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얼마 전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테리어 공사만 끝났을 뿐 아직 영업은 하지 않고 있던 휴대폰 매장이 눈길을 끌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휴대폰 가게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그 앞에 커다랗게 박혀 있던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이라는 내용의 홍보 문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대담한 문구를 보면서 아무리 경쟁세상이라지만 이건 좀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그렇지 않은가. 아직 개업도 하지 않았는데,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이라니. 아니면 이제는 이런 것조차도 마케팅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려다가 다시금 멈춰 서서 휴대폰 가게가 생긴 그 매장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어느 동네, 어느 상가, 어느 골목에나 그런 자리가 있다. 어떤 주인, 어떤 업종이 들어와도 계속 망하기만 하는 연쇄폐업의 자리, 개업과 폐업을 끝없이 반복하며 흥망성쇠보다는 망망쇠쇠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은 그런 자리. 이번에 새로 생긴 휴대폰 매장도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서 있었다.

내가 이사 온 이래 그 자리에는 여러 주인들의 다양한 업종들이 거쳐 갔다. 젊은 아가씨가 기가 막힌 퓨전라면을 끓여주기도 했고, 열정적인 총각들이 의기투합해서 기존과는 좀 다른 방식의 닭강정을 만들어 팔기도 했으며, 성실한 중년의 부부가 한 끼 식사로 충분한 핫도그며 찹쌀 도너츠를 내놓기도 했고, 여타 프랜차이즈 분식집에 뒤지지 않을 수준의 떡볶이집이 들어선 때도 있었다.

나는 매번 그 가게들의 단골이었다. 또한 매번 얼마 뒤에 문이라도 닫지 않을까봐 가슴을 졸였다. 이렇게 친절하고 이렇게 싸고 이렇게 맛있는데 왜 손님은 많지 않은 것일까. 설혹 개업 초창기에 손님들이 반짝 하는 것 같아도, 과연 이 정도 손님들이면 손익을 맞출 수 있는 것일까 싶었다. 역시나 시간이 좀 지나면 가게 주인의 얼굴에서는 피로와 낭패감이 짙게 묻어나는 것이 보였고, 나의 몇 천 원 짜리 소비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간판은 내려지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장골목에서 망해나간 가게들이 그곳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 돈 오백 원에 일식집 수준의 튀김을 만들어주던 튀김집도, 낮은 가격에 질 좋은 치즈를 사용하던 피자집도, 그러니까 이런 골목상권에서 이런 음식을 만들어 팔아준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 하던 가게들조차도 결국에는 망해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망망쇠쇠의 자리를 거쳐 갔던 가게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왜 망했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절한 서비스는 물론이며, 아이템과 가격도 괜찮으며, 매장 위치로 보아 임대료 부담이 그렇게 높을 것 같지 않은데도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면, 이건 결국 구조적 폐업의 한국식 룰렛이 불행하게도 이 자리에서 계속 반복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여전히 자영업 문제의 해결은 개인에게 그 책임이 놓여 있다. 사회적 해법도 주로 소상공인을 위한 교육과 대출 등 무한경쟁에 더욱 더 엑셀을 밟으라는 식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이제 어느 상권, 어느 골목,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평균 이상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가격이 싼 매장에 ‘착한 가게’라는 족쇄를 내려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소비자로 남을 수 있을까.

물론 나 역시도 이에 대해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때로는 답이 없다는 솔직한 인정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명의 개인으로서 답이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어떤 불가능한 선의 의지에 기대게 된다. 마치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가 되면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처럼 이제 막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는 가게들을 볼 때면 부디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장사하기를 기원하곤 한다.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이라 광고하고 있던 그 휴대폰 가게의 주인은, 어쩌면 그 자리의 역사를 잘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문구를 전면에 내건 것이 좀 이해가 갔다. 아무쪼록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휴대폰 매장이 되어 그 자리의 슬픈 역사를 종결시켜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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