유가 없는 이는 당장 급한 것을 메우기 위해 쓸 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최소한의 사회적 투자만으로도 인간이 비참해지지 않기 위한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기본소득제 같은 파격적인 제도가 아니더라도 최저시급이라도 인간적인 수준으로 올려준다면 먹고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한국의 비참한 현실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한 번도 제대로 비참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저 위정자들에게는 최저시급도 고도의 정치적인 산수게임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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