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시행 초창기 의구심 품었던 정치권
이제는 거대한 태풍돼 한반도 덮치고 있어
젊은 층, 필리버스터 일종의 놀이문화로 인식
필리버스터 통한 야당 이미지 개선, 총선에선 과연


솔직히 필리버스터가 실시될 때만 해도 정치권에서는 긴가민가했다. 3월 10일까지 과연 끌고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또한 세간의 관심이 얼마나 집중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각종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미친 드립력(인터넷 댓글 중에 유저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댓글)’도 나왔다.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 접속은 평일 오후에도 2만명이 넘을 정도였다. 필리버스터 연설에 참석한 한 의원의 말 한 마디에 새누리당 홈페이지가 다운이 될 정도였다. 그만큼 필리버스터가 젊은 층에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정의화 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항의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은 필리버스터 제도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른바 무제한 토론이다. 국회 본의에 법안이 상정되면 토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 여야 합의로 법안이 올라오기 때문에 토론이 거의 생략이 된다. 하지만 민감한 특히 여야의 시각이 완전히 다른 법안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기 전인 18대 국회까지 집권여당은 날치기 통과를 시도했고, 야당은 이를 막기 위해 단상을 점거하는 등 소위 ‘동물국회’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폭력으로 얼룩졌다. 일부 의원은 본회의장 단상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면서 이제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집권여당이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를 시도하려고 하면 야당이 사용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바로 필리버스터이다. 필리버스터는 무제한 토론으로 번역된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시간을 두지 않고 토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박정희 정권 때에 사라졌던 필리버스터가 2012년 이후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를 발동하기도 했다. 그런 필리버스터가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으로 인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마국텔 부흥회

솔직히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정치권 안팎에서는 긴가민가했다. 왜냐하면 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시점이 3월 10일까지이다. 그야말로 시간이 너무 길다. 테러방지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3월 10일까지 무제한 토론이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야당 의원들이라고 해도 총선에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한 과연 얼마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겠느냐는 것이다. 즉, 필리버스터에 대한 역풍을 우려했다. 또 박근혜정부와 집권여당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의 여론이 나올 것이라는 걱정을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필리버스터를 실시하겠다고 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충분히 끌고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호언장담이 있을 때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냥 허풍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국민의당(문병호 의원 혼자이지만)도 합류를 하고 정의당도 합류를 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그 원동력은 네티즌이었다. 20~30대 청년들이 필리버스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처음 접해본 청년들이 필리버스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는 의원들이 그야말로 준비를 철저히 해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루한 연설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보기 좋게 날려버릴 정도로 내용이 알찼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내용만 토론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의원들이 철저히 준비를 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동화책도 읽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내용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다보니 세부적인 내용까지 철저하게 찾아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이에 헌법부터 시작해서 테러방지법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법적 지식이 동원됐다. 아울러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물론 국가정보원의 역사까지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지식이 동원됐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침착하게 토론에 임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필리버스터에 돌리게 만들었다.

별풍선 대신 후원금

실제로 지난 25일 오후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사이트의 동시접속자 숫자가 2만5000명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것이 이날 기록이 최고기록이 아니라 평소 평균 기록이라는 것이다. 즉, 그만큼 필리버스터를 바라보는 눈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에는 인기검색어에 계속적으로 필리버스터와 관련된 내용이 꾸준하게 올라오고 있다. 필리버스터가 어느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은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의 공약이었다라면서 새누리당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하길 바란다는 말 한 마디를 하자마자 몇분 되지 않아서 새누리당 홈페이지가 다운이 됐다. 그만큼 상당히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추천하는 도서 역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필리버스터 참여 의원들이 추천하는 도서 목록’이 나돌고 있고, 이 도서를 구매했다는 글들이 속속 발견이 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는 의원들에게 후원을 했다는 글들 역시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우스개 소리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원금이 상당히 많이 들어오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리버스터를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국텔’이라는 말이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리비전’을 빗대서 필리버스터를 ‘마이국회텔레비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에서 인기 있는 BJ에게 ‘별풍선’을 쏘듯이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쏘고 있다. 또한 필리버스터 참여 의원들이 인문학, 철학, 자연과학은 물론 각종 학문이 총동원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는 ‘강연이 시작됐다’, ‘오늘은 무슨 강연을 보여주려나’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또한 필리버스터 의원들의 팬아트가 올라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토론할 때는 목소리가 흡사 ‘목사님’을 닮았다면서 ‘여의도부흥회’ 같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에서는 곳곳에서 ‘아멘’, ‘믿습니다’ 식의 농담 아닌 농담이 나도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는게 제일 좋아

일부 사람들은 필리버스터를 흡사 ‘축제’라고 표현을 했다. 젊은 층은 필리버스터를 일종의 놀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과거 정치참여는 그야말로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젊은 층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정치를 일종의 놀이쯤으로 생각하면서 관심을 서서히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진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젊은 층의 이런 반응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딱딱하고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 평가를 갖고 있다. 또한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이처럼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정치를 일종의 놀이쯤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야당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야당은 ‘정부와 집권여당의 발목을 잡는’ 존재쯤으로 인식을 했는데 왜 필리버스터를 할 수밖에 없었고, 왜 야당은 테러방지법안을 수정하고자 하는 것인지 인지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부 국민은 그것을 넘어 다른 법안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올해 총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필리버스터로 인해 야당의 이미지가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리버스터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그만큼 세간의 관심이 필리버스터에 쏠리면서 동반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필리버스터가 젊은 층 특히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젊은 층에게 일종의 놀이문화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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