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드라마 ‘사임당’ 속 안견의 ‘금강산도’ 그려낸 장병언 작가

   
▲ SBS 수·목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속 안견의 ‘금강산도’를 그려낸 장병언 작가 <사진 제공 = 장병언 작가>

SBS ‘사임당 빛의 일기’ 속 안견의 ‘금강산도’ 그려
‘금강산도’, 15세기 곽희 그림·금강산 이미지 교집합

작품 그리다 정신 팔려 신발 짝짝이로 신고 나가기도
배관 얼어 터져 고생한 적도…큰 병 안걸린게 다행

무명생활 20년, 예술과 생계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
고단한 현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꿈 품고 살아야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배우 이영애, 송승헌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SBS 수·목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 이 드라마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를 그대로 화폭에 담아낸 동양화가 자주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드라마 사임당은 조선 초기 ‘몽유도원도’를 그린 화가로 유명한 현동자 안견의 작품을 비중 있게 다룬다. 특히 극 중에서 안견의 작품으로 소개된 ‘금강산도’는 등장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극 중에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 금강산도는 절대 색감을 가진 천재 화가 신사임당(이영애 분)과 한국 미술사를 전공한 대학 시간 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즉, 조선 시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사임당에서 상당한 비중을 맡은 안견의 금강산도. 그러나 역사상으로는 안견의 금강산도라는 작품도, 그가 금강산도를 그렸다는 기록도 없다. 다시 말해 사임당에 등장한 금강산도는 실존하지 않는 작품이라는 것.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금강산도를 탄생하게 한 주인공은 바로 장병언 작가다. 세심한 붓 터치로 안견의 화풍을 재현한 장 작가의 얘기를 들어봤다.

   
▲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안견의 ‘금강산도’ 진작으로 나온 그림 <사진 제공 = 장병언 작가>

Q.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 등장하는 ‘금강산도’ 그림제작에 참여했고, 현재는 대구에서 동양회화전통을 기반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Q.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딱히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좋은 그림들을 따라 그리게 됐고, 그림 그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고등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작가로서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동양고대회화를 공부하면서부터다. 동양고전의 깊이와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그것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끌어오고 싶은 욕구가 지금까지도 붓을 들게 하는 원동력인 거 같다.

Q. 전공으로 수묵화를 택한 이유가 있나.

예고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그 당시 수채화는 서양화, 구성은 디자인, 수묵담채화는 동양화라는 프레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별 관심이 없었고 서양화 아니면 수묵화인데 수채화는 어릴 때 미술학원에서 지겹도록 많이 접했었기 때문에 뭔가 신선한 걸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표구사를 지나다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주 독특한 수묵화를 보고 바로 전공을 한국화로 선택했다.

Q. 최근 진행한 작품 활동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작업이 있다면.

사임당 제작에 참여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일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같지만, 드라마제작은 생전 처음 겪는 경험이었고, 너무 힘들었던 기억들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만감이 교차한다. 정신이 팔려서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밥을 먹으러 가질 않나, 당일 그림을 완성해서 대구에서 가평까지 가야 하는데 작업실 배관이 얼어 터져서 고생했던 기억 등 지금 생각해보면 큰 병 안 걸리고 살아있는 게 감사하다.

   
▲ (좌) SBS ‘사임당 빛의 일기’에 등장한 장병언 작가의 ‘빙설경한림도’ (우) 장 작가가 그린 ‘빙설경한림도’ <사진 제공 = 장병언 작가>
   
▲ (좌) SBS ‘사임당 빛의 일기’에 등장한 장병언 작가의 ‘수묵산수도’ (우) 장 작가가 그린 ‘수묵산수도’ <사진 제공 = 장병언 작가>

Q. 사임당에 등장한 작품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극 중 서지윤(이영애 분)을 곤경에 빠뜨리게 되는 금강산도 위작, 그리고 사임당과 이겸의 사랑을 이어주는 금강산도 진작이 대표적인 그림이다. 또한, 이겸이 강아지를 보고 그린 그림인 모견도, 저잣거리에서 그리는 ‘인왕산도’, 사임당이 그리는 ‘수묵산수도’ 등이 있다. 그리고 개인전에 전시됐던 ‘방(倣)범관설경한림’도 등은 비익당 배경으로 들어갔다.

Q. 드라마에 현동자 안견이 그렸다고 등장한 ‘금강산도’. 그러나 안견의 ‘금강산도’는 실존하지도, 그가 그렸다는 기록도 없다. 없는 작품을 실존하는 것처럼 창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금강산’을 ‘안견풍’으로 그려야 하는 상황이니 처음에는 여간 난감한 게 아니였다. 어찌 됐든 금강산도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고증’이긴 한데 워낙 자료가 없다 보니 아주 힘들었다. 안견의 유일한 진작은 몽유도원도뿐이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전하는 그림인 ‘전칭작’이 몇 점 정도 있다. 또한, 극 중 대사에 ‘곽희’라는 화가가 언급되는데 곽희는 중국 북송시대(11세기) 화가로 안견그림에 영향을 준 화가다. 간단히 말하자면 ‘안견의 그림’ 그리고 안견그림에 영향을 준 중국 북송시대 ’곽희의 그림’과 ‘금강산 이미지’를 가지고 교집합을 찾아내기 위해 밤낮 안 가리고 노력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이 15세기의 고대언어로 그 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짓는 작업이랄까. 아무튼 사임당 드라마 그림들 중 가장 힘든 작업임은 틀림없었다.

Q. 드라마에서 배우 송승헌이 기생역을 맡은 여배우들의 쇄골과 종아리 등 몸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대신 진행했다고 들었다. 작업이 어색하진 않았나.

처음 조감독님의 부탁을 받았을 때 난감하긴 한데 뭔가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던 것 같다. 당일 세트장 한쪽에서 작업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기생역 배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쇄골이랑 등판, 두당 2개씩 그림 다 그리려면 내가 죽어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요약하자면 어색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그림만 그렸던 거 같다.

Q. 20년간 무명생활을 했는데.

무명인 것과 유명한 것의 기준을 나는 알지 못한다. 중요한 건 내가 이뤄낸 예술적 성과가 나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 ‘설경산수도’ <사진 제공 = 장병언 작가>

Q. 도중에 예술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한 적 없었나.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왜 포기하겠나.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Q. 긴 무명생활에도 든든하게 내조해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년이란 시간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고, 실제로 대학교를 졸업한 연도는 2005년도니까 작가로서 보낸 시간은 10여년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될 거 같다. 든든히 내조해준 아내에게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갈 길이 머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한다. (웃음)

Q.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텐데 예술과 생계를 동시에 만족시키긴 힘들지 않은가.

결혼 후 확실히 개인 작업보다는 생계를 위해서 외주작업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소소한 외주작업 또한 나의 창작물이자 개인작품이다. 즉, 예술과 생계는 서로 모순돼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고단한 현실을 행복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꿈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 가장 힘든 일은 육아다. 육아는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웃음).

Q. 그래도 최근에는 드라마 초반에 등장한 ‘금강산도’가 화제를 모으면서 작가님도 주목받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드라마에서 ‘금강산도’ 가 등장했을 때 촬영현장, 그리고 작업실에서 고생했던 기억들이 잠시 스쳐 지났을 뿐 특별한 생각이 든 것은 아니다. 드라마 소품으로 등장한 그림으로 인해 ‘작가’로서 주목을 받고 유명해진다는 말도 우스운 이야기라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미술작품이 노출된다고 해서 개인의 작업적 성과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또한, 검증되지 않은 나를 믿어준 감독님, 조감독님, 극작가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무명하기로 유명하다’는 말은 나름 유명한(?) 친구작가와 술자리에서 습관처럼 떠들어 됐던 말인데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웃음).

Q. 드라마 방영 이후 평소보다 그림제작 의뢰가 늘었을 것 같다.

그림제작 의뢰가 늘었다기보다는 드라마에 등장한 그림들을 구매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자주 연락이 온다. 

   
▲ 장병언 작가가 작업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벽화 <사진 제공 =장병언 작가>

Q. 대구의 명소로 꼽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벽화작업에도 참여했던데. 항상 붓에 묻히던 ‘먹’ 대신 ‘물감’을 묻힌 기분이 어땠나.

벽화는 대학교 아르바이트로 많이 했었고 지금도 의뢰가 들어오면 하고 있다. 내가 주로 다뤄 왔던 재료가 ‘먹’이긴 하나 ‘먹’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김광석 벽화의 경우 고용주가 원하는 그림이 아닌, 창작자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주는 벽화라 마치 어린아이들이 모래 위에서 그림 놀이를 하듯이 작업했다. 화선지 위에 먹을 묻히든, 시멘트벽에 페인트를 바르든 작가의 감성이 녹아있는 창작물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Q. 앞으로의 작업계획이 있다면.

지금까지는 고대명화들을 모방하고 탐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이 형식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둬 버린 것은 아닐까하고 항상 의심하게 된다. 앞으로는 동양고전이 가지는 조형언어를 간직하면서도 현대와 아우를 수 있는 조형들을 만들어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것이 사회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내 가족의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고전의 ‘모방’이라는 단계를 거쳐 고전의 ‘변형’이 내가 하고 싶고, 해야 되는 작업이다. 큰 틀 안에서 앞으로의 작업계획은 명확하다. 모방, 변형, 창조라는 단순한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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