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대학구조 개혁, 나아가서 사립대학교의 부정 등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문제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학력·학벌을 따지는 풍조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성리학적 지식을 갖춘 양반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던 조선시대와 비슷한 매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는 겉으로는 양인, 즉 천인(賤人-노비, 재인, 창기, 백정 등)만 아니면 누구든 과거에 응시해서 관료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험 문제가 성리학적 지식과 작문 실력을 묻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성리학 지식을 배경으로 한 양반 출신 가운데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만 관료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대물림되니 학력과 학벌을 따지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가문을 따지고 지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시대의 이 자연스럽지만 옳지 않은 현상이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건국 이후, 1980년대에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유능한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는 어느 회사의 광고카피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많이 배출해내는 것이 우리나라의 당면과제인 것처럼 포장되어왔다. 특히 김영삼 정권 당시 대학교를 엄청나게 인가해 주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부실대학’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IMF 국가 환란을 기점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취업은커녕, 먹고 살기도 힘드니, 대학은 꼭 가야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요즈음 대학구조개혁 이야기가 한창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부실 대학은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현 정권과 동일선상에 있는 김영삼 정권 때 엄청난 대학교를 인가해준 것인데, 지금 와서 인구가 줄어드니까 대학을 없애겠단다. 그것도 모자라서 대학구조개혁의 가장 주된 기준이 ‘취업률’이다. 살고 싶으면 대학이 취업률을 높이라는 것이다. 대학이 취업사관학교인가? 기본적으로 대학 진학과 졸업은 선택사항인데,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면 취업이 쉽지 않다. 그리고 국가가 이것을 부추기고 있다. 결국 대학 진학과 졸업 역시 취업을 위한 의무교육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일부 대학의 부실이나 부정부패, 학령인구 감소(이것의 원인 역시 국가가 제공했다.)에 대한 국가의 부실한 대응을 전적으로 대학의 책임으로 돌리는 행위이다.

조선시대가 아닌 현대 대한민국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칙부터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에서 4대 의무를 수행한 사람은 최소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존할 권리는 가진다. 4대 의무 가운데 교육의 의무, 즉 의무교육을 받았으면,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혹은 성인이 된 후 취업을 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받을 수 있는 최저임금은 받고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의무교육만 마치면 최저임금은커녕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가 되었건 대학을 가겠다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사교육을 받고, 부모는 부모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직장도 모자라서 부업까지 한다. 그런데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취업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야 된다. 각종 영어 성적, 봉사, 대회 수상 등을 수행해야 된다. 그런 것을 모두 갖춰도 소위 ‘지잡대(지방잡대학)’라고 분류되는 학교 졸업생들은 다른 것도 아닌 학벌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

대학구조개혁 문제는 사학비리를 비롯한 사립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 실업문제,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사교육 등 얽힌 문제가 많다. 의무교육만 받으면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성인이 되어서 ‘근로의 의무’를 수행할 때 대한민국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4대보험의 수혜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원칙이기 때문이다.

원칙이 잘 지켜진다면, 다음으로 정부가 국공립학교의 학습·연구 환경에 투자해야 된다. 국공립학교는 국공립학교답게 적은 금액의 등록금을 책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서울대학교를 다시 국립화하고, 전국의 국립대학을 통폐합하여 명칭을 단일화하고, 한국연구재단에서 분류한 대부분의 학문 분야의 학과를 개설하고 전국 대학에 분산 배치해야한다.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교수 대비 학생 수도 낮추기 위해 교수도 많이 초빙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지역의 국공립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기숙사도 확충해야 된다. 연구 환경과 생활환경이 좋은데, 등록금까지 낮으면 국공립대학으로 대입 희망자들이 몰리지 않을까? 심지어 세계 대학순위가 오르면서 유학생까지 증가할지도 모른다.

재원이 문제가 되는가?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그 재원으로 하면 된다. 현재 사립학교는 대부분 국고 지원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고, 재단에서 나오는 재단전입금은 미미하다. 이게 사립학교인가? 국공립학교인가?(그렇다고 국가의 통제를 잘 따르기는 할까?)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그 돈으로 국공립학교를 활성화시키자. 사립학교로 하여금 독자생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한경쟁.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 아닌가! 그 대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자격제도로 바꾸고 이외의 입시 제도는 사립학교 자율에 맡겨보자.

닥치지 않은 결과를 감히 예측해본다. 이 결과로 기부금 입학제도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돈은 많은데 대학에 갈 실력은 되지 않은 사람은 기부금을 내고 사립학교에 갈 것이다. 그 사람이 졸업은 가능할까? 졸업을 하더라도 좋은 연구 환경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국공립학교 출신의 인재들이 있는데, 인재가 필요한 기업은 누굴 뽑을까? 아, 돈과 인맥으로 그들을 이기고 기부금 입학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사람이 취업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이 회사에 들어가서 계속 돈과 인맥으로 지위를 유지하면 그 회사는 어떻게 될까? 그런 회사들이 많다면 국가 경제는 어떻게 될까? 그런 현상에 대하여 정부는 국가의 경제를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감시해야한다. 물론 자체적으로 기강을 잡는 것은 기본이다.

개개인은 학력과 학벌에 대한 차별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은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 받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이다. 이와 별개로, 국가가 학력과 학벌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의무에 가깝다. 대학구조개혁은 단순히 대학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교육 전반, 문화 전반의 개혁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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