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플러스 사이즈 패션컬쳐 매거진 ‘66100’ 김지양 편집장

   
 

외모비하 쉽게 하는 사회 바로잡고 싶어
플러스 사이즈 관련 내용 비중있게 다뤄
자신의 아름다움 발견하는 프로젝트 진행
먹고 죄책감 갖는 것, 잘못된 식습관

‘무릎임신’했냐는 댓글 등 막말 신경 안 써
주근깨가 어때서? 미디어가 외모지상주의 조장
본연의 몸매일 뿐 게을러서 뚱뚱한 것 아냐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존중받아야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방송인 최화정이 지난 8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 고칼로리 디저트 요리를 먹으며 남긴 말이다. 이 말에 셰프들과 MC들은 환호를 보냈고 시청자들 역시 음식을 먹으며 따라할 만큼 큰 관심을 보였다.

과연 이 말이 화제가 됐던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을 먹으면서도 ‘먹으면 살 쪄’, ‘살찌면 못생겨져’, ‘예쁜 상태를 유지하려면 날씬해야 돼’ 등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실제 10~30대 한국 여성들 중 50%가 살찌는 두려움으로 인해 거식증과 폭식증 등의 섭식장애를 겪고 있다. 미혼남녀들 뿐 아니라 4~50대 중년 여성들 역시 나잇살 빼는 호르몬 다이어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처녀 시절의 날씬했던 몸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살이 찌는 걸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뚱뚱하면 정말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이러한 외모지상주의, 다이어트 만능주의가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나선 이가 있다. 바로 플러스 사이즈 패션컬쳐 매거진 ‘66100’의 김지양 편집장이다.

그녀는 한국 최초로 런웨이에 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2011년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어패럴’ 플러스 사이즈 모델 온라인 투표 부문에서 8위를 차지했으며 같은 해 ‘베네통 코리아’가 주최한 포토 콘테스트에서는 20위에 올랐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몸무게, 사이즈 등의 숫자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며 날씬하고 조각 같은 미모를 지닌 모델들이 당연히 등장할 것 같은 잡지에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을 담는다. 잡지 이름도 여자 기준 66사이즈 이상, 남자 기준 100사이즈 이상을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사회를 빗대 ‘66100’이라고 지었다.

본지는 비합리적인 미의 기준을 갖고 있는 현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지양 편집장을 만나봤다.

   
 

◆ ‘외모 비하’ 쉽게 하는 폭력적 세상에 충격

Q. 어떤 계기로 모델 활동을 하는 동시에 66100 편집장으로서의 역할까지 맡게 된 건지 궁금하다.

66100 편집장이 되기 전 ‘날씬하다고 다 예쁜 건 아냐’, ‘여자 개그우먼 중 못생겼는데 날씬한 사람도 있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뚱뚱함과 얼굴 생김새로 인해 사람이 너무 쉽게 비하의 대상이 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66100을 통해 폭력적인 세상을 비추고 폭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많은 사람들과 고민하고 싶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외모를 쉽게 비하하는 심각성을 담은 출판물 ‘66100’ 1호를 발행했다.

Q. 그렇다면 66100은 어떤 내용을 다루는 잡지인가.

잡지 본연의 의미에 맞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특히 플러스 사이즈와 관련된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성시경이 방송 중 고갯짓으로 다소 살집이 있는 작가를 가리켰던 일 등 남을 향해 비하하는 발언과 행동을 포착해 다룬다. 아울러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의미, 스스로를 긍정하라는 의미에서 섹시하다, 멋지다 등의 긍정적인 단어를 포함한 문구를 표지 뒤에 넣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No matter what you are fabulous(당신은 어떠한 순간에도 굉장하다)’라고 실었다.

Q. 66100의 주요 독자층은.

계간지로 500부를 발행하고 있는데 구독자 70%가 20~30대 여성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뚱뚱한 외모로 인해 상처를 받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바디이미지 캠페인을 통해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하고 외적 분위기가 바뀌기를 원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메이크 오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가 진행하는 메이크 오버 프로젝트는 ‘성형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비난이 일었던 프로그램 ‘렛미인’과는 다르다. 메이크 오버 프로젝트는 진작부터 외모를 꾸미는 것을 멀리하고 꾸미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켜버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을 꾸밀 수 있는 방법, 자신감을 더 불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이다.

   
▲ '66100' 2015 가을호

Q. ‘이노센트 플레져(innocent pleasure)’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어 그대로 해석하면 ‘순수한 쾌락’인데 어떤 활동을 하는 프로젝트인가.

맛있는 음식을 여러 사람과 정말 맛있게 먹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욕망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식욕을 해소하기는커녕 식이장애만 유발시킨다. 배가 고파 급하게 치킨을 먹을 때보다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치킨을 먹을 때 훨씬 덜 먹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즉 맛있는 걸 여러 사람과 진정으로 즐기며 먹을 때 식욕은 자연스레 해소되니 먹으면서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이노센트 플레져’를 통해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 게 잘못된 식습관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Q.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독자들 중 기억에 남는 이가 있나.

지난해 좋아하는 남자를 향한 고백에 성공하고 싶은 여성분이 메이크 오버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녀는 약간의 화장과 옷 스타일의 변화로 마치 모델같은 포스를 풍겼다. 177cm에 몸무게 80kg의 타고난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기도 했지만 약간의 변화를 통해 자신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는지 표정과 행동에 자신감이 실려 모델같은 포스를 풍길 수 있도록 변하게 된 것 같다. 그 이후로 그녀는 66100 메이크 오버 프로젝트 스태프로 합류해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몸매 감출 마음 없어… 패션 제한 없이 ‘당당하게’

Q.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모델이 되기 전 대학에서의 외식전공을 살려 한 회사에서 요리사로 근무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권고사직을 당했고 동시에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니 생활비도 끊겨 집안에서 인터넷 화면만 띄어 놓고 컴퓨터 앞에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시즌1’에서 도전자를 모집한다는 인터넷 배너광고를 보게 됐다. 뭐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됐고 그 이후로 모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한 끝에 미국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데뷔를 한 것이다. 솔직히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에 지원했을 때만 해도 꼭 모델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한 내 스케치북에 뭐라도 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마침 집어든 모델이라는 크레파스가 나에게 잘 맞아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모델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 같다. 벌써 모델 5년차다.

   
▲ ‘66100’ 쇼핑몰 사진

Q. 66100에서 플러스 사이즈들을 위한 쇼핑몰을 운영하며 직접 모델로도 서고 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서 살집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옷 스타일이 있는가.

몸매를 감추기 위한 옷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플러스 사이즈인 사람들 중 대부분이 예쁜 옷보다는 사이즈가 맞으면 일단 구입하는데 오히려 부해 보이는 네오플랜 소재의 옷들 중 예쁜 옷이 많아 자주 입는 편이다. 그래서 66100 쇼핑몰에서도 꼭 날씬해 보이는 옷만이 아닌 내가 입어도 예뻐 보이는 옷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맞는 옷을 구입해도 어디에 받쳐 입어야 할 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66100 자체 디자인 팀에서 원피스, 레깅스, 벨트 등 한 세트를 구성해 그에 맞게 옷을 제작하고 있다.

Q. 얼마 전 ‘무릎임신’을 했냐는 댓글에 무릎임신이 맞다고 맞장구치는 편집장님의 쿨한 대처법이 기사화되기도 했었다. 솔직히 상처받지 않는가.

모델하기 직전 아는 오빠에게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했더니 살부터 빼고 오라고 해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무릎임신’을 했냐는 댓글을 포함해 ‘돼지같다’ 등 악플 때문에 황당할 때가 가장 많지만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이제는 내 자신이 나를 사랑하고 아름답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다. 정말 도를 넘어선 내용의 말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 또한 나를 향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Q.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다이어트와 성형을 택한다. 날씬하고 조각같은 외모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Skinny’와 ‘Beautiful’이 동의어가 아닌것 처럼 날씬하다와 아름답다 역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또한 조각같은 외모가 아름다움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미디어가 날씬한 외모와 조각같은 외모만 곧 아름다운 거라고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얼마 전 방영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를 보면 악성 곱슬머리에 노메이크업이었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곱슬머리를 풀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나온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 악성 곱슬에 주근깨 있는 여자들이 전부 ‘그녀는 예뻤다’의 여주인공처럼 변신해야 하는 게 아닌데 마치 악성곱슬에 주근깨가 있으면 안되는 것처럼 표현됐기 때문이다. 또한 ‘숨막히는 뒷태’, ‘S라인’, ‘동안 외모’, ‘꿀벅지’, ‘나이를 잊은 외모’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미용 관련 광고 역시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생각된다.

Q. 뚱뚱해진 이유가 자기관리를 못하고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많다.

이와 같은 인식 또한 미디어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다. 미디어에서는 뚱뚱한 사람을 면박의 대상으로 여기고 게으른 사람으로 나타낸다. 주변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을 보면 너무 바빠 게으를 틈이 없다. 또한 우리나라도 서구적인 체형을 타고나 골격인 큰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갖고 태어난 본연의 몸매와 키를 비하하며 게으르다고 판단하는 건 잘못됐다.

Q. 아베크롬비 마이크 제프리스 사장이 ‘뚱뚱한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면 물을 흐린다’는 발언을 해 외모차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세상에는 미친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특히나 해당 발언이 더 지탄을 받았던 건 자유주의인 미국의 의류업체 사장이 말한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혐오자들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여성 혐오부터 다문화 가정 혐오 등 혐오 현상이 즐비하다.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

   
 

Q. 다이어트, 성형수술 등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잘못된 것인가.

다이어트를 하거나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을 말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미디어 속 누구처럼 되기 위해 따라하는 것은 자신이 진정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니다. 쉽게 얻어지는 건 쉽게 잃기 마련이다. 보톡스도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사라지고 눈썹 문신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보형물도 사람의 몸이 늙으면 그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내가 개인의 선택을 옳고 그르다며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모를 바꿔 인생이 화려해질 것을 기대하는 건 정상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본다.

Q. 편집장님은 다이어트를 하거나 외모를 바꿔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는가.

대학생 때 다이어트를 해 본 적이 있다. 먹는 걸 줄여 다이어트를 하기보다 운동으로 살을 빼려고 필라테스를 했는데 수업을 함께 받는 여성들 중 대다수는 운동을 하러 왔다기보다 운동복 자랑을 하러 온 것 같았다. 이로 인해 나 또한 운동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 이후부터는 뚱뚱한 사람들에게 너무 폭력적인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며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바쁘게 일하느라 자연스레 살이 빠지게 됐고 평상시에는 외모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피부 화장 없이 립스틱에 안경만 쓰고 다닌다. 매일같이 화장을 해 본인의 쌩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굳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Q. 외모에 대한 집착은 자존감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 전반적인 풍토 때문인 것일까.

중년들을 보면 누군가의 부모로 사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여자 혹은 남자로서의 삶에서 후퇴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도 여성성을 잃고 싶지 않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 보면 외모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욕망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을 기업들이 끊임없이 자극하니 단순히 예뻐지고 싶은 욕망을 넘어 과대한 집착이 되는 것 같다.

Q. 편집장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존재하는 건 다 아름답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 자존심이 없는 사람, 키 작은 사람 등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존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갖춘 아름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Q. 그렇다면 사람들의 더 예뻐지기 위한 노력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더 예뻐지기 위한 노력은 선물을 포장하는 마음과 같다. 포장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마음으로 준비한 선물을 더 정성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작업이다. 그러나 과한 포장은 필요없다. 상대는 선물 자체의 아름다움에 더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 

Q. 66100이 어떤 잡지가 되기를 바라며 세워둔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제일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안된다고 생각해서 안되는거다. 된다고 생각해도 절반이 될까 말까다”이다. 그 동안 노력으로 일군 66100의 성취율이 25% 정도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200% 일해 50%의 성취율을 기록하고 싶다. 혐오자들도 많고 기업들은 미용 용품을 못 팔아 안달이 난 한국사회에 살고 있지만 더 많은 프로젝트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바로잡힐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마련할 것이다. 66100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뚱뚱한 사람들만의 자기위안이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 또한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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