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환향녀(還鄕女)
[칼럼] 환향녀(還鄕女)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2.09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역사 팟캐스트(podcast)인 《이이제이》에서 “윤금이씨 살해사건 사건”을 다루기로 했다. 이 사건의 주요 내용은 1992년 10월 28일에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술집종업원인 윤금이씨가 미군 병사에 의하여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팟캐스트 녹음 준비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중 필자는 문득 “화냥”이라는 단어가 궁금해졌다.

사전에서 “화냥”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서방질 하는 여자”라는 뜻이라고 나온다. 보통 여성을 비하해서 부르는 “년”이라는 접미사를 붙여서 “화냥년”이라고 부르는데, “화냥”이라는 말 자체에 여성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년”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은 비하에 비하를 더하는 것이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화냥”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가 “환향녀(還鄕女)”라는 말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환향녀”는 한자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이라는 뜻으로, 그 말의 기원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일컫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 쓰는 택리지』의 저자인 신정일도 같은 책에서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면서, ‘되돌아온 환향녀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조상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 하여 이혼 문제가 조선의 정치,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또한 그 뒤부터 남의 남자와 잠을 잔 여자를 화냥년이라 부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설이 있기 전에 조항범은 그의 책 『그런, 우리말은 없다』에서 이러한 설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조항범은 같은 책에서 “화냥”이라는 말의 어원에 관해, ‘음탕한 계집’을 뜻하는 만주어 “하얀(hayan)”, 병자호란에서 “속환(贖還)”의 돈을 치르고 조선으로 돌아온 여성을 일컫는 “환향녀”라는 설을 소개했다. 그런데 조항범은 이 두 가지 설이 맞으려면 “화냥”이라는 단어가 병자호란 이후에 등장해야 맞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자호란이 조선과 “만주어”를 사용하는 청(淸)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조항범은 화냥의 어원을 중국어 “花娘”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중국어 “花娘”이 중국어 발음으로 [huā niáng](후아니양)으로 우리 말 “화냥”과 유사하고, 중국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기생”이나 “첩” 등을 “花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화냥의 어원이 무엇인지의 문제도 흥미롭지만, 필자는 “환향녀”라는 말에 들어있는 맥락에 주목했다. “환향녀”와 비슷한 사례는 병자호란 때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도 확인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에 대하여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이혼 소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선조는 ‘이들이 정절을 잃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첩을 들이면서 일본에서 돌아온 부인을 멀리했다는 기록도 등장한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나라로 잡혀간 인질을 구하려면 “몸값”을 냈어야 됐다. 큰 금액을 들여서 고향에 돌아온 여성들은 앞에서 길게 언급한대로 환영받지 못했다. 조항범은 ‘나라에서는 고국으로 어렵게 돌아온 여인네들이 홍제원(弘濟院) 밖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불문에 부치려 하였다.’고 전한다. 물에 목욕하는 것으로 일종의 ‘정화(淨化) 의식’을 치르고 깨끗해졌음을 국가에서 “공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향녀”라는 단어 안에는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 지배층이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는데, 상징적인 행위 하나, 혹은 무관심으로 넘어가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는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도 확인할 수 있다. 여성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만든 것은 결국 당시 남성들이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의례가 가진 주술적 기능을 이용하여 표출된 문제를 덮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1992년 윤금이 사건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무런 관심도 가져주지 않았고, 국가의 잘못된 경제사회정책으로 인해 미군을 상대로 몸과 웃음을 팔게 됐던 윤금이에 대해 사람들이 백안시(白眼視) 했을 것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것도 모자라서 끔찍한 죽음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미군이라는 이유, 그리고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Agreement under Article 4 of the Mutual Defenc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Regarding Facilities and Areas and the States of United Armed Forces in the Republic of Korea)”, 즉 소파(SOFA) 협정을 이유로 그 죽음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은?


인기기사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