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 대법원장 ⓒ뉴시스

【투데이신문 이수형 기자】 현직 부장판사가 업자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과 관련해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대국민사과를 했다.

양 대법원장은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에 앞서 ‘국민과 법관들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현직 부장판사의 금품수수 사건과 관련해 실망하고 상처를 받은 국민에게 사법부를 대표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아직 남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분명히 가려져야 할 부분이 있지만 법관이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직업윤리와 기본자세를 저버린 사실이 드러났다”며 “그 사람이 법관 조직의 중추적 위치에 있는 중견 법관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당혹감은 실로 참담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또 “한 법관의 잘못된 처신이 법원 전체를 위태롭게 하고 모든 법관의 긍지와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있다”며 “지난해 이어 다시 이 같은 일이 거듭돼 법관 전체의 도덕성마저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됨으로써 명예로운 길을 걸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온 모든 법관이 실의에 빠져 있다”고 한탄했다.

이번 대국민 사과의 발단이 된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전 대표로부터 차량 등 금품을 수수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재판을 한 혐의 등으로 현재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가 법관 조직 전체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일이 상식을 벗어난 극히 일부 법관의 일탈행위에 불과하다고 치부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받은 충격과 상처만을 한탄하고 벗어나려 해서도 안 된다”면서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일지언정 이 일이 법관 사회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 자체로 먼저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깊은 자성과 절도 있는 자세로 법관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묵묵히 열심히 근무해왔던 법관들이 이번 일을 접하면서 느꼈을 큰 충격, 자신이 한 재판의 공정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과 억울함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비록 재판은 법관 각자가 담당해 행하는 것이지만, 국민이 인식하는 법원은 모든 재판 결과와 경험이 녹여져 들어 있는 하나의 법원임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느 한 법관의 일탈행위로 법원이 신뢰를 잃게 되면 그 영향으로 다른 법관의 명예도 저절로 실추되고 만다”며 “이는 모든 법관이 직무윤리의 측면에서 상호 무한한 연대책임을 지고 있음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양 대법원장은 “우리는 힘을 다해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고 법관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는데 발을 맞춰야 할 것이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직무윤리에 있어 이완된 분위기가 법관 사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청렴성은 법관들이 모든 직업윤리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라며 “자신이든 다른 법관이든 그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는 행위는 법관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 같은 일이 한 번이라도 법관 사회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한 눈으로 우리 내부를 꼼꼼히 되돌아봐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자칫 우리가 하는 재판의 정당성이 상실될 뿐만 아니라 법관의 존립 기반 자체도 흔들릴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전국 법원장들에게도 “오늘 회의에서 문제점을 진단하고 법관의 도덕성에 관한 논란이 일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 내는 데 지혜를 모아달라”면서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충격을 안겨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당초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사법부 내에서는 현직 부장판사 개인 일탈 정도로 선을 긋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렇기 때문에 양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만류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은 이런 느슨한 분위기가 제2, 제3의 사법비리 원흉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대국민사과를 강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윤관·이용훈 전 대법원장 당시에도 사법비리로 인해 대법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1995년 2월 윤 전 대법원장은 인천지법 집달관사무소 직원들이 경매입찰 보증금을 횡령한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 법원장회의를 열고 국민에 사과했다.

이 전 대법원장도 2006년 8월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구속되자 대국민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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