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교대 근무
“꼼지락거리며 물건 정리하는 것 재미있어”
김씨, 과도한 노동 탓에 ‘뇌경색’ 온 적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때론 마트 같기도, 시장 같기도, 음식점 같기도 한 그 곳.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물품이 가득한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본지는 지난달 24일 주말임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편의점 부부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과 손길이 오가는 편의점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진한 어둠이 깔린 새벽 6시 50분, 저 멀리서 김창석(가명‧62)씨가 보였다. 철컥, 입김을 뿜으며 인사하던 김씨는 이내 쪼그려 앉아 열쇠로 문을 열었다. 이날 서울은 15년 만에 온 한파로 곳곳이 꽁꽁 얼었다. 막 들어선 편의점 안은 마치 냉동창고 같았다.

지상 A역에 있는 B편의점. 이곳은 그의 소중한 일터다. 주말에는 매번 이 시간에 출근하고 평일은 새벽 6시에 문을 연다. 귀와 코끝이 빨개지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있던 김씨가 양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삶은 계란 하나 먹을래요?”

요즘 김씨는 핫팩 대신 따뜻한 삶은 계란을 주머니에 넣어 출근한다. 계란은 출근하는 40분 동안 따뜻한 손난로가 되었다가 식으면 맛있는 간식이 된다. 김씨와 기자는 딱딱한 계산대에 계란을 깨서 하나씩 나눠 먹었다. 여기에 목이 메지 않도록 원두커피를 내려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추위 때문인지 종이컵에 든 커피는 너무 빨리 식었다. 한참을 먹던 중 그가 온장고에 있는 캔커피 두 개를 꺼내 들고 만지작거렸다. 마시기 위함이 아니라 만지기 위한 용도였다. 뜨거운 캔의 기운이 그의 손끝에 오롯이 전해졌다.

“이런 추위를 느껴본 게 오랜만이네. 사람도 별로 안 다니고….”

김씨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출근해서 물품 정리와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평일에는 주문사항을 챙기고 배달된 물품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주말에는 물건이 오지 않아 한가한 편이다.

   
 

그는 과자와 우유, 음료 등을 손님이 집기 편하게, 비어 보이지 않게, 보기 좋게 진열했다. 계산대 뒤에 있는 창고에서 물품을 가져와 채워 넣기도 했다. 김씨는 꼼지락거리면서 물건 정리하는 게 재미있다며 이 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앉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손님이 올 때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것보단 계속 서 있는 게 낫기 때문이다.

김씨는 젊은 시절, 노는 게 어색하고 노는 방법을 모르는 ‘일벌레’였다. 굴지의 건설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하다가 퇴직해 낚시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1997년에 IMF를 만나 낚시가게를 접게 됐다. 이후 사우나에서 10년 정도 관리‧책임 일을 하다가 지난 2012년 편의점 일에 뛰어들었다. 지나온 삶에 대한 보상으로 휴식을 택할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노동은 가족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때는 두 사람이 일해 130여만 원을 벌고 여름에는 180만 원 정도를 번다.

   
 

김씨는 편의점 일을 하면서 2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한 달 내내 근무하면 영업 장려금 10만 원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분이 뇌경색이 온 원인일 수도 있겠다며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요즘은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아 한 달에 한 번은 쉰다. 일만 좇던 그가 생각을 바꾼 계기는 지난해 5월, 갑작스레 찾아온 뇌경색 때문이다. 어느 날 김씨는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아내와 전화를 하는데 아내는 그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맥주를 마셔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와의 대화가 자꾸만 끊기고 언어능력이 떨어졌다. 고왔던 피부가 겨울에 살이 트는 것처럼 거칠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이 뇌경색의 전조증상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내는 남편을 설득해 동네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김씨의 상태가 심각하다며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MRI를 찍고 정밀검사를 하니 혈관이 좁아진 상태라며 뇌경색 초기 단계라는 판정이 나왔다. 김씨는 현재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 약은 먹고 있지만 여전히 말은 느리고 어눌하다.

   
 

“일요일에 잠깐이라도 나가서 햇볕을 쬐세요.”

김씨의 아내 장은숙(가명‧54)씨가 그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6~7평 남짓의 좁은 편의점에 있는 남편이 안쓰러워서 하는 소리다. 계산대 앞의 공간은 전기라디에이터와 의자 하나만 두면 움직일 틈이 없을 정도로 협소하다.

일요일은 잠깐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날이다. 오늘 김씨는 평소 자주 가는 황학동 풍물시장에 다녀올 참이다. 만 원만 들고 가도 옷이나 선글라스 등을 살 수 있단다. 그는 소소한 물건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음악은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줘요.”

지루하고 답답한 노동 속에서 오아시스가 되는 건 바로 음악이다. 장르는 가리지 않고 다양한 노래를 듣는 편이다. 때론 지하철 소음이 잔잔한 음악감상에 방해가 되곤 한다. 그래도 오디오 전원은 꺼지는 법이 없다. 매장 안 스피커에선 그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가 ‘야니’의 곡이 흘러나왔다. 그는 팝페라 가수 ‘일디보’도 좋아하고 70~80년대를 주름잡던 포크 가수 故 김정호의 음악도 좋아한다. 29세에 생을 마감한 가수 배호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엄지를 치켜세웠다. “29살이 부른 노래라고는 안 느껴질 만큼 구슬퍼~”

오전 11시쯤이 되자 김씨는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집에서 싸온 선지해장국과 김치, 두부, 오징어조림, 멸치다. 새벽부터 이 시간까지 줄곧 커피만 마시다가 드디어 쌀을 먹는다.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는 ‘캠핑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는다.

   
 

문이 닫혀있는데도 벌어진 자동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왔다. 손님이 한 사람씩 들어설 때마다 바람은 화가 난 듯 편의점 안을 할퀴고 다녔다. 편의점에 들어서는 손님들도 “아이고, 추워”를 연발했다. 덕분에 온장고에 들어있는 따뜻한 음료가 아주 잘 팔렸다.

정오가 지나자 김씨는 아내 장은숙(가명‧54)씨와 근무를 교대했다. 요즘에 너무 피곤해서 잠이 잘 안 온다며 장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편의점 일을 비롯해 부업으로 회사 사무실 청소도 하기 때문이다. 입술 위에 핀 두툼한 물집과 충혈된 눈이 피곤함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저는 요일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지 않고 일하므로 주말에 대한 설렘은 없다. 이 얘기를 하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던 장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장씨를 눈물 나게 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진상 손님. 빵에 이물질이 들었다며 격하게 따지는 손님, 가격이 비싸다고 항의하는 손님 등이 있다. 동전이 모자라다며 물건값을 깎아달라는 손님을 만날 때도 고역이다. 예전에 한 손님은 600원짜리 라이터를 보고 “다른 곳은 500원에 팔던데”라며 500원을 던지고 가기도 했다. 은근슬쩍 반말하거나 돈을 계산대 위에 던지는 경우도 있다. 돈을 손에서 손으로 주고 받는 것. 남편 김씨의 작은 소망이다.

   
 

장씨가 가장 서러웠던 기억은 한 여성 손님에게 무시를 당했을 때다. 그 여성은 껌 하나를 고르고 난 뒤 계산대 위에 5만 원을 던지며 “이거 바꿔줄 잔돈은 있나?”라고 했다. 자신을 얕잡아보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그냥 웃어넘겨야 했다. 간혹 짓궂은 아저씨 중에서 돈을 건네며 일부러 손을 잡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참아야 한다.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애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그래도 “고생한다”고 상냥하게 말하며 웃어주는 손님도 많다.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은 진열된 물건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하다.

   
 

해가 넘어가기 전 풍물시장에 갔던 김씨가 돌아왔다. 한손에는 아내를 주려고 사온 찹쌀도넛이 들려있었다. 김씨는 아내에게 빨리 집에 들어가라며 재촉했다. 그 성화에 못이겨 장씨는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퇴근 준비를 했다.

김씨 홀로 계산 노동을 반복하던 늦은 밤, 기자는 밖으로 나가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 왔다. 그는 퇴근 후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도착하면 자정이 된단다. 그때까지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김씨는 이 시간만 되면 출출해진다. 그러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어묵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종이컵에 든 어묵 국물 위로 웃음꽃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오후 10시. 딸깍, 문을 잠그는 소리가 하루 노동의 끝을 알렸다. 집으로 향하는 김씨 옆으로 지하철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다. 쉼 없이 질주하는 지하철을 보며 쉼 없는 편의점 노동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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