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정보처리 수준 넘어 전문영역까지 점령
일본서 AI가 쓴 소설 문학상 1차 전형 통과
활용범위·법·제도·윤리적 문제 해결 관건

【투데이신문 한정욱 기자】최근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인류와 기계(인공지능) 간 자존심 대결을 넘어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진화하고 앞으로 인간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알파고의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많은 이의 예상을 뒤엎고 1~3, 5국에서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을 제압,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는 1202개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가 미리 입력된 기보를 ‘딥 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 결과였다. 인간이 평생 소화하지 못할 양(프로기사 기보 16만 개)을 알파고는 5주 만에 완벽하게 습득했다. 과거 체스(IBM ‘딥블루’, 1997)와 퀴즈쇼(IBM ‘왓슨’, 2011)에서 인간을 상대로 승리했던 때보다 훨씬 더 진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진화가 앞으로 인간 삶의 모습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문영역 뿐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직관, 창의성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에서 활용 범위와 관련 법·제도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아 여러 우려들도 나오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문 영역까지 넘보는 AI

국내 경제지 파이낸셜뉴스의 로봇기자는 지난 1월 21일부터 매일 한 꼭지씩 기사를 쓰고 있다. 바이라인(기사 작성자)은 ‘iamFNBOT’으로 돼 있다. 서울대 이준환·서봉원 교수팀이 개발한 기사 작성 알고리즘 로봇이 실시간으로 작성한 것이다.

AP, 로이터 등 글로벌 뉴스통신사들도 인공지능을 이용해 스포츠·금융 등 속보와 단신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미국 LA 타임즈는 지진 정보를 자동 수집하는 ‘퀘이크봇’을 통해 실시간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영국 가디언이 발행하는 주간지는 로봇이 편집한다.

IBM 인공지능 ‘왓슨’은 세계 최고 권위 MD앤더슨 암센터에 도입돼 사용되고 있다. 진단 정확도가 무려 82.6%에 달한다. 왓슨이 탑재된 로봇 변호사 ‘로스'는 음성을 인식해 판례와 승소 확률 등을 알려준다.

미국 법률 자문회사 로스인텔리전스는 왓슨을 기반으로 한 대화형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초에 80조 번 연산하고, 책 100만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분석한다.

아마존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이 물건을 나르는 등 사람이 하는 유통 과정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분석 인공지능 프로그램 ‘켄쇼’를 도입했다. 영국은 무인 트럭 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 5개 대학병원에서 도입한 약사 로봇은 35만 건을 조제하는 동안 실수가 1건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단순 노무직뿐만 아니라 언론, 금융, 의료, 법조 등 전문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창작 영역마저 침범한 AI

그동안 인간을 직접 대면하거나 감성·창의성·직관이 개입해야 하는 업무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제 이조차도 인공지능에게 내줘야 할 형편이다.

지난 21일 NHK, 아사히 신문 등은 일본의 대표적인 SF작가 고(故) 호시 신이치를 기념하는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응모해 1차 전형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인 ‘창작’ 영역도 인공지능이 손길을 뻗은 것이다.

하코다테 미라이 대학의 마쓰바라 진 교수는 지난해 9월 인공지능이 쓴 소설 네 작품은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 응모했다. 4편 모두 수상작으로 선출되지는 못했지만 그 중 1편 이상이 1차 전형을 통과한 것이다.

AI가 쓴 소설의 서두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날은 구름이 드리운 우울한 날이었다. 방 안은 언제나처럼 최적의 온도와 습도. 요코씨는 씻지도 않은 채 카우치에 앉아 시시한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이는 어느 소설가가 썼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다. AI가 창작의 영역을 지배하는 건 시간문제가 돼버린 셈이다.

마쓰바라 교수는 “1차 전형을 통과한 것만 해도 쾌거”라면서도 “현 시점에서는 소설을 쓰는데 인공지능이 20%, 인간이 80%의 기여를 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현재 인공지능에서는 아직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응모작에 사용된 인공지능을 개발한 나고야대학 사토 사토시 교수는 “인공지능이 100% 소설을 쓰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수천자에 이르는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이다”라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2년 후 인공지능이 소설을 써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소설 뿐 아니라 작곡에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곡조’나 ‘곡의 길이’ 등을 입력하면 자동적으로 작곡을 하는 인공지능이 일본의 대학과 미국 기업에 의해서 개발되고 있으며,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도 개발되고 있다.

   
 

핑크빛 or 회색빛…인간 손에 달려

미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 줄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과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란 회색빛 전망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영국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간을 뛰어넘는 완전한 인공지능 개발이 인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 100년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조작하고, 인간이 알지 못하는 무기로 인간을 정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군사용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우려가 크다. 일런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에 대해 “우리는 악마를 소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창업자는 “인공지능 무기가 발전하면 화학, 핵무기에 이은 ‘제3의 전쟁 혁명’이 될 수 있다”며 군사적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협약 마련을 촉구했다.

반면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인공지능은 사람의 일자리를 뺏기보다는 업무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자전거가 처음 나왔을 때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다 다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한다”며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인공지능 발전을 두려워한다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겠다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래는 인간이 인공지능의 활용범위와 책임 문제, 윤리적 문제 등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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