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과 벌꿀오소리단
[칼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과 벌꿀오소리단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6.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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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네이버 사전을 보면 대원군의 뜻은 “임금이 대를 이을 자손이 없어, 방계(傍系)로서 왕위를 이은 임금의 친아버지에게 주던 벼슬”이다. 즉 대원군은 특정한 사람에게 붙는 군호(君號)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네이버 사전의 다음 줄을 보면 “대원군”의 같은 말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라고 나온다. 어느새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왕족은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왕족이기 때문에 각종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동시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족은 반란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장 경계받는 세력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있었던 두 번의 반정(反正), 즉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에서 전면에 내세울 왕족이 없으면 반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세조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던 유력 왕족인 금성대군 역시 죽임을 당한 이유는 “역모의 죄”였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 왕족의 삶은 가장 행복한 자리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자리였다.

그나마 왕족이 가지고 있던 행복과 위험의 균형이 헌종 이후에는 “위험”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헌종이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다른 왕족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도록 했고, 그래서 왕위에 즉위한 사람이 바로 철종이었다. 정치와 상관없이 살던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보다 특정 가문의 신하들이 더 큰 권력을 쥐고 조선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순조와 헌종에 걸쳐서 심화됐던 세도정치가 절정에 오른 순간이었다.

세도정치가 심해질수록 신하들의 왕족에 대한 견제는 더욱 강해졌다. 김정미의 연구에 따르면, 철종을 왕위에 올린 주된 세력은 당시 세도정치를 펼쳤던 특정 집안의 권신(權臣)들이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왕족 가운데 왕위를 이을 재목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했고, 때로는 역모의 죄를 뒤집어 씌워서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흥선군 이하응 역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는 왕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하응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권력에 뜻이 없는 방탕한 왕족인 “척”하는 것이었다. 그가 대원군이 되기 전, 그의 대표적인 별명은 “상갓집 개”였다. 이하응의 평소 행실이 “마치 초상이 난 집에서 먹을 것이라도 하나 얻어먹으러 드나드는 개” 같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이 되기 전 주색잡기를 일삼았고,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세도정치 세력의 조롱도 많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행동은 이하응이 왕족 중에서도 적통에서 거리가 먼 왕족이라는 사실과 함께 세도정치 세력의 견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자유를 이하응은 즐기기만 하진 않았다. 그는 그의 아들인 이명복을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재목으로 훈련시켰고,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또다른 피해자인 대비 조씨와 친분을 맺으면서, 그의 아들을 왕위에 올릴 수 있는 강력한 후원자도 마련했다. 1863년 왕이었던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대비 조씨는 이명복을 다음 왕으로 지목했다. 적통에서 거리가 먼 “상갓집 개”인 흥선군의 12세 아들인 이명복. 세도정치 세력도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수렴청정을 하게 된 조대비는 정책 결정권을 흥선군에게 주었다. 그렇게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이 되었고, 이후 60년 세도정치로 인해 쌓인 적폐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흥선군의 이야기를 자세히 쓴 이유는 최근 소위 “노빠”들의 모습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지지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과 대면했던 사람들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수구세력과 일부 진보진영 모두에게 “적폐”, “종북”, “파시스트”, “홍위병”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같은 당에 몸담았던 사람들에게조차 부패하고 무능한 청산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상갓집 개 못지않은 취급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촛불시위에 동참했고, 그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재미있는 것은 대통령이 된 사람은 후보 시절부터 말도 어눌하고 권력 의지도 없어보인다고 평가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문제는 수구세력이 집권했던 9년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부터 갖은 모욕과 위협을 받았던 “노빠”들이 어떤 준비를 했는지의 여부이다. 그 답을 요새 일부 “노빠”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벌꿀오소리단”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말에는 벌에 쏘여도 결국에는 벌통의 꿀을 따고, 코브라에게 물려도 결국에는 코브라를 잡아먹는 벌꿀오소리라는 동물처럼 현재의 대통령과 그의 개혁 드라이브를 지지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기마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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