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인류 최초로 화분을 만든 사람이 누굴까 가끔 생각한다. 아니, 만든 사람은 아무래도 좋다. 어쩌다가 화분 만들 생각을 한 건지 궁금해서 막연히 상상한다.

화분다운 화분은 인류에게 토기가 발명된 다음에야 등장했겠다. 깨져서 강가에 버려진 토기 안에 어느 날 꽃이 핀 걸 본 게 시초였을 수 있겠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원시화분이 존재했을 것 같기도 하다. 움막 옆 움푹 패인 돌에 담긴 흙에 씨앗이 날아와 앉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원시인들은 원래 꽃을 보면 흙 째 뽑아와 사는 곳 옆에 심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왜 그리 꽃을 좋아하나. 꿀 있는 꽃은 먹을 만 하다. 하기야 꽃보단 과일이 이유였겠다. 꽃이 수정되면 씨가 만들어지고, 열매가 맺히면서 과육이 감싸니까 꽃은 과일의 전조인 셈. 당을 섭취 할 수 있는 과일이 자랄 수 있는 땅이면 먹고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니 생존 자체가 전쟁인 원시 야생에서 인간은 꽃을 보면 자연스레 끌리도록 만들어졌지 싶다. 꽃의 색과 냄새를 화분에 담아서라도 집안에서 체감하고 싶어하는 행위야 말로, 인간이 자신도 모르는 어떤 갈망에 오랫동안 사로잡혀왔다는 뜻이겠다.

인간의 단독생존은 집단생존보다 훨씬 효율이 떨어진다. 자신의 생존행위가 주변에 여러 겹으로 모방되고 전파되면 모두의 공존이 수월 해지고 자신에게도 이롭다. 그러니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발견했을 때, 혼자서 먹고만 있진 않았겠다. 과일의 탐스러움을 주변에 보이고 알리면서 식욕을 자극시키고 흥분을 나누어 공동채집을 유도하는 건, 자신도 모르는 본능이었을 것이다.

요즘 SNS에서 자주 보이는 음식사진도 그런 맥락 아닌가. 누군가의 맛깔스런 음식사진을 보고 자극 받으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걸 찾아 사진을 찍고 먹는다. 어떤 음식 사진이 더 맛나 보이는지, 그 기준의 정점에 더 부합하려는 경쟁이 인다. 이 행위가 계속 모방되고 전파 될수록 사람들은 다양한 먹거리와 요리법을 개발하고 접하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의 영양섭취는 한결 수월해진다. 먹을 게 풍요로워진 세상이지만 우린 여전히 생존을 위협받던 시절의 본능에 휘둘린다.

약간 결이 다르지만, 셀카사진도 (셀프 카메라의 인터넷 조어) 생존과 관계된 모방과 전파의 한 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선 이성의 눈에 쉽게 띄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집단의 외모 평가 바탕이 되는 특정한 기준을 따르려 한다. 그래서 셀카사진은 문화마다 양태가 제각각이다. 한국사회에선 45도 각도에서 찍거나, 눈을 더 또렷하게 뜬다. 특정한 누군가가 비교우위의 셀카를 찍어 올리면, 그 기준을 모방하거나 더욱 벼린 또 다른 누군가의 셀카 사진이 시도된다. 그렇게 기준을 모방하고 행위를 전파하면서, 저마다 자신이 선택되기 충분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 하고자 한다. 생존을 넘어 존재 의의에 대한 확인이고 갈망이다. 그러면서 뛰어난 패션감각, 헤어스타일, 화장법이 공유된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던 행동이 남들에게도 해법이 되어 퍼진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스스로를 위한 개인의 노력은 타인의 삶을 위해 참 치열한 행위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사람들은 더 나은 글, 더 나은 예술, 더 나은 돈벌이, 더 나은 삶을 경쟁하듯 꿈꾼다. 그 것들이 많은 이들에게 추앙 받길 원하면서 결과적으론 모방되고 전파되도록 한다. 근원을 모르는 각자의 갈망은 그렇게 공동체의 번영을 이끌도록 모두를 다그친다.

아름다운 꽃이 핀 화분으로 실내를 장식하는 것도, 군침 도는 음식사진을 올리는 것도, 셀카를 찍는 것도, 타인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행위인가. 보다 잘 다듬어진 이념이나 공고한 정치체에 대한 경쟁도 마찬가지다. 이 경쟁으로 우리는 때때마다 공동체의 자화상을 확인한다.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가, 우리는 지금 우리의 존재의의를 확인하는 삶을 살고 있나.

인간의 다양한 갈망은 인류의 번성을 위한 좋은 장치다. 각자의 주장과 노선은 많은 갈등을 일으키지만, 그 선명성 경쟁은 자신만이 아닌 모두의 생존을 위한 방법을 갈고 닦는 노력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다툼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행위인가. 자신이 아닌 상대를 위해 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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