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대통령의 기이한 언어습관이 대중에게 소비되는 방식을 보며 씻김굿을 떠올린다. 그의 말투에 대한 시민사회의 갑갑증에서 멸절했던 근대의 넋이 한판 굿에 불려오는 걸 본다.

근대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확산되면서 개인의 인권이라는 가치가 시민사회의 성립에 결정적 축이 되는 과정이었다. 구성원 각자는 욕망이 거세된 받침돌이 아니라 집단 그 자체의 동력원이 됐다. 이 시기의 개인은 자신의 지향을 시대의 향방에 동기화 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춰 나갔다.

물론 사람들은 혁명을 지렛대로 고답스런 중근세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수 많은 갈등과 맞닥뜨렸다. 전근대성을 띄는 이들과 현대를 지향하는 이들 사이의 반목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의 해법을 제도화 하면서, 이후 역사는 더이상 타자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 됐다.

따라서 당대 역사와 한 인물의 갈등양상을 보면 그가 근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인지, 현대로 진입한 세상에서의 시대정신을 체화한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당대의 주요 사안들의 당사자로 자신을 지목하고 그 해결자로서 또한 스스로를 주목하는 이들은 더이상 타자의 역사를 대리해 살아 줄 생각이 없는 근대 졸업생, 즉 현대인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시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자신이라 여기므로 참정권의 내밀한 가치를 제대로 이행한다. 시대현상을 자신과 결부시켜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엔 우리나라의 정치 현상이 자신과 유리돼 있다. 그의 말에서 국가적 대소사는 물론 자신과 연결된 정치적 지점 마저도 분리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근래의 경우엔 20대 총선에서의 여당 참패를 두고 정부 심판론이라는 여론과 달리 국회 심판론이라 일축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셈법 때문에 부러 그렇게 말하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진실이든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치인의 철학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근대적 모호함을 간직한 타자로서 현대의 갈등지점들을 대한다.

이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대중과 기자들을 상대로 하는 말의 한 가운데에 자기 자신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바마는 종종 매체와의 크고 작은 만남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정립한 사고를 드러낸다. 멀리 미국까지 갈 필요도 없이 노무현과 김대중과 김영삼의 과거 연설들을 보라. 시대의 리더를 자임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역사와 자신을 동기화시키며 스스로를 사르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독재자와 학살자조차 역사의 부름을 참칭할 정도로 이는 정치 수장으로서의 기본적 덕목이다. 오직 박근혜 대통령만이 스스로를 당대의 역사로부터 타자화 시킨다.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라는 뒷배가 있든 없든, 시대적 중대사와 시민을 분리시키려는 어버이연합의 화술은 역사로부터 개인을 타자화 시키는 데에 복무한다. 보수사이트라는 일간베스트에 유통되는 정치적 통념들이 또한 그러하며, 세월호를 비롯한 국가적 대형사안들에 끊임없이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 사람들의 언어가 그러하다.

이는 비단 어느 한 진영의 문제만은 아니라서, 가령 더불어민주당이 거듭된 선거 패배를 탈출 하기 위해 총선 과정에서 보인 유사왕정체제의 반제도적 현상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제도의 붕괴는 개인이 역사로부터 타자화 되는데 기여한다. 이 시대는 너 나 할 것 없이 사회 전체가 과거로 회귀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방향성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정부를 탄생시켰다.

달리 말하자면 대통령 박근혜의 화술은 현대에 분명히 살아있는 전근대라는 정념의 화술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화술과 시민사회의 갈등은 우리가 사는 현재가 여전히 근대에 머물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근대의 시기를 서양에선 대략 18세기 무렵부터 두차례 세계대전 전후라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엔 대체로 19세기 말엽부터 해방 전후 정도로 본다. 해방 이후 현대사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온갖 갈등을 거쳐온 이들이 영애 박근혜의 머리에 마음 짠한 왕관을 씌워주었다. 하지만 왕관의 금빛 도금이 벗겨지고 전근대적 본질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우리 시대가 아직도 근대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느낀다. 아니, 근대와의 결별을 참 징하게 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사회는 대통령 박근혜라는 씻김굿을 통해 죽었어도 한참 전에 죽었어야 할 근대의 넋과 여전히 이별 중이다.

하지만 어떤 인연이든 헤어짐의 시간이 길어지면 고통스러운 법. 근대씨, 우리 이제 제발 헤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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