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

기억과 구원

세월호 논란이 여전하다. 적절하게 규명되고, 충분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테제를 따르자면, 억압된 기억은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해리슨 포드와 미셸 파이어 주연의 공포 영화 <왓 라이즈 비니스>가 이를 잘 보여준다. 숨겨진 진실이 결국 파국을 유발하지 않던가. 따라서 가톨릭 식의 용서를 비는 고백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바른 기억은 바른 구원의 전제이다. 적어도 헤브라이즘적 통찰과 정신분석학적 입장에 따르면, 그러하다. 치유는 기억의 정화(淨化)이다.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면, 기억의 촉구를 위해 계속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러하다. 아직도 네트워크에 유포되는 메시지나 출판시장에 쏟아지는 단행본들이 이를 증명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올해 3월과 4월에 관련된 서적이 일곱 권 출간됐다. 지난해 10월에 사회학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출간된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반양장) - 재난과 공공성의 사회학』(한울아카데미) 이후 반년 만이다. 물론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에 맞추어 준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의 기억

우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은 세월호 참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생생한 육성을 담아놓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창비)이다. 이는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의 후속작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희생된 단원고 전수영 선생님의 어머니가 기록한 『4월이구나, 수영아 - 세월호 희생교사 전수영 그리고 엄마』(서해문집) 또한 우리의 눈길을 모은다. 위로 대신 칭찬을 받아야 했던 (학부모와는 구별된) 교사 부모의 특수한 처지가 잘 다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기록을 분석, 정리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힘)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SNS에 널리 퍼진 정부의 음험한 음모에 대한 혐의보다 국가와 기업의 총체적 무능에 대한 판단으로 기울어진 듯하다. 무려 700쪽에 달하는 자료에 들어간 노고에 숙연해진다. ‘진실의힘’이라는 출판사의 이름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월호의 성찰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학문적 성찰의 결과가 지속적으로 제출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인문사회과학자 열네 명의 연구가 담겨 있는 책자인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그린비)이 특히 관심의 대상이다. 세월호 침몰은 한국 사회 전체의 침몰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규명은 국가와 사회 자체에 대한 고민을 촉구한다. 그러한 문제의식이 이 논집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 팀의 기획물인 『세월호가 남긴 절망과 희망 - 그날, 그리고 그 이후』(한울아카데미)가 추가된다. 세월호의 사회과학과 세월호의 문학으로 구성돼 있다(후자는 추모문화제에서 낭독한 열두 편의 시들이다). 이렇게 각 대학별로, 각 지역별로 계속 결실이 나오면 좋겠다.

또한 독일철학 연구자의 단독 저작인 『가만히 있는 자들의 비극 - 세월호에 비친 한국 사회』(컵앤캡)에는 인문학 특유의 섬세한 시선이 담겨 있다. 야만성, 인권, 자율성, 영원의 빛 등의 키워드로 넓게 정리하고 있다. 한 명의 학자가 하나의 단행본으로 세월호에 대해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것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기독교권에서는 양민철과 김성률이 공저한 『광장의 교회』(새물결플러스)가 눈길을 모은다. 부제 그대로 “광화문 세월호 광장 천막카페 이야기”이다. 이 단체의 정식 명칭은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천막카페’이다. 이는 교회가 바로 서려면, 약하고 어려운 자들 곁에 서야할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0절). 한국교회 변혁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개독교로 불리는 이유는 약자(빈민, 작은 자)를 저버리고 강자(부자, 지배자)와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과 해석

인간됨의 구성 요소는 복잡하다. 그러나 인간의 정체성(identity)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기억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어떠한 기억으로 일관되게 구성되느냐가 곧 그 사람이 어떻게 형성되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핵심은 기억이다. ‘정체성=동일성’은 기억으로 구성된다. 정체성의 변화는 기억의 재구성과 재해석에 기인한다. 사실 모든 기억은 나름의 해석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 이상으로 세월호 참사의 재구성과 진상 규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바른 치유는 기억의 적절한 재구성과 재해석을 요구한다. 기억의 ‘정화=치유’는 올바른 기억을 전제한다. 올바른 기억은 사실에 대한 직면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세월호 문제는 갈 길이 멀다. 이는 온 국민의 트라우마가 됐고,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치료하기 위해서는 고작 교통사고에 불과하다며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진상 규명을 끝까지 요구해야 한다. 아직은 세월호 피로감을 말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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