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해 국정을 농단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비선실세' 최순실 ⓒ뉴시스

【투데이신문 한정욱 기자】박근혜 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씨가 19일 국정농단사건 첫 재판에서 박근혜 대통령,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과 공모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가 "혐의를 전부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맞느냐"고 묻자 최씨는 "네"라고 답했다.

최씨는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것인지' 묻는 재판부 질문에 "독일에서 왔을 때 어떤 벌이라도 받겠다고 했는데 들어온 날부터 많은 취조를 받았다. 이제 정확한 사실을 밝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아이보리색 수의에 안경을 끼고 법정에 출석한 최씨는 재판 내내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함께 기소된 안 전 수석과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공판기일과 달리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최씨 측 변호인은 "올 한해 마감이 태극기와 촛불로 분열됐다. 이 법정은 대한민국 사법 사상 초유의 재판을 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현직에 있는 국정 최고 지도자를 공동정범, 주범으로 기소해 재판을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에게 적용된 11개 공소사실 가운데 8개가 안 전 수석과 공모범행 관계"라며 "하지만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또한 "최씨와 안 전 수석이 공모해 포스코그룹 계열 광고회사인 포레카의 지분을 강탈한 사실도 없다"며 "더블루케이와 K스포츠재단의 용역계약과 관련한 사기미수는 계약이 실패로 끝나 공소사실 자체로는 민사 사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씨가 컴퓨터를 파기한 것은 본인의 것으로 증거인멸죄가 되지 않는다"며 "사무실을 정리하라고 했을 뿐 다른 사람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씨 측은 국민참여재판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변호인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국민참여재판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와 오랜 기간 친분관계를 유지한 일반인이 사적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특정 사기업에 특혜를 주는 등 국정을 농단했다"며 "이는 국가기강을 흔들고 국민들을 절망, 분노하게 만든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씨와 안 전 수석은 대통령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했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대기업에 총 774억원을 강제로 모금했다"며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과 공모해 정부부처 장·차관과 공공기관 고위직 인사 등 47건의 문건을 최씨에게 건네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재판부에 혐의를 입증할 최씨와 안 전 수석에 대해 886번, 정 전 비서관에 대해 429번까지 증거목록을 제출했다. 최씨 등 변호인들은 추가로 제출된 증거를 열람·등사한 뒤 다음 공판준비기일에 동의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다.

특히 최씨 측 변호인은 최씨 소유의 태블릿 PC에 대한 실물 제출을 검찰에 요구하며 사실조회와 감정을 신청했다. 아울러 최씨의 독일 도피가 의도적이 아니라며 최씨의 입국 전 소환여부에 대한 사실조회도 신청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공무상기밀누설에 대한 입증은 국정농단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최씨는 검찰에 매일 불려가 밤늦게 조사를 받았는데도 태블릿PC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태블릿PC는 정 전 비서관의 공무상기밀누설죄에 대한 자료로 최씨의 공소사실 입증을 위한 자료는 아니다"며 "태블릿PC는 현물은 그대로 두고 별도의 포렌식 절차를 거쳐 이미징된 결과로 내부의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안 전 수석의 수첩과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에 대한 감정도 신청됐다. 최씨 측 변호인은 "객관적 사실 및 다른 관련자들 진술과 맞지 않는 내용이 수첩에 많이 있다"며 "영장에는 최씨와 안 전 수석이 사적 욕심으로 범행을 했다고 돼 있지만 공소장에는 재단 설립이 공적 목적이라고 내용이 달라져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향후 증거 신청에 대한 변호인 측 의견서를 검토한 뒤 추후 채택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씨는 재판 마지막에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물의를 끼쳐 죄송하다"며 "앞으로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에는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송성각(58)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 5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도 진행됐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직권남용과 강요, 강요미수,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최씨를 지난 11월 20일 재판에 넘겼다. 안 전 수석에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강요미수 등의 혐의를, 정 전 비서관에게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공모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사인 삼성과 현대차 등 대기업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총 774억원의 출연금을 강제로 내도록 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최씨 등에 대한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9일 오후 2시10분에 열린다. 같은날 오전에는 최씨의 조카 장시호(37)씨와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조원동(60)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첫 재판도 함께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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