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CEO] 국내 최초 남성 뷰티블로거, 글로벌 코스메틱 기업 꿈꾸다

▲ 코스토리 김한균 대표 ⓒ투데이신문

창업 계기, “내 브랜드 만들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롤모델, 다양한 콘셉트·진정성 있는 ‘아모레퍼시픽’

경쟁사 틈에서 살아남으려 하지 않는 것이 노하우
가장 코스토리스러운 것,
그 자체가 최고의 경쟁력

장기적인 목표는 글로벌 TOP100기업
일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일할 것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회장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7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아모레퍼시픽이 성장을 거듭해오기까지 화장품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단연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 서 회장 못지않게 화장품에 푹 빠진 남자가 있다.

‘딸을 위한 화장품을 만드는 아빠’라는 명성답게 그의 몸 곳곳에는 딸들의 이름이, 가슴에는 발바닥‧손바닥 모양이 새겨져 있는 등 아이들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이들 얘기를 하는 얼굴에는 연신 아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중소기업 CEO보다는 딸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빠에 가까웠다.

하지만 화장품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좀 전까지의 딸바보 같은 면모와 달리 CEO로서 뜨거운 열정과 패기로 불타올랐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이제까지 화장품과 함께한 10년의 세월과 앞으로의 계획‧목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반전의 주인공은 바로 아빠가 만든 화장품 ‘파파레서피’를 비롯해 ‘INGA’(20대 여성용), ‘크로스킨’(남성용), ‘로즈브라이드’(임산부) 등 총 4개 브랜드를 운영하는 ‘코스토리(COSTORY)’의 김한균(32) 대표다.

그는 창업 5년 만에 ‘올리브영(Oliveyoung)’ 등 유통매장에 입점하면서 지난해 매출액 약 160억원을 기록했다. 600개의 올리브영과 홍콩‧중국 전 지역 ‘샤샤(SASA)’, 홍콩 ‘왓슨스(Watsons)’에 자리매김하는 성공신화를 이뤘다.

그가 화장품과 처음 사랑에 빠진 건 중‧고등학교 시절이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만큼 책가방은 항상 화장품으로 가득했다. 대학교 시절에는 에뛰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초의 남자 뷰티블로거 ‘완소균이’로 이름을 알렸다. 또한 남성화장품 얼리어답터로 ‘tvN 화성인 바이러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그런 와중에도 화장품 관련 공모전 출전 등 대외활동을 병행하며 화장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모레퍼시픽’에서 근무하게 되는 좋은 기회도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년 8개월 후 그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과감히 사직서를 제출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야심 차게 선보인 첫 브랜드 남성 전용 화장품 ‘WHAN’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성과였다. 그런 그에게 기적처럼 아빠가 만든 화장품 ‘파파레서피’가 찾아왔다. 내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파파레서피는 현재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Top10에 속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에는 화장품 연구원이 꿈이었다는 그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관두면서까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화장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뷰티블로거 ‘완소균이’에서 화장품 업계 글로벌 Top100을 꿈꾸는 중소기업 CEO가 되기까지 김한균 대표의 좌충우돌 화장품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 코스토리 김한균 대표 ⓒ투데이신문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했던 학창시절
에뛰드 알바생에서 뷰티블로거 '완소균이'까지

Q. 화장품이 전부라는 김한균 대표의 학창시절은 다른 남학생들과는 남달랐을 것 같다.

화장품이 좋은 마음에 그냥 화장품 매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제 기억으로는 (고향인) 원주에 네이처리퍼블릭,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에뛰드 등 약 12개의 브랜드 매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분홍색 셔츠에 앞치마를 입은 에뛰드 매장 사람들을 보고 ‘저곳에서는 일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뛰드를 제외한 다른 매장들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남자라서 안 된다는 거절만 돌아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 남은 에뛰드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때마침 그곳의 점장님이 남자분이라 “혼자 남자라 심심했는데 잘 됐다”며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렇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알바생에서 매니저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Q. 원래부터 꿈이 화장품 CEO였나.

처음부터 화장품 CEO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화장품 연구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화학과에 지원했는데 저와 전혀 맞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학기 다니다 전공을 광고홍보학으로 바꾸고 때마침 학교에 뷰티디자인과가 새로 개설돼 그것을 부전공했다.

Q. 뷰티블로거 ‘완소균이’로서의 활동 계기와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는 특별히 뭔가 얻고자 하는 바가 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화장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사고 쓰다 보니 혼자서만 알고 있다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후기를 작성해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화장품을 후기를 올리는 뷰티블로거들 가운데 남자는 저 혼자였다. 계속 혼자서 화장품을 사서 사용만 했으면 덕후(오타쿠에서 파생된 말)로 끝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돌아보니 사람들에게 화장품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리고자 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하루에 후기 2개를 무조건 올렸었는데 아쉽게도 3~4년 전부터는 여러 가지로 여유롭지를 못해 블로그 후기는 못하고 있다.

▲ ⓒ투데이신문

국내 화장품 대기업 ‘아모레퍼시픽’ 입사
1년 8개월만에 돌연 퇴사, 그리고 창업

Q. 화장품 대기업을 관두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모레퍼시픽 공모전에 참가해 처음으로 입사한 곳이 에뛰드였다. 그곳에서는 상품 기획이랑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그 회사(아모레퍼시픽)에 들어가는 것이 막연한 꿈이었고 1년 8개월이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만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내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느 기업의 구성원일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10’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은 ‘5’뿐이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10’ 이상의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만큼 시간이나 여유적인 면에선 제 삶은 ‘10’에서 ‘5’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Q.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롤모델로 삼아온 화장품 기업은 어딘가.

롤모델에 대한 기준이 조금은 다를 수 있는데 기업적인 측면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다. 브랜드는 자식이고 회사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제가 낳은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을 것이다. 이때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주기 위해 전학도 시켜보고 유학도 보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때문에 이 브랜드에 무엇이 적합한지 찾고 투자하는 것이 회사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라네즈, 에뛰드, 이니스프리, 설화수, 헤라 등 다양한 콘셉트와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가진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아모레퍼시픽이 기업적인 롤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 역시 파파레서피가 크게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기존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브랜드들과 앞으로 새롭게 선보일 브랜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Q. 창업을 결심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상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그래, 어릴 때 빨리 시작해봐”, 반대하는 사람은 “좀 더 경험을 쌓고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뻔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제 생각과 선택이 가장 중요했기에 창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선택, 책임 모두 제 몫이기에 누군가와 고민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그냥 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내가 책임져야 되는 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는 마음이다.

Q. 창업하면서 힘든 일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여자가 화장품 업계에서 남자 CEO라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금전적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컸다. 금전적 어려움은 매출로 극복했고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은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극복했다. ‘더 좋은 사람이 있겠지’, ‘또 다른 방법이 있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남자라는 것은 오히려 저한테는 큰 무기였다. 여자 화장품 CEO가 당연하게 느껴진다면 남자 화장품 CEO는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냈다. 그때부터 방송 출연과 뷰티블로거 활동 등 제가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이 빛을 발했다.

▲ 코스토리 사옥에 진열된 제품들 ⓒ투데이신문

코스토리 브랜드들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중국 화장품 시장 TOP10을 거머쥔 ‘파파레서피

Q. 남성 전용 화장품 ‘WHAN’부터 아빠가 만든 화장품 ‘파파레서피’까지 그들의 탄생기가 궁금하다.

남성 전용 브랜드 ‘WHAN’은 ‘완소균이’라는 블로거 닉네임에서 시작됐다. 망한 건 아니지만 반응이 그렇게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파파레서피’는 아이에게 제가 제일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담아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판매 목적이 전혀 없이 혼자 오일을 만들어 블로그에다 올렸다. 근데 300분 정도가 샘플을 요청했고 작게 만들어 무료로 나눠드렸다. 이후 200 이상의 분들이 구매를 하고 싶다고 문의해왔다. 이후 200병이 300병이 되고 500, 1000병이 되면서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한 브랜드가 파파레서피다. 최근 론칭한 색조 브랜드 ‘INGA’는 ‘나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야’(Im Not Girl Anymore)라는 뜻으로 ‘소녀 접근 금지’가 이 브랜드의 키 메시지다. 20대 전까지는 기초화장품(파파레서피)만 사용하라고 했다면 20대가 되면 어느 정도의 색조 화장을 허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Q. 브랜드 중에서도 특히 ‘파파레서피’가 큰 인기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브랜드는 어떤 가상의 스토리나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한다. (아이를 위해 만든 화장품이라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와 제가 화장품과 살아온 10년의 이야기가 무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 파파레서피를 처음 만들 때 TV에서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아빠 어디가’ 등 아빠 육아 프로그램들이 이슈화됐다. 그러다 보니 마치 파파레서피가 전략을 짜고 나온 것처럼 사람들에게 비춰졌다. 이후 SNS에서도 생각지 못하게 큰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도 모든 직원들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점점 파파레서피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파파레서피를 장기적으로는 아빠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신뢰할 수 있는 이미지를 더 구축해 한국의 록시땅 같은 브랜드로 키워나가고 싶다.

▲ 매달 직접 보내는 손편지 ⓒ투데이신문

Q. 직접 고객들에게 손 편지도 보낸다던데.

창업하고 5년 동안 빠지지 않고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제 일상들이나 저희 브랜드 소식을 손 편지로 고객들에게 매월 보내는 것이다. 그 안에는 아이들이랑 놀러 갔던 일, 브랜드 행사 소식 등이 담겨있다. 이 편지의 1년 치에 해당하는 12장을 모아서 답장을 주시면 선물을 보내드린다. 작년에도 4분께 300만원 상당의 선물을 보냈다. 처음에는 ‘누가 나한테 답장을 할까? 단순 홍보물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A4용지 가득 손수 답장을 보내주시는 분도 있었다. 이런 고객과의 소통이 저희 브랜드의 인기와 신뢰를 높이는데 한몫하는 것 같다.

Q. 처음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에 비해 현재까지 얼마만큼 성장을 이뤘는가.

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5년 전에는 1개의 브랜드에서 1개의 제품만 판매했다. 하지만 지금은 브랜드 4개에 제품이 대략 100개 정도다. 현재 한국 ‘올리브영’ 600개에 입점돼있으며 대략 10곳에 들어가 있는 ‘롭스(LOHP's)’ 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또 자체 매장을 비롯해 홍콩‧중국 전 지역 ‘샤샤’, 홍콩 ‘왓슨스’에도 자리 잡고 있다. 롯데 면세점과 인천공항 면세점에도 저희 회사 제품이 모두 들어가 있다. 특히 롯데 면세점에서는 유명한 수입사들보다도 저희 매장이 크고 브랜드 통틀어 매출이 1위다. 저도 아직까지 믿기 어렵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5년 전보다 성장 추이가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다.

▲ 7월 말 오픈을 앞둔 가로수길 파파레서피 ⓒ코스토리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법
가장 우리스러운 것이 최고의 경쟁력

Q. 기존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한균 대표만의 노하우나 화장품 철학은 무엇인가.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저의 노하우다. 외부에 수많은 경쟁사들과 치열하면서 살아남는 게 미션이 되면 점점 일이 재미없게 된다. 하지만 가장 우리스럽고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면 재미도 있고 그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는 당연하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때문에 브랜드 타깃을 정해 조사하기보다는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내부적으로 더 많은 고민을 하려고 한다.

Q. 최근 K뷰티가 유행하면서 한국 화장품들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과연 K뷰티가 글로벌로 퍼졌냐는 점이다. K뷰티 열풍은 한류라는 문화에서 시작됐으며 중국에 국한됐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세계 시장의 약 1/3을 차지하기 때문에 마치 글로벌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한국 화장품이 붐을 일으킬 만큼 잘 팔리진 않는다. 최근 중국의 로컬 브랜드인 ‘프로야(PROYA)’가 한국에 입점했다. 중국이 역으로 한국에 수출을 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중국은 한국화장품 수입을 차단하는 추세다. 때문에 K뷰티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본다.

Q. 그렇다면 국내 화장품들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한국의 화장품 제조기술력은 유럽에서도 인정할 만큼의 강점을 자랑한다. 그 강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한국스러운 특색을 잘 살린 브랜드를 만들어 어필해야 되지 않을까.

▲ 코스토리 김한균 대표 ⓒ투데이신문

장기적 목표는 글로벌 TOP100
일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일할 것

Q. 현재 중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화장품 공부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 어떤 누구와 화장품 이야기를 나눠도 뒤쳐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배움을 계속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배워야 늙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건 젊고 열정이 있다는 증거이며 앞으로 일하는데 있어서도 무기가 될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아직 학생이다”라는 철없는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

30대가 되고 생긴 좌우명이 ‘일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일하라’다. 누군가에게는 화장품 회사 CEO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들, 사위, 아빠다. 이 모든 역할들이 32살인 제가 감당하기에 가끔은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역할에서든 위치에서든 신경 쓰지 않고 가장 저답게 일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일하는 게 김한균으로서의 계획이자 목표다. 회사의 장기적인 목표는 화장품 업계 글로벌 Top100이 되는 것이다. 중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제품들이 많이 판매되다 보니 중국에서의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이 올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모든 상황들을 고려해 중국에서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더 크게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김한균 대표에게 화장품이란 어떤 의미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늘 “김한균에게 화장품이란 김한균이다”라고 대답한다. 화장품 없이는 제 20대를 설명할 수 없다. 저에게 화장품이란 전부이자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회장님처럼) 나 역시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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