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 왼쪽부터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 전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하) 왼쪽부터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 전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 전 일본롯데 신동주 부회장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가 권력 싸움
재벌가 권력 다툼, 법적 공방은 필수?
‘왕자·형제의 난’…끊이지 않는 권력 분쟁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최근 롯데가(家)의 경영권 분쟁이 세간을 시끄럽게 했다. 권력 앞에서 서로를 헐뜯기 바쁜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다툼은 한순간 롯데가를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었다.

이 둘의 싸움을 가만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어렴풋이 들었던 전래동화 속 간신히 끼니만 챙기는 없는 살림에도 일 년 동안의 결과물인 곡식을 수확해 나누는 과정에서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더 챙겨주기 위해 밤새 곡식을 서로의 논에 갖다 놓기 바빴던 형제의 우애는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인 듯하다.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줄곧 계속돼왔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국내 자산 기준 40대 그룹사 중 경영권 분쟁을 겪은 그룹사가 18곳에 달한다. 일명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현대가의 권력 다툼부터 두산, 금호, 삼성을 거쳐 최근 롯데에 이르기까지 재벌가는 끊이지 않는 권력 분쟁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재벌가의 경영권 싸움은 칼과 총만 빼들지 않았을 뿐, 그 어느 전쟁보다도 치열하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와 모함이 들끓는 가운데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이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가의 분쟁을 통해 몸소 증명되고 있다.

현대, ‘왕자의 난’ 서막 열다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형제간 권력 다툼 구조의 서막을 올린 자는 현대그룹이다. 현대그룹은 2000년부터 형제들의 경영 다툼이 거세게 이어졌다.

창업주인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뒤 현대그룹은 차남인 정몽구, 5남인 고(故) 정몽헌 회장의 공동회장체제로 운영됐다. 장남인 정몽필 인천제철회장이 1982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상태였기에 정 명예회장은 후계자 낙점을 두고 정몽구·정몽헌 두 아들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던 중 정몽구 회장은 그해 3월 14일 5남인 고 정몽헌 회장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시켰다. 이에 정몽헌은 같은 달 24일 정 명예회장을 찾아가 이 인사 조치를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을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왕자의 난’이 시작됐다.

결국 3월 27일 현대경영자협의회가 5남인 정몽헌 회장을 단독 회장으로 승인했다. 그러자 정몽구 회장은 정 명예회장이 재가했다는 서류를 공개하며 반박에 나섰다. 이에 지지 않고 정몽헌 회장은 정 명예회장을 기자회견장에 불러 단독 회장직을 확약 받았다.

두 형제간의 다툼은 현대그룹의 계열사가 분리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계열사 분리를 통해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등 10개 계열사를, 정몽헌 회장은 현대아산·현대건설·현대상선 등 20여개의 계열사를 맡게 됐다.

두산, 파란만장한 ‘형제의 난’

두산그룹도 2005년 파란만장한 ‘형제의 난’을 겪었다.

그해 7월 두산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두병 초대회장이 물러나고 3남인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이 그룹의 새 회장으로 취임하자 명예회장으로 밀려난 고(故) 박용오 전 그룹회장이 이에 거세게 반발하며 비로소 사건이 시작됐다.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을 자신의 몫으로 계열분리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은 뜻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자 박용오 전 회장은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두산 박용만 부회장 등이 20년간 100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담긴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이라는 진정서를 같은 달 검찰에 제출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박용오 전 회장은 가문에서 제명됐고, 결국 2009년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호, 길고 긴 권력 분쟁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 간 권력분쟁은 역사가 길다. 2009년에 시작된 금호가(家)의 형제간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고(故) 박인천 창업주가 일군 금호그룹은 장남인 박성용 회장과 차남인 박정구 회장, 3남인 박삼구 회장이 차례로 그룹 회장직을 맡으며 형제 간 공동경영 원칙을 잘 지키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의 주도로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금호그룹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닥치게 된 것. 결국 금호그룹은 2009년 대우건설 재매각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금호그룹이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하게 된 상황 속에서 박찬구 회장은 당시 자신이 맡고 있던 금호석유화학이라도 살리고자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하면서 두 형제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게 된 것.

박찬구 회장의 행보에 분노한 박삼구 회장은 같은 해 7월 박찬구 회장을 금호석유화학 대표에서 해임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도 동반 퇴진했다.

이후 금호그룹은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졌고 같은 해 3월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으로, 박삼구 회장은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두 형제의 갈등은 끝나지 않은 채 수년간 서로를 배임 등으로 고소하며 법정 다툼을 계속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은 지난해 박삼구 회장을 4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이 둘은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간 상표권 소송, 아시아나항공 주식매각청구소송,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 결의 무효소송과 형사 고발 등 각종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권 다툼, 삼성도 마찬가지

경영권 다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집안이 있다. 그곳은 바로 삼성가(家)다.

고(故) 삼성그룹 이병철 초대회장이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장남인 고(故) 전 제일비료 이맹희 회장이 그룹 주요 경영을 도맡았으나 그의 경영 능력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다. 더불어 차남인 고(故) 이창희씨가 1969년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다며 청와대에 탄원서를 낸 사건에 그도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으며 이맹희 전 회장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결국 1973년, 이병철 초대회장의 뒤를 이를 후계자로 3남인 이건희가 낙점되며 확실해진 승계 구도에 형제 간 분쟁은 사그라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형제 간 분쟁은 이병철 초대회장의 유산을 놓고 다시금 불타올랐다. 2008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이 초대회장에게 4조5000억원 규모의 차명주식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2년 장남 이맹희를 비롯한 공동상속인들은 유산 소송을 제기했다.

유산 소송에서 이맹희 전 회장은 약 71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배했다. 이후 이맹희 전 회장은 먼저 이건희 회장 측에 화해를 제안, 지난해 2월 상고를 포기하며 삼성가(家) 형제 간 법정 공방은 일단락됐다.

롯데, 형제 간 신랄한 권력 싸움

이렇듯 긴 재벌가의 권력 다툼의 역사에 최근 새롭게 이름을 새긴 가문이 등장했다. 그는 바로 올 여름, 형제 간 신랄한 권력 싸움으로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롯데그룹이다.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장남 전 일본롯데 신동주 부회장이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권력을 잡으려고 했으나 실패한 사건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7월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했다. 이 중에는 최근 경영권을 승계 받은 차남인 신동빈 회장도 포함돼있었다.

신동빈 회장은 이에 반발하며 신 총괄회장을 대표이사회장직에서 해임하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은 이 사건으로 신 총괄회장의 분노를 산 것과 더불어 누나 롯데장학재단 신영자 이사장을 비롯한 가족들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편에 서면서 위기에 몰리게 됐다.

7월 31일, 이번 사태와 관련한 신 총괄회장의 육성 녹음이 공개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이 방송 인터뷰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등 싸움의 점점 더 열기가 더해졌다.

그러나 8월 17일 일본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의 핵심 지배 고리인 롯데홀딩스의 주주들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섰고, 이에 따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만간 신동주, 신동빈 형제와 그의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이 세 명이 만나게 될 예정인 가운데 극적인 화해가 가능할지 혹은 다른 양상이 펼쳐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렇듯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재벌가의 권력 다툼에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정권은 유한하나 재벌은 영원하다’는 말을 ‘정권은 유한하나 재벌은 영원하고, 재벌의 권력 다툼도 영원하다’고 바꿔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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