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 ⓒ뉴시스

신현우 ‘징역 7년’·존 리 증거부족 ‘무죄’
가피모 “유례없는 참사인데…어이없는 판결”

【투데이신문 이수형 기자】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기소된 신현우(69) 전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대표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존 리(49) 전 옥시 대표에 대해서는 객관적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발생한지 약 5년 반에 제조업체 임원들에게 내려진 첫 형사 판결이다. 피해자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6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신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신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세퓨의 오모(41) 전 대표는 징역 7년, 조모(52) 연구소장 등 옥시 관계자들는 각각 징역 5년~7년을 선고받았다.

노병용(66) 전 롯데마트 대표에 대해서는 금고 4년이 선고됐다. 금고형이란 징역형과 같이 교도소에 수감되는 형벌이지만 노역을 하지 않는다.

홈플러스 김모(62) 전 그로서리매입본부장과 이모(51) 전 법규관리팀장 등 관계자들은 각각 징역 5년이나 금고 3~4년을 선고받았다.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된 옥시와 세퓨, 홈플러스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 1억5000만원이 선고됐다.

   
▲ 신현우 옥시 전 대표ⓒ뉴시스

재판부는 “신 전 대표 등은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한 검증을 하지도 않고 막연하게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할 것이라 믿었다”며 “인체에 무해하다거나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등 거짓으로 표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과 제품의 라벨에 표시된 내용을 신뢰해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하고 사용한 피해자들이 숨지거나 중한 상해를 입게 되는 등 유례없는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피해자들은 원인도 모른 채 호흡 곤란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사망하거나 평생 보조기구를 착용해야 할 중한 장애를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 전 대표나 조 소장 등은 옥시에서 제품 안전성에 관한 최고책임자인데 주의 소홀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 중대한 결과를 발생시켰으므로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며 “오 전 대표는 다른 제품보다 독성이 강한 제품을 검증 없이 제조·판매해 단기간에 다수 인명피해를 일으켜 엄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노 전 대표 등에 대해서는 “전문지식이나 검증도 없이 옥시 제품을 모방·제조·판매해 다수의 인명 피해를 일으킨 중한 결과를 발생시켰다”며 양형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 존 리 전 옥시 대표 ⓒ뉴시스

그러나 재판부는 존 리 전 대표에 대해서는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존 리 전 대표의 업무 태도 등은 제품의 인체 안정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당시 옥시의 업무처리에 일정한 부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한 가능성과는 별개로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은 존 리 전 대표가 관계자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어야 했지만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라며 “직접 보고 관계에 있었던 거라브 제인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일부 직원들의 추측성 진술이 있는 점만으로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신 전 대표 등이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판매대금을 가로챘다는 혐의 및 상습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습기 살균제가 결함으로 안전성이 결여돼 사용 시 인체에 해로울 수 있음을 신 전 대표 등이 알고 있으면서도 피해자들을 속여 돈을 가로챘다는 범의가 인정돼야 한다”며 “당시 신 전 대표 등은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이 문제없다고 인식한 점 등에 비춰보면 사기 범행의 의도가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판결 결과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 ⓒ뉴시스

신 전 대표와 존 리 전 대표 등은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면서 흡입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제조·판매사인 옥시와 주식회사 세퓨 등은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하는 과정에서 관련법을 위반한 혐의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인 세퓨를 제조·판매한 오 전 대표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됐다.

노 전 대표는 2006년 출시된 롯데마트 가습기 살균제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면서 제품에 대한 안전성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과실로 사상자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당초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옥시 제품 피해자는 177명(사망자 70명), 세퓨 제품 피해자는 27명(사망자 14명), 롯데마트제품 피해자는 41명(사망자 16명), 홈플러스제품 피해자는 28명(사망자 12명) 등으로 적시했다. 그러나 이후 환경부의 가습기살균제 3차 피해조사 결과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받은 35명에 대한 추가 수사를 진행해 업체 관계자들을 추가로 기소했다.

   
▲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 ⓒ뉴시스

한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라며 “유례없는 참사 벌어져도 솜방망이 처벌하는 나라”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2016년 말까지 신고된 사망자가 1112명에 이르고, 이번 형사 재판에서 검찰이 제조사를 기소하면서 정부 조사에서 폐손상 관련성이 확실하거나 높다고 확인된 1, 2단계 피해 사망자만도 113명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검찰의 늑장 수사와 외국인 임원 봐주기, 법원의 안이한 판단, 정부의 책임 회피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봐야 한다.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 커녕 두번 세번 죽이는 결과다”라며 “이대로라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결코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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