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본지는 노인을 위한 일터인 실버택배소에 다녀왔다. 이번 호는 주름진 손으로 물건을 옮기는 택배 노동자의 하루를 담았다. 늙지 않는 열정을 지닌 흰머리 실버택배원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산을 깎아서 지은 듯한 서울 은평구의 A아파트. 그 입구에서 가파르게 솟은 아파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체 동을 쭉 훑어보니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어찌 가야 할 바를 모르던 기자에게 한 경비원은 지름길을 알려줬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돌로 된 계단을 밟아가니 어느덧 작은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곳은 지난해 겨울, 은평시니어클럽과 한 택배회사가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해 세운 실버택배소다. 60세 이상으로 구성된 택배원들은 A아파트로 들어오는 물건을 주민의 집 앞으로 배달한다.

비가 주륵주륵 얄궂게 내린 낮 12시, 작업복을 갖춰 입은 노인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실버택배원들은 다같이 비타민 음료로 목을 적셨다. 음료를 마신 후 재빨리 병뚜껑을 닫은 김승철(가명‧65)할아버지는 주차된 전동차를 밖으로 빼냈다. 다른 이들도 차를 꺼내며 고장 난 곳이 없는지 살폈다. 추운 날씨 탓에 그들의 입에서는 김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무실 앞으로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A아파트 주민들의 물건이 실린 택배트럭이다. 차 문이 열리자 실버택배원들은 트럭 뒤꽁무니에 서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물건을 뺐다. 이어 박스에 적힌 주소를 세심히 살피며 동호수를 확인한 뒤 자신의 전동차에 실었다. 김승철 할아버지도 비를 맞으며 트렁크에 짐을 재빨리 싣고 306동으로 향했다. 어둑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선 그는 아파트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물건을 내렸다. 허리가 땅에 놓인 짐을 향해 휘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끄엉차!”

전동차 안에서 초록색 수레를 꺼낸 할아버지는 그 위에 물건을 쌓았다. 내리는 짐의 무게가 클수록 신음은 더욱 커져갔다. 동 출입구로 들어서자 지나갈 길을 보랴, 오른손에 든 수레를 끌랴, 도착할 동호수를 살피랴 정신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일거리는 많았다. 박스에 붙은 송장 스티커를 떼고, 박스를 확인하고, 배달표를 살펴보고…. 그러다가 문이 열리면 흠칫 놀라며 서둘러 내렸다.

   
 

“안녕하세요. 택배입니다”

가정집 현관문 앞. 할아버지는 호수를 확인한 뒤 벨을 누르며 외쳤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사람이 물건을 건네받자 곧바로 종이에 ‘완료’ 표시를 했다. 펜과 종이를 항상 갖고 다니는 이유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다. 배달을 위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 보면 깜빡할 때가 많아 자신의 머리보단 손을 믿는다.

그런데 펜을 쥔 그의 손가락 끝이 조금 이상했다. 장갑을 끼고 있는 검지와 중지 끝으로 주름진 손가락이 삐져나온 것이다. 이 구멍은 휴대전화 액정을 만지거나 손톱으로 송장 스티커를 떼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다른 곳으로 걸음을 재촉한 할아버지는 한 집에 서서 벨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선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어떤 물건이냐고 묻는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자를 대하듯 짜증 내지 않고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무겁고요. A홈쇼핑에서 왔네요. 경비실에 두면 가져가기 무거우실 텐데…. ”

전화를 걸면 집주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현관문 앞에 놓아달라” 혹은 “경비실에 맡겨달라”다. 물건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운명이 정해진다. 결국 이 박스의 도착지는 경비실로 결정됐다. 할아버지는 전동차에 물건을 싣고 시동을 걸어 다른 동으로 향했다. 또다시 지하주차장 현관문에 서서 동호수를 누른 뒤 짐을 끌고 들어갔다.

   
 

“택배인데요. 아무도 안 계시나 봐요? 네… 문 앞에다가 놓고 갈게요”

다른 집 현관에서도 그의 전화기는 계속 불이 났다. 할아버지는 종이에 ‘사람 없음’을 표시하고 현관 앞에 놓인 물건과 호수를 사진으로 남겼다. 요즘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 이런 경우가 잦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만약 집에 주인이 없고 전화까지 안 받으면 물건은 영락없이 경비실로 가야 한다.

   
 

할아버지는 물건을 건넬 때 전달 여부와 받은 사람의 이름을 꼭 확인했다. 주인이 이사를 갔거나 택배를 보내는 자가 주소를 잘못 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택배 일은 체력뿐만 아니라 인내심과 꼼꼼함이 필요하다.

“없어지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사진을 찍어놓아야 뒤탈이 안 나죠”

스마트폰으로 물건과 현관문을 찍던 그가 말했다. 물건 하나를 배달할 때마다 450원씩 수익이 생기는데 혹시 배달 실수로 변상하게 되면 큰일이다. 한 달 급여를 날릴 수도 있으므로 귀찮아도 셔터를 눌러야 한다. 사진을 찍고 종이에 전달 여부를 기록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어쩔 수가 없다. 변상이 가장 무서워 지금까지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전달을 잘못한 적은 없다.

   
 

한편으로 실버택배의 일은 외로움의 연속이다. 할아버지가 걷는 복도 위에는 침묵이 흐르고 발소리와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흐른다. 엘리베이터의 문틈을 넘을 때만 수레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릴 뿐이다. 초인종을 누르며 기다리고, 주인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더불어 이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기도 하다.

어떤 집 앞에 도착하니 현관문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벨 누르지 마세요. 아이가 자고 있어요! 택배는 현관 앞에 놓아주세요.’ 그는 물건을 조용히 내리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발이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향했다. 배달할 곳이 1층 차이만 나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계단을 이용한다. 계단을 타는 속도가 내려갈 때 빨랐지만 올라올 때 느려졌다.

   
 

실버택배원들은 조를 나눠 한 달은 월‧수‧금, 다음 달은 화‧목‧토 이런 식으로 교대 근무한다. 그들은 하루 적게는 4시간, 많게는 10시간 넘게 일한다. 가장 바쁜 날은 화요일인데 주말에 쌓인 물건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김씨 할아버지는 화요일의 경우 저녁 10시까지 일하고 80~100개의 물건을 배달한다. 일이 많아 저녁을 거르는 날은 빵을 사서 일하는 도중 먹곤 한다. 나이가 들면 밥심이 필요하지만 바쁠 땐 시간이 돈이므로 빵을 택한다.

지난해 초 실버택배 일을 시작한 김씨 할아버지는 한 달에 월 40~50만 원 정도를 번다. 나이가 들어서도 돈을 벌어 가정에 보탬이 되는 것을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크기나 무게에 상관없이 물건 하나당 450원인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1시간 동안 10개를 옮기면 4500원. 최저임금인 6030원에 한참을 못 미치는 액수다.

   
 

오후 3시 무렵이 되자 물건을 경비실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됐다. 경비실 안에는 각종 짐이 쌓여갔다. 할아버지는 끝으로 장부에 택배 목록을 작성했다. 이날 물건을 26개가량 옮겨 하나당 450원으로 총 1만1700원을 벌었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을 손주한테 주는 일이 참 값지다고 생각해요.”

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했던 아버지. 이랬던 그가 이제 손자를 위해 돈을 버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노년의 노동은 고생이 아닌 ‘보람’이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물론 무거운 짐을 드는 건 늘 벅차고 힘들지만.

남은 시간 1시 30분, 남은 물건 10개. 경비실에서 나온 할아버지가 전동차에 올라탄 뒤 아파트 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비는 계속 내려 하늘은 흐렸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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