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 25일, 서울 면목동에 자리한 N병원을 찾아 작업치료사의 노동을 밀착 취재했다. 환자와 함께 호흡하는 작업치료사의 하루를 아래에 담았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N병원의 엘리베이터는 이른 아침부터 휠체어를 탄 환자로 북적였다.

기자는 재활센터로 가기 위해 7층 버튼을 눌렀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가 공존하는 엘리베이터의 풍경은 여느 병원과 다름이 없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복도 곳곳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속에서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작업치료사 이준수(35)씨가 환한 얼굴로 기자를 반겼다.

그는 월요일~금요일, 오전 8시 30분에서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하고 토요일은 격주로 오전 근무를 한다. 이날 아침에는 일주일에 한번 진행하는 전체치료사 회의가 잡혀 있었다. 이씨는 10분가량 회의를 마친 뒤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먼저 한 여성 환자가 연하재활을 하고자 치료실로 들어섰다. 연하재활이란 삼킴유도 치료를 의미한다. 치료사가 안면 마사지와 구강 움직임을 유도해 환자의 음식물 삼킴이 원활하도록 돕는 것. 보통 뇌졸중을 겪으면 삼킴을 관장하는 근육이 마비되는 경우가 있다.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장갑을 낀 이씨는 휠체어에 앉은 환자와 마주했다. 먼저 환자의 목 주변에 연하재활 전기자극 치료기 패드를 붙인 후 손으로 이곳 저곳을 만졌다. 특히 인중 부분에 마사지를 집중하는 듯했다.

   
 

재활치료는 크게 운동(신체기능), 작업(연하·일상생활), 통증(물리치료) 등 여러 범위로 나뉜다. 이씨가 담당하는 치료 대상자는 뇌졸중이나 척수 손상과 같은 중추신경계 환자가 대부분이다. 치료는 처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0분 정도 실시한다.

대부분 환자의 마음에는 우울증을 비롯해 ‘언제쯤 나을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과 초조함,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게다가 일상의 불편함, 경제적 부담, 가족에 대한 미안함까지…. 환자들은 가슴에 말 못할 응어리를 조금씩 품고 있다.

몸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영구적 장애를 지닌 환자는 심적으로 더욱 힘들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애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고. 이 때문에 치료사에게 무조건 걷게 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아픈 몸으로 지친 마음으로 하루하루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환자. 그런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는 게 작업치료사의 역할이기도 하다.

환자 A(58‧남)씨가 일상생활 동작실에 들어섰다. 이곳은 휠체어에 몸을 싣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의 움직임을 연습하고 치료하는 장소다. 치료사는 푹신한 파란색 매트 위에서 환자의 자세를 바꾸며 마사지를 하거나 운동을 돕는다.

   
 

“17, 18, 19…. 조금 더, 더, 더”
“몸이 너무 나가네요. 오케이~”
“자, 해보죠. 30번, 스타트!”

이씨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선수의 스트레칭을 돕는 코치 같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갈수록 움직이던 A씨의 신음은 커져갔다.

A씨는 약 3년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아왔다. 장애가 오기 전에는 턱걸이나 야구 같은 운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토록 좋아하던 야구를 할 수 없지만 좌절하지 않고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A씨가 통증을 참으며 재활 운동을 하는 이유는 휠체어를 안전하게 옮겨 타기 위함이다. A씨처럼 척수 장애 환자의 목표는 주로 일상생활에 초점이 맞춰있다. 일단 휠체어를 탈 수 있어야 기본 생활이 가능하므로 이 훈련은 필수다. 휠체어로 몸을 옮기는 A씨를 바라보던 이씨가 고개를 강하게 내저었다.

“이렇게 하시면 빵점이에요! 위험해요. 여기 잡으시면 휠체어가 밀려나요”

   
 

이씨는 A씨에게 자세와 손동작을 바로 잡아주며 안정된 자세를 가르쳐줬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쉬운 행위지만 척수 장애인에게는 이루고 싶은 목표다.

휠체어를 쉽게 타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어깨 근력을 비롯해 손과 팔의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기술을 습득해야만 넘어지는 사고가 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이씨는 6층 작업치료실을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이어 B(60‧남)씨와 재활 운동을 시작했다. B씨는 지난해 겨울,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의료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왔다. 허리를 치료하고자 찾아간 C병원에서 수술을 한 뒤부터 다리를 못 쓰게 됐다고 한다.

B씨는 병원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갔다가 휠체어를 타고 나오게 된 현실을 한탄하며 울분을 쏟아냈다. 하반신 마비 이후 여러 병원에 다니다가 1년 전부터 N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현재 C병원을 상대로 의료 소송을 준비 중이다.

   
 

작업치료사는 환자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인지 이씨의 시선은 환자의 몸을 향해 있었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힘을 주며 운동을 도왔다.

B씨는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면서도 운동에 온전히 집중했다. 이씨는 자세를 교정하며 허리를 잡아주거나 적절한 시점에 휴식을 권했다. 운동이 끝나고 땀을 닦던 B씨는 “선생님이 시원하고 개운하게 치료를 잘해주세요”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씨는 칼국수로 식사를 해결했다. 조금 빨리 식사를 한 뒤 휴식을 취하고,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30분 정도 달콤한 휴식을 맛보았다.

“선생님, 연습을 매일 하는데 안 늘어요”
“그래도 매일 하세요. 늘 거예요!”

이씨는 환자의 푸념에도 짜증 내지 않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치료에 있어서 무엇보다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치료실에 자신을 ‘엄살쟁이’라고 칭하는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이 할아버지는 편마비가 와서 보행치료와 함께 손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편마비의 경우 초기 재활(3개월 이내)이 중요한데 그 시기를 놓치면 관절 근육이 뻣뻣해지므로 관절 운동은 필수다. 이날은 손으로 나뭇조각처럼 생긴 페그보드를 집어 제자리에 옮기는 치료를 실시했다.

할아버지가 자꾸 페그보드를 놓치며 통증을 호소하자 이씨는 할아버지의 어깨와 손을 계속 마사지했다. 그는 환자의 몸에서 전해지는 떨림으로 힘든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워낙 오래 일하다 보니 이제는 표정만 봐도 몸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치료를 마친 할아버지는 “선생님 덕분에 손가락이 꼬부라져요. 얼마나 좋아요”라고 말하며 신기하다는 듯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였다. 이씨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씨가 작업치료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봉사 점수를 얻기 위해 방문한 요양원에서 자폐아동과 뇌성마비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눈여겨본 한 작업치료사가 그에게 이쪽 일을 권했다.

이를 계기로 작업치료사가 되어 일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자신의 손을 스쳐 간 환자가 1000명도 넘는단다.

오랜 시간 일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이씨는 환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나아진 게 없다”, “오래 치료해서 해이해진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 서운하다고 고백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치료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도 한다.

종종 치료사에게 소리를 지르는 환자도 있는데 그럴 때는 자리를 뜬 뒤 돌아와 환자를 달랜다. 어찌 보면 작업치료사가 감정노동자에 속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리라.

작업치료사들은 관절이나 근육을 많이 쓰므로 근골계가 취약하다. 일부 동료들 역시 손목이나 허리, 근육 등에 통증을 호소한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괜찮지만 이씨 역시 근무 초창기에는 몸이 아팠다.

간혹 치료를 하다가 아프다며 치료사의 손가락을 비트는 환자도 있다. 이런 점이 그가 온종일 양 손목에 보호대를 착용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울상 짓는 날보다 웃음 짓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재활 치료를 잘 받고 상태가 나아져 “직장을 구했다”,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연락이 올 때가 제일 뿌듯하다고 이씨는 말했다. 치료해줬던 환자가 병원을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초기 뇌졸중 환자(3~4개월)가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질 때도 보람을 느낀다.

환자 김옥희(71)씨는 “운동을 하다가 아프다는 이유로 선생님을 때리는 환자도 있다”며 “얼마나 힘들겠나.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했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의 재활센터 직원은 대부분 정규직이다. 치료사가 휴직이나 병가를 낼 때 즉, 부득이하게 대체 인력이 필요한 경우에만 계약직을 채용한다. 하지만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40대가 넘어가는 작업치료사들은 미래를 걱정한다고 한다.

   
 

이씨는 의료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의료수가가 올라가면 치료 여건이 개선되는 등 질 높은 치료로 이어져 환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에서 작업치료 분야에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 정책에 관심이 높은 그는,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통해 관련 공부를 지속할 예정이다. 특히 정치가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지속해서 간접적인 참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오후 5시가 넘어갈 무렵 환자 보호자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노동의 끝이 알렸다. 불편한 몸으로 소박한 일상을 꿈꾸는 환자의 치열한 고군분투. 그 한가운데에 작업치료사가 우뚝 서 있다.

문득 이들의 모습이 양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몸을 녹여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양초 말이다. 작은 불꽃들이 꺼지지 않는 한 작업치료사의 노동은 계속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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