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 저자 EBS 김민태PD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2014년 1월 어느 날, 한 남자는 평소와 달리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서 출근했다. 15분 동안 걸었을 뿐인데 몸이 가뿐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걷기의 신비로움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감동을 공유하고자 이듬해 ‘15분 걷기’라는 주제로 <허핑턴 포스트>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글은 빠르게 인기를 모았고 한달 뒤 출간 제안까지 받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위인의 성공담을 접하며 소소한 시작과 작은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퍼즐 조각이 모여 크고 멋진 그림이 완성됐다. 원고를 쓴 지 1년 만에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책의 저자는 바로 EBS 김민태PD다.

2002년 EBS에 입사한 김민태PD는 맡은 작품마다 상복이 따르는 유능한 프로듀서다. 2007년 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대의 초상>으로 ‘한국PD대상 실험정신상’을 받았고 그 외 각종 작품에서 상을 휩쓸었다. 올해부터는 방향을 틀어 현재 <EBS육아학교> 모바일공동사업팀에서 총괄프로듀서로 활약 중이다.

김민태PD는 책을 통해 거창한 도전이나 목표보다 사소한 시작과 행동을 응원한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스스로 해낸 기억은 오래간다”며 자존감의 특효약은 작은 성공에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겪은 기적 같은 경험을 비롯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관한 조언도 전한다.

사람을 만나 밥 한 끼를 먹는 일,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걷는 일,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일까지…. 소소하고 평범한 일이 곧 대단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 16일, 서울 매봉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김민태PD를 만났다. 결과나 목표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딱 한 번만 해보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라.

   
 

Q. 단독으로 낸 책으로는 두 번째다. 소감이 어떤가.
: 지금껏 공저를 비롯해 책을 두 권 냈는데 이번에는 더 기분이 좋다(웃음). 물론 첫 번째 책 <일생의 일>을 쓸 때도 기분 좋게 작업했다. 당시 책은 석 달 만에 완성했는데 이번에는 1년 정도 걸렸다. 근무 외 시간을 이용해 썼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를 쓰면서 사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위인전을 비롯해 여러 책을 읽거나 알 만한 이들의 이야기도 살펴봤다. 이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메시지가 과연 보편적인지 확인해나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Q. 자료 조사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을 듯하다.
: 그렇다. 조사단계가 조금 힘들었다. 조사를 위해 책을 많이 읽었고 주말에는 아예 약속을 잡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책을 일주일에 한 권에서 두 권 정도 읽었다. 책을 보며 작은 성공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았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평전을 읽으면서 그 사례를 찾곤 했다. 만약 잘 보이지 않으면 다른 책을 찾기도 했고.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Q. 올해부터 <EBS 육아학교>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 라이브방송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소개해달라.
: 보통 방송사에서는 정보 콘텐츠를 지상파 중심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요즘 방송사의 화두는 인터넷, 앱 등 다른 수단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1월부터 부모 교육이나 육아 정보에 대한 인터넷 라이브방송,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총괄 프로듀서 일을 맡고 있다.

Q. PD님에게 사람과의 만남은 어떤 의미인가.
: 배우자를 만날 때도 끌려서 만나는 것이지 기획해서 만나진 않는다. 일 역시 그런 것 같다. 구직 활동을 해서 취업을 하는 것, 직장 생활하는 과정도 우연의 연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좋은 우연이 많았는데 그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는 자신의 역할도 중요하다. 본인이 먼저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면 기회가 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때는 몰랐지만 (작은 일이) 5년 정도 지나고 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해석이 됐다. 좋은 경험을 하고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러면 또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어진다랄까. 시간이 널럴해서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바쁜 와중에 하는 만남이 훨씬 적극적 기대를 갖게 하더라. 새로운 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기분이 좋아진 경험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그 만남이 단순한 ‘기분 좋음’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적으로 퍼지거나 내가 하는 업무와 연결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투자이기도 한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나는 참 재미있다. 사람이 시간의 압박을 많이 받으면 기회가 잘 안 열린다. 기회의 본질은 만남이다. 뭔가를 이룬 사람들은 항상 만남을 갖고 사람을 많이 만나면 기회가 많아진다. 만남 역시도 성공 경험을 쌓다 보면,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태도로 바뀐다.

Q. 본인의 성격이 어떠하다고 생각하나.
: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에게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어 단정 짓기는 어렵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좀 강했는데 대학에 와서 성격이 바뀌더니 갈수록 외향적으로 변하더라. 

Q. 그럼 사람과의 만남을 어려워하는 이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 사람과의 만남이 어렵다면 먼저 가까운 사람과 밥 먹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후 덜 가까운 사람과 밥을 먹어보라. 밥 먹기는 참 중요한데, 일단 밥을 먹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예를 들어 회사 안에서 어색한 사람과 밥을 한번 먹거나 밥을 사면 다르다. 불편한 관계가 개선된다.

물론 밥 먹는 내내 불편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자주 밥을 먹으며 만남을 가지다 보면 노하우도 생기고 두려워했던 것보다 별일이 안 생긴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다. 혹은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거나 무능한 줄 알았던 선배와 밥을 먹으면 ‘아, 이 선배가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구나’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Q. 책을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하루 습관 중에서 ‘천천히 걷기’가 많다고 하더라. 피디님만의 하루에 행하는 작은 실천은 무엇인가.
: 보편적으로 많이 했던 게 지하철역까지 걷는 것이다. 한 30분 정도 걸리는 듯하다. 한 정거장만 일찍 내려서 걸어보길 추천한다. 15분 정도만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신경심장학적으로 보면 심장이 제2의 뇌라고 한다. 운동을 하면 심장이 좋아지고 그러면 자연스레 머리까지 좋아진단다. 결국, 걷기가 창의성이 열리기 좋은 토양이 되는 것이다.

걸으면 소화가 잘되고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른다. 창의성의 토양이 되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걷기는 정말 좋다. 아울러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에게는 마치 샤워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 목표를 너무 의식화하면 재미가 없고 한 시간 걷기는 힘드니까 10분 정도만 걸어보길 바란다.

   
 

Q. 피디님 생각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롤모델은 누구인가. 책을 보면 ‘스티브잡스’를 많이 언급하시던데.
: 스티브잡스는 나에게 ‘점(경험)의 연결’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는 2005년 스탠포드 연설에서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점(경험)은 미래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책을 쓸 때 이 연설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한반도의 공룡>을 제작한 한상호 피디님, <다큐프라임>의 전체를 설계한 김유열 피디님이 나의 멘토다. 이분들과의 저녁 식사는 마치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것과 같다(웃음). 밥을 먹으면서 그들의 축적된 경험을 생생하게 듣는데 제작 기획이나 기법 등을 배운다.

그 분들은 실행에 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로만 떠들고 끝난 게 아니라 자기가 소망하는 것을 실행했다. 예를 들면 <다큐프라임>은 EBS의 지상파 영향력을 높인 일등공신이다. 아마 당시에는 몰랐으리라. 편성표에 한 줄을 넣은 것이었겠지만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성과를) 보여주고 인정받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안다. <다큐프라임>이 시작되고 1년 정도까지만 해도 논란이 있었다. 과잉투자가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마찰이나 두려움이 있어도 감수해야 한다. 뭐든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없다.

아이디어를 확인받는 과정은 밥 먹을 때 일어난다. 그 과정이 껄끄러운 사람도 있겠지만 결과치는 위대하다.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 근주자적(近朱者赤·붉은 빛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뜻)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본받고 싶은 이에게 가까이 가서 얘기를 들으면 닮고 싶어진다.

Q. 사람이 연속적으로 실패 경험을 하면 무기력에 빠지지 않나. ‘작은 행동’ 조차도 실패해 무기력에 빠질 수 있을 텐데 이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 무기력은 실패 경험이 누적됐을 때 찾아온다. 한 두번 시도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은 무기력이 체화된 것이다. 작은 시도를 하고 실현한 맛을 본 사람들은 ‘무기력’이 들어갈 틈이 없다. ‘또 하면 되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위 말해 멘탈(정신력)이 강해진다. 이처럼 작은 실천은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우리는 외재적 동기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고 자란 세대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멘탈이 약한데 교육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듯하다. 그래도 20대 이후는 교육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40살이 되면 직장인으로서 시켜야만 일을 하고 잘 보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이득이 되는 듯하지만 그리 살면 재미가 없다. 최소한의 일만 하고 사는 것이 별로 부럽지 않더라.

일단 무기력한 사람들은 표정이 명랑하지 않다. 새로운 게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이라는 게 당시엔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모른다. 그만큼 자기를 아는 게 정말 힘들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을 지어선 안 된다.

무기력에 빠진 이들에게는 강연에 참석하거나 책을 보길 추천한다. 독서량이 풍부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은 쉽게 구별된다. 책을 읽을 때 지루한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참고 한 권을 다 읽으면 성취감이 밀려올 것이다. 나는 요즘 좋은 책을 읽으면 줄을 쳐서 정리하거나 필사를 한다. 한 해에 한 66권 정도 필사한 것 같다. 좋은 콘텐츠를 보면 메시지가 남는데 그 맛을 보길 바란다.

Q. 책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일부 젊은이 중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 ‘복지만 좋은 회사’, ‘돈만 많이 주는 일’을 좇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바라보는 피디님의 생각은 어떤가.
: 매슬로(Maslow)의 욕구 5단계를 보면 첫 단계가 생리적 욕구다. 이어 안전, 관계, 인정, 자아실현 욕구로 이뤄진다. 아래단계를 해결해야 위로 갈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청년실업 관점에서 보면 공포스러운 일이다. 취업이 안 되면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공포스럽고 불안감이 커진다. (취업이 힘든 상황에서) ‘묻지 마 취업’ 등을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겠다. 그런데도 꿈만 가지라는 건 사치인 듯하다.

물론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갖는 건 중요하다. 직업적 안정성과 적성은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나.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직장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하루에 10분 정도만이라도 투자해보라고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Q. 요즘 청년들이 어려운 집안 환경, 이른바 ‘흙수저’라는 이유로 꿈을 찾기 힘들어한다. 즉, 주변 환경 때문에 점(작은 행동)이 연결(기회)돼 결과(성공)로 가기에 쉽지 않은 듯하다. 좌절하거나 꿈을 포기하는 청춘에 한 말씀해주신다면?
: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이 이루고 있는 총체는 능력과 노력이다. 함수로 따져볼 때 X가 가정환경, 출신학교일 텐데 X가 작으면 Y를 키워야 한다. 머리가 나쁠 수 있고 좋은 학교에 못 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부분에만 집중하면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른 노력, 즉 Y를 통해 목표치를 잡고 나가야 한다.

Q. 자신의 계획 그리고 꿈이 궁금하다. 
: 계획이라기보다 현재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게 무엇인지 계속 찾고 거기에 충실하고 싶다. 갑자기 뭔가 느닷없는 아이디어가 사람을 통해 튀어나오는 것이 날 즐겁게 한다. 이를 지난 3년간 느꼈기에 앞으로 이런 경험을 더 쌓아가고 싶다. 예전에는 친구들이 “저녁에 뭐 해?”라고 하면 “왜?”라고 묻곤 했는데 이제는 그 말을 붙이지 않고 그냥 만난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할 때 자세하게 묻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Q.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사람들과 만나서 밥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을 만나 밥을 먹으면 운명이 바뀐다. “원하는 걸 하세요”, “작은 것부터 하세요”라고 말하는 건 잘 안 와닿지 않나(웃음). 인간관계에서 가장 쉬운 일은 가까운 사람과 만나서 밥을 두 번 먹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차를 마시거나 그냥 만나도 좋다. 그런데 밥을 많이 먹다 보면 아이디어가 넘치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우리는 매일 식사를 하지만 밥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넓히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기계적으로 만나서 돈을 나눠서 내지 말고 가끔 내보기도 하라. 가장 한번 하기 쉬운 게 밥이다. 잘 모르겠으면 밥을 먹는 것부터 시작하라. 식사는 만남이며 만남은 곧 기회의 본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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