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지난 늦봄이었다. 몇 개월 동안 벼르고 고르던 끝에 인터넷 마켓에서 노트북을 하나 주문했다. 모델을 결정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다름 아닌 가격 때문이었다. 이것저것 원하는 사양을 고려하다 보니 아무래도 고가의 라인업을 선택해야 했다. 최근 10년 간 병원비와 원룸 보증금을 제외하면 한 번에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심이 늦어졌다.

오랜 망설임 끝에 결정한 노트북이니 인터넷에서 컴퓨터를 팔고 있는 그 수많은 매장을 둘러볼 때는 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겠는가. 처음에는 최저가부터 찾아보다가 이내 평가가 좋은 곳을 검색해보게 되었고, 마지막으로는 배송 조건을 매장마다 비교해보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에는 택배를 대신 받아줄 수 있는 경비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집에 사람이 있을 때와 배송 예상일을 맞춰야만 했다. 바로 다음날 배송이 가능하다는 곳을 찾아 결제를 했다.

그렇지만 물건은 약속한 날 오지 않았다. 매장에서 보내는 게 하루 이틀, 또 배송과정에서 알 수 없는 문제로 인해 그만큼의 시일이 또 늦어졌다. 처음 늦어졌을 때 주문을 취소하면 되었을 것을 집에 사람이 있는 날들에 며칠 여유가 있다는 것을 핑계 삼아 그냥 기다리다가 정작 약속이 있는 당일에 배송이 이뤄질 거라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는 대학로에서 지인과 함께 연극을 보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히도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택배가 도착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배송 당일, 오후 1시가 넘어도, 2시가 넘어도 그리고 3시가 넘어서도 택배는 도착하지 않았다. 저녁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적어도 5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기에 마음은 점차 초조해졌다. 문자에 찍혀 있는 택배기사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날 저녁 약속 역시 몇 번의 변경 끝에 결정된 거라 상대방에게 차마 택배 때문에 집에서 나가지 못하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데 문고리에 묵직한 느낌이 밀려왔다. 이런. 택배 기사님께서 박스를 문 앞에 놓아두고 가신 것이다. 순간적으로 맥이 풀렸다.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가 묵직한 덩어리가 되어 바짓가랑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일단 박스를 들어 집안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택배회사와 기사님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거기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지난번에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어 눈여겨보기도 했거니와 택배기사님의 이름이 유명스포츠 선수와 같아서 단 번에 기억에 남아있었다. 벨도 누르지 않고 현관문만 탁탁 두들기고는 물건을 문 앞에 놓아두고 가시는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을 방문하시는 택배기사님들 중에 유일하게 얼굴을 모르는 분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동안 배달사고가 없었고, 주문하는 제품들 역시 그렇게 고가가 아니었기에 별일 없이 넘어갔지만, 만약 첫 사고가 이번이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 배달사고가 날 것이었다. 주변의 지인들도 회사에 전화를 걸어 엄중히 항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 역시도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좀 망설여졌다. 예전에 읽었던 택배기사님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머릿속에 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건 배송할 때마다 기사님 앞으로 떨어지는 돈은 500원 정도라고 한다. 그에 반해 근무강도는 가혹하다. 오죽하면 문 앞에 놓아두고 곧바로 다음 행선지로 향했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들었다. 그리고 이런 고가의 물품을 배송하다가 사고가 나면 경위야 어찌 되었든 관련자들 중 가장 힘없는 사람인 택배기사님이 책임을 지게 된다. 물론 이번에 사고가 났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회사에 항의를 하면 기사님에게 어떻게든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500원과 소비자의 권리 사이에서 어느 정도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기사님에게 직접 말씀을 드리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택배회사가 어디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택배기사님이 배달해주는 날이면 마음의 준비를 했다. 탁탁,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면 뛰어나가 말씀을 드려야지. 기사님. 죄송하지만 다음부터는 벨을 누르시고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문 앞에 두고 가셨다가 누가 낚아 채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책임을 지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렇지만 만남은 쉽지 않았다. 집에 강아지가 있음에도 노크 소리를 놓치기 일쑤였고, 가끔 현관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비호같이 달려 나가 문을 열어보면 이미 엘리베이터는 내려가는 중이었다. 아니 기사님 얼굴 한 번 뵙는 게 이리도 어렵다니.

그렇게 3개월여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샌가 기사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점차 옅어지던 어느 날, 그러니까 며칠 전이다. 집에서 한창 일을 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을 쳐다보았지만 거기에는 불 켜진 복도만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굴까 하는 마음에 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스윽 하고 종이박스가 바닥에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인터폰 카메라가 비추지 못하는 곳에 처음 보는 택배기사님이 서 있었다. 바로 그분이었다. 늘 만나고 싶었던 그분.

급작스러운 만남에 당황했을까, 아니면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안경 쓴 젊은 청년의 모습에 뭔가 다른 감정이 들었던 것일까. 택배 왔습니다, 라고 건네는 그의 인사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며 답례를 했다. 택배기사님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그대로 사라졌다.

이렇게 느닷없는 만남이라니, 나는 택배상자를 현관 안에 들여놓은 뒤 그 자리에 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왜 오늘은 벨을 눌렀던 것일까. 혹시나 다른 곳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클릭과 상자로만 이뤄진 관계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런 긴장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아니면 엘리베이터의 열려진 문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언제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서 있던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피곤함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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