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김모씨의 일기장 ⓒ故 김모씨 유족 / 게티이미지뱅크

촉망받던 北 산부인과 의사, 南에서는 직급강등 차별
“내 소중한 회사 송도에스이”…사고 후 회사는 책임회피

실의 빠진 유족에 회사 상무 “사과받을 자세 안 돼 있어”
언론과 정치권 주목에 부랴부랴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나는 잠에서 깨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함에 감사한다.

또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함에 감사하고 그리고 내가 집안의 가장으로서 회사에 다닐 수 있음에 더욱더 감사하고 행복하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나의 소중한 회사 송도SE가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

송도SE가 있어 나의 삶은 안정되었으며 지금의 송도SE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여기저기 떠돌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을 것이며 지금의 나와 내 가족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회사생활 3년이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동료들과 협업하여 열심히 배우고 나 자신을 정진시켜나가려고 한다.

나는 송도SE가 더더욱 소중하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매일의 꿈과 희망을 그리며 오늘 하루도 출근길에 오른다.’

- 故 김모씨의 일기장 중에서 -

지난 23일 오전 인천 연수장례식장에서 한 새터민의 장례식이 진행됐다. 북한에서 의사로 근무하다 지병으로 고생하는 아내의 치료를 위해 탈북한 김모(48)씨. 그는 추락사고로 숨진 지 11일 만에 인천 부평의 한 가족묘원에 안장됐다.

김씨는 일기장에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나의 소중한 회사 송도에스이가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 “당신이 우연히 ‘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나와 함께 하고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소중한 송도에스이가 있음을” 등이라 말할 정도로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런 김씨는 지난 13일 오전 8시 30분경 인천 송도에 위치한 포스코 R&D 센터 건물 내부 유리창 청소를 하다 발을 헛디뎌 14m 아래인 지하 1층까지 추락해 숨졌다. 그가 남다른 애착을 갖고 일해온 회사는 사고가 발생하자 직접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을 주장했다. 그렇게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11일간 사측과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 北에서 촉망 받던 의사, 南에선 구조조정에 직급 강등 등 차별받아

함경북도 청진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던 김씨는 간질환, 고혈압 등에 시달리는 아내의 치료를 위해 탈북해 2006년 한국에 정착했다.

그 후 김씨는 공사장에서 일용직 등으로 일하다 2010년 사회적기업 ‘송도에스이’에서 주차관리팀 관리직으로 입사했다. 송도에스이는 지난 2010년 4월 포스코가 13억원을 들여 설립한 사회적 기업으로, 포스코 R&D 센터 건물과 E&C 빌딩의 미화, 주차관리, 사무지원 등을 맡고 있다.

김씨는 송도에스이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해 긍지가 높았다고 유족들은 증언했다. 업무에 있어서 컴퓨터 활용 등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밤새도록 딸에게 배워 다음날에는 능숙히 작업할 정도로 열정도 대단했다. 2012년 김씨는 그간의 성실함에 주임으로 승진했고 자부심은 더욱 커졌다. 유족들은 김씨가 사회적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만족했다고 말했다.

상을 치르는 기간 동안 그가 일하던 포스코 R&D 센터 건물을 관리하는 과장이나 포스코 쪽 담당자들도 조문을 와 “함께 일할 때 코드가 잘 맞아서 정말 재밌게 일 잘했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인품도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지난 5월경 포스코 측이 주차관리 업무를 다른 회사로 넘기면서 송도에스이는 구조조정을 실시, 이에 따라 관리직이었던 김씨는 환경미화 업무로 자리를 옮겼다. 직급은 강등됐고 월급도 기존 180만원에서 140만원으로 삭감됐다.

유족 측에 따르면 김씨는 당시 환경미화 업무부분에는 주임 직책이 없다는 이유로 사원으로 강등됐다. 그러나 김씨가 직위 복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자 사측은 다른 사람을 주임으로 승진 발령냈다. 주임이 없던 환경미화 업무부분에서 새로 주임이 된 사람은 업무시간에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반장에서 강등된 남한 사람이었다. 징계를 받은 지 불과 열흘도 안 된 시점이었다.

유족들은 사측의 이 같은 행동이 사내에서 새터민들에 대한 차별이 이뤄진 정황으로 보고 있다. 유족들은 “고인도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피해를 본 부분이 있고 그게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도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이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의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유족들은 김씨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의사면허 시험에 응시했던 서류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의사였던 새터민이 남한에서 다시 의사면허를 따기는 일반 응시생들보다 어렵다. 기존에 배웠던 용어들이 다 라틴어나 러시아어 등이기 때문에 용어에서부터 오는 혼란도 있고 북에서 다뤘던 기계와 다른 기계에 대해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 다시 의사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안전모라도 있었더라면”…안전불감증에 희생된 김씨

그런 김씨는 지난 13일 오전 포스코 R&D 센터 건물 내벽 유리 청소를 하다 추락해 숨졌다. 지상 2층의 높이에서 작업하던 김씨는 14m 아래인 지하 1층까지 떨어졌다.

김씨의 죽음에 대해 유족들은 김씨가 사고 당일 안전장비 없이 작업에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작업 전 안전교육 역시 매우 형식적이었으며 추락 위험이 있는 공간에 안전그물망은 물론, 안전모조차 없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그날 고인이 작업한 현장의 경우 추락위험이 있는 공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바닥청소나 일반청소를 할 때와는 다르게 안전교육이 진행됐어야 했다”며 “그게 사정상 안 됐다고 할지라도 안전모라도 씌워줬다면 목숨은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이어 “그런데도 사측은 자기들은 100% 법에 정해진 대로 교육을 했는데 망자가 잘못한 것이라며 책임을 고인 쪽으로 몰았다”며 “실제 그날 어떤 교육이 진행됐는 지까지도 같이 작업했던 동료들에게 다 들었는데 그런 사측의 말을 들으며 고인을 두 번 죽인 행태라고 생각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에 따르면 사고 당일 안전교육은 전혀 없었고 현장에서 작업지시를 내린 주임이 운행 중인 에스컬레이터를 정지시키고 에스컬레이터가 계단이기 때문에 발 접질리지 않게 조심해라 정도의 전달이 전부였다. 즉, ‘조심해서 일해라’ 정도의 주의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 유족에게 “사과받을 자세 안 돼 있어”…억울한 죽음에 돌아온 건 막말과 책임회피

유족들은 당초 15일 오전 장례를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인 14일 장례식장을 찾은 송도에스이 A상무과 관리자 B씨의 막말과 책임 회피에 장례를 거부했다.

유족들은 포스코 출신인 A상무가 “사과한다고 하고 있는데, 사과받을 자세가 안 돼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 (사과받을)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하느냐”며 유족과의 대화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또 B씨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 죽었다”며 회사 측의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했고 장례를 거부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버티면 얼마나 더 버틸 건데” 등의 발언도 했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이 같은 사측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청하며 장례를 거부하고 나섰다. 유족들은 “저희는 생전에 고인의 인격을 무시한 것도 용서하려 했는데 그 가해자들이 사후에도 고인과 유족에게 막말하는 것에 대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전했다.

이 같은 유족들의 주장에 대해 A상무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사흘 연속 조문을 갔고 죄인의 심정으로 유족 측에 수차례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사과를 안 받아 주시는지 모르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재 A상무는 조사로 인해 전화 연결이 어려운 상태다.

이후 김씨의 죽음과 막말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 특위를 꾸려 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히자 사측은 그간의 입장을 바꿔 유족들과 합의를 진행,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대책 마련과 불합리한 인사제도 개선 등을 약속했다.

또 김씨가 사망한 날을 송도에스이 안전의 날로 정해 이를 계기를 해마다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그에 따른 후속 대책들을 강구하겠다는 약속도 함께 이뤄졌다.

유족들은 “그들(A상무와 B씨)도 직접 사과를 했다”며 “객관적인 증언들을 설 사람들이 있는데 얘기를 해놓고 자기들은 그런 얘기한 적 없다고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책임을 묻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 차원에서도 그분들에 대해 회사내규에 적합한 처벌에 관한 얘기가 합의과정에서 다 나왔기 때문에 회사에서 처리하는 걸 지켜보려 한다”며 “인사처리는 당장에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기한을 두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부분들에 대해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또 “인사위원회가 열릴 때 저희도 참여하기로 했으며 만약 유족들과 합의한 부분에 대해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민형사상의 책임도 묻기로 합의가 됐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유족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며 불합리한 대우나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받지 않고 하는 거만큼 당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직장생활들을 했으면 좋겠다”며 “그게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고인이 동료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촉망 받던 의사였지만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남한으로 향한 김씨는 다시 의사 가운을 입을 수 없었다. 대신 그를 맞이한 건 열악한 일용직 일자리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자 이번에는 사내 차별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와중에도 항상 희망과 고마움,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던 회사의 안전불감증에 희생됐다. 그리고 고락을 함께 나눈 동료 새터민들에게 처우개선, 불합리한 인사제도 개선 등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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