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근래에 교육의 병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가령 최근에 모 대학 교수가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지식과 인격의 측면에서 학생들을 바로 인도해야 할 선생의 역할에 한참 미달한 상황인 것이다. 명문대학 학생들이 과잠(대학교나 학과 야구점퍼)을 널리 애용하는 현상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학벌부심의 징후로 이해되는 것도 딱히 부당하다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대학교는 스스로 취업학원으로 전락시키고 바른 배움의 토대를 허물어버리는 실정이다.

교양과 인성의 분리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면, 앎과 삶의 사이에 거대한 분리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와 교사가 이렇게 전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은 교양과 인성이 완전히 분열된 지금의 상황을 반영한다. 교육이 생존과 나아가 성공의 디딤돌로 이해되면, 머리로 배우는 학(學)과 몸으로 익히는 습(習)이 분리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 학과 습이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 온전한 학습의 개념이 학교와 교육에 다시금 회복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비교적 근래에 발표된 논문 한 편을 찾아 읽었다. 교양교육과 인성교육의 분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것인데, 그 분리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자본주의와 유물론적 과학, 그리고 합리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지성사적으로 볼 때에 타당하고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제시된 원인이 너무 크고 너무 넓다. 끝이 너무 뭉툭해서 정확하게 찌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교양과 인성이 분리된 직접적 원인이 무엇일까? 어쩌면 대상이 명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의 경우에 한정지어 살펴보자. 아마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이 중요한 결절(結節)들로 작용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몸부림이 우리를 괴물로 만들었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살펴보자.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IMF 이후 적극적으로 국내에 도입된 신자유주의의 전횡이다.

교육의 시장화

물론 신자유주의 또한 크고 넓은 개념이다. 하지만 이를 시장중심주의, 즉 국가와 모든 영역의 시장화를 추구하는 사조로 받아들인다면, 좀 더 구체화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에 교육의 시장화가 적극적으로 진행된 것이 분리의 직접적 원인이다. 사람을 인적자원(人的資源)으로 이해하게 됐다.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2001-2008)로 개편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담론의 측면에서 보면, 이제 교육학은 경제학과 경영학에 잠식되고 말았다.

요즘 청년들은 취업에 필요하다면 영혼도 매각할 태세다. 어디까지나 살아남기 위해서다. 실제로 굶어죽는 작가도 있고, 팔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되자 동반자살을 택한 가족도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인성을 자본주의 고유의 시장 시스템에 부합하는 양태로 재구성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는 21세기에 들어와 새롭게 부각된 현상이다. 시대적 흐름이 달라진 것이고, 사회 구조가 변화된 것이다. 그저 개인의 윤리 문제로 환원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교육 현실에 대한 재고(再考)는 곧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돼야 한다. 학교는 우리 사회를 압축적으로 재현할 따름이다. 구글은 2001년부터 인공지능에 33조를 투자했다. 수익의 절반을 여기에 쏟아 부은 셈이다. 그러나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흥행으로 인해 구글 시가총액이 58조원 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쉽게 부화뇌동하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해야 교육과 학교의 비정상화가 해소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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