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어제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한 달 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무려 응답자의 89.4%가 긍정적인 응답을 보였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80% 가깝게 나왔다.

정치는 기성복을 택하는 것이라는 항간의 주장을 살짝 뒤집어 보자면,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상당수의 시민들이 입을 수 있는 정치 기성복을 제공하고 있다. 동시에 수많은 이들이 이념과 성향을 가리지 않고 인간다운 사회를 열망하며 그를 위한 개혁에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야당들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기성복 사이즈에 전혀 근접하지 못한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 역시도 현재 89.4% 안 쪽 깊숙이에 들어가 있는 시민이지만 당연히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몇몇 인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들의 기대 수준 역시 조금씩 더 높아질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이 감동하고 있지만, 얼마 뒤에는 기자회견의 내용을 따져 묻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계산하게 되는 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지지를 쉽게 거두지는 않을 듯 싶다. 이리저리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나의 정치적 이해와 요구를 이만큼이라도 제공할 수 있는 정치 기성복이 당분간 다른 세력에서 나올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유념하고 싶은 사실이 있다. 정치는 기성복일지 몰라도, 각자의 정치윤리는 언제나 개별적이다. 정치는 기성복을 택하는 것이라는 명제에 나는 동의하는 편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소비방식일 뿐이며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어느 사이즈까지 소화할 수 있는가 역시도 각 개인에게 달린 일이다.

우리는 종종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기성복을 놓고 이만한 사이즈에 이 정도 디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며 타인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기성복을 함께 입자고 권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한 영역이다. 보다 많은 정치소비자들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만큼, 옷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쩌면 제품의 생산도 생산이지만 그러한 감정 서비스에 좀 더 강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취임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현충일 추념식,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 등에서 보여줬던, 그동안 소외돼 왔던 각계각층의 시민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 겸허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 우리는 각자 불편한 부분들이 있어도 조금씩 감내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어젯밤 포털에서 읽은 “대통령과 ‘노동3권’ 면담 때까지 청와대 앞 무기한 농성”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와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은 현재의 훈풍 뒤에 기다리고 있는 어떤 위험한 징후처럼 다가왔다.

“유성기업 노조와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약 2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텐트 4동을 기습 설치하고, ‘노동3권 보장’과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는 기사에 나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그 기사에는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문구도 없었고,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에 비춰보면 다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댓글은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노조탄압과 불법파견 그리고 사측과의 오랜 소송에 시달려왔던 그들에게 순서를 기다리라는 주문과 귀족노조라는 딱지가 달리는 것을 보며 아찔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 정부에서 구체적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는 부정적 판단을 유보하며 인내할 것이다. 89.4에서 성급하게 이탈할 생각은 없다. 명백히 반대하는 정책들이 몇 가지 있음에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성급함’의 기준이 온전히 나만의 것임을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과 함께 느긋하게 모니터를 지켜보며 댓글을 달 수 있는 정도의 여유로운 선(線)이 누군가에게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벼랑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에 사는 이들이라고 해서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날이 부쩍 더워졌다. 따뜻한 봄날을 지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짜증 섞인 비난보다는 인내와 공감이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에 우리는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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