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뉴시스

【투데이신문 한정욱 기자】 일본 정부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과 관련해 철거하라고 압박하며 보복 조치에 나섰다. 

6일 아사히신문 및 NHK보도에 의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오전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약 30분간 전화통화를 통해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논의했다.

전화 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한일 양국 정부가 책임지고 합의 내용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바이든 부통령은 “미국 정부로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를 지지한다. 양측에 의해서 착실하게 이행될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이날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데 대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켰다.

또한 한일 통화스와프협정 회담을 중단하고, 한일 차관급에 따른 경제 회담을 연기했다. 아울러 부산 총영사관 직원에 의한 부산시 관련 행사를 취소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국 시민단체가 부산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한 것은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러한 조치를 발표했다.

스가 장관은 “재작년 한일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면서 “그럼에도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빈 조약에 규정한 영사기관의 위엄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다”고 비난했다.

이어 “정부로서는 소녀상을 조속히 철거하도록 계속해서 한국 정부와 관계 자치단체에 강력 요청할 것이다”라며 “한국은 바로 이웃한 국가로 중요한 나라인데 이번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게 된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일 외교차관 협의에서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부산 소녀상을) 도저히 허용할 수 없다”며 즉각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한일 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합의문에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식하고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는 내용의 문구를 넣었다.

양국 정부는 2년 가까이 10여 차례의 국장급 협의를 진행, 협상을 타결지었다. 그러나 이후 소녀상 부분에 대한 양국 정부의 해석이 갈리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사실상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철거할 것을 약속한 것이라고 판단해 합의에 따라 정부 예산 10억엔(약 102억원)을 출연한 만큼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다. 다만 한국 내 여론을 의식해 그동안 직접적인 발언을 자제해왔다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관련 단체와 협의를 통해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는 문구 자체가 사실상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주한 대사에 대한 일시 귀국 조치는 사실상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수준의 행동인 만큼 외교적 전면전을 선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날 곧바로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내고 주한 일본대사 등의 일시 귀국 결정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한일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 동구청은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지난달 28일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가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한 위안부 소녀상을 강제 철거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이틀 만에 설치를 허용했다.

이번 사태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이뤄 큰 외교적 분쟁 상황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합의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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