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지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여름에는 볕을 피하기 위해, 겨울에는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은 종종 모자를 쓴다. 또한 요즘 사람들에게 모자는 패션의 완성을 위해 간과할 수 없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능적인 용도나 패션의 용도에 앞서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드러내고 그에 맞춰 격식을 차리기 위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모자를 쓰게 하였을 것이다. 모자는 한 사람의 인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머리 위에 오른다는 점에서 다른 신체 부위에 착용하는 여타 의복에 비해 그러한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모자는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상징적인 사물로서 문학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공포」에서 주인공은 막역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꺼림칙한 친구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집에서 종종 머물곤 한다. 그는 친구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만 결코 내색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자신과의 관계를 각별하게 여기는 드미트리가 어느 날 고백하기를, 부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겉보기에 나무랄 데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실이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여태 부인을 향한 마음을 누르고 있던 주인공은 옳다구나 그날 밤 사심을 드러내고, 그녀와 황홀한 밤을 보낸다. 이 때 그들을 지켜보기라도 하듯이 드미트리의 모자가 주인공의 방에 놓여 있다. 다음 날 드미트리가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찾으러 오는 모습은 마치 그가 간밤의 일을 간파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단편 「모자」에서 주인공은 신경질환을 앓고 있어 형의 집에서 요양 중이다. 그는 어둠이 찾아오면 집을 나와 동네를 산책하곤 하는데 어느 날 길가에서 모자를 하나 줍는다. 푸주한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 그 모자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그는 동네에 있는 푸줏간을 일일이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푸주한들이 자신이 주운 모자와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심지어 옆 동네의 푸줏간까지 샅샅이 돌아다니지만 아무도 모자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잃어버렸을 모자, 모두들 색도 모양도 똑같은 것으로 쓰고 있는 모자를 머리에 얹은 채 주인공은 병적인 상태로 그 모자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황정은의 동명의 단편에서는 세 남매의 아버지가 시도 때도 없이 모자로 변한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이삿짐을 나르다가도 어느 순간 모자가 되어 있다. 남매는 아버지가 모자로 변하는 걸 최초로 목격한 기억을 서로 들려준다. 첫째는 친구들과 길을 가던 중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뒤지고 있는 아버지와 마주치자 부끄러워 모른 척 지나쳤는데, 다시 돌아가 보니 아버지가 모자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둘째는 아끼는 라디오가 고장 나서 울고 있을 때 손찌검 하는 아버지를 향해 고치지도 못하고 사주지도 못하지 않느냐며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아버지가 모자가 되었다고 한다. 셋째는 학부모 참관일에 아버지가 사물함 위에 모자가 되어 얹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모자가 되는 이상한 현상은 아버지가 제 구실을 못하고 허울뿐일 때마다 일어난다. 황정은의 단편에서 모자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이름뿐일지언정 소멸하지 않고 간신히 존재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그려진다. 한편 베른하르트의 단편에 등장하는 수많은 똑같은 모자들은 몰개성한 불특정다수를 상징한다. 길에서 주웠지만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되어버린 모자는 주인공 또한 익명의 다수 중 한 사람에 불과한 현실을 조소하는 장치로 보인다. 반면 체호프의 단편에서 아내와 친구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에 놓여 있는 모자는 불륜에 대해 유일하게 직접 문책할 자격이 있는 남편의 상징적 일부로서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다. 세 편의 소설에서 모자는 의미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 사람의 분신으로서 중요하게 기능하는 점은 동일하다. 모자의 모양이나 모자가 놓인 자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의당 그 모자의 주인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뻗어나간다.

정치인의 머리 위에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모자 비슷한 감투가 하나씩 놓여 있는데, 이 감투는 그의 정치적 이해와 비슷한 이해를 공유하는 뭇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감을 보태어 씌워준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이 이 감투를 쓴 머리를 조아릴 때에는 자신의 이해뿐만 아니라 감투를 씌워준 뭇사람들의 이해도 십분 헤아려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정치인이 옳은 일을 하거나 그른 일을 했을 때 그의 평판은 그에게 감투를 씌워준 뭇사람들의 평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감투가 투명해서 잊기 십상이지만 정치인과 유권자는 매사에 얽혀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자주 모자(감투)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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